유럽/22년 스페인

톨레도의 작은 교회들, 엘 그레코의 집, 박물관

boriburuuu 2025. 6. 18. 17:03

톨레도의 정겨운 골목들을 다시 걸어본다. 

멀리 톨레도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이건 딸과 만났을 때 들어가 볼테니 생략이다. 

스페인이 낳은 스페인 회화의 거장 엘 그레코의 집을 찾았다. 

엘그레코는 1541년 그리스의 크레타에서 태어났고 1614년 72세에 사망해 톨레도구 산토 도밍고 수도원에 매장되어 있다. 크레타에서 성화를 그리는 공부를 했고 베니스에서 티치아노, 틴토레토에게 사사한 후 로마에서도 그리공부를 하다가 1577년 톨레도로 와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다. 여러 제단화들을 그리다가 1579-80년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를 그렸는데 프라도 미술관이 전시하고 있다. 1986년 대표적 명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그렸는데 산토 토메 성당 입구에 그려져 있다. 

피카소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엘 그레코는 피카소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잇다. 1934년 6-9월 사이 피카소는 아내 올가 코클로바, 아들 파올로와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며 엘그레코 박물관을 찾았다고 한다. 

이슬람 느낌이 물씬 나는 인구의 계단과 문 장식들이다. 

 

엘 그레코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이 그린 <엘 그레코 가족의 초상화>이다. 

먼저 엘 그레코가 그린 12사도와 가운데 예수의 초상이 걸려 있다.  . 

 세인트 토마스(도마)의 초상이다

세인트 매튜(마태)의 초상이다. 

사도 베드로의 초상이다.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이다. 

성 안드레의 초상이다. 

엘 그레코는 단 두 점의 풍경화만 남겼고 모두 톨레도를 배경으로 한다. 그 중 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페트로 살라사르가 주문한 것으로 그가 행정을 책임졌던 티베라 병원이 중앙 구름위에 떠 있고 톨레도 시내 전경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 타호 강이 흐른다. 오른쪽의 남자는 톨레도 도시의 조감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늘에는 성모 마리아가 대주교 알데폰소에게 사제복을 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다른 한 작품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 갖고 있다. 

엘 그레코가 그린 <성 베드로의 눈물>인데 성 베드로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곧 떨어질듯한 눈물과 표정이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다. 

성 토마스(도마)의 초상이다. 

엘 그레코의 <안토니오의 초상>이다. 

엘 그레코의 <아빌라의 성 요한의 초상>이다. 1600년

성모의 초상(여인의 초상)>이다. 

<산 바르바라의 초상>이다. 

엘 그레코가 제작한 제단화다. 

엘 그레코의 <시에나의 성 베르마르디네>다. 1603년

피카소의 <비너스와 에로스>다. 1907년.

오스큐엘라 마드릴레나의 <자동 처형>이다. 1656년

엘 그레코 워크샵의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 레오>다.  17세기 초

디에고 드 아스토르의 <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 레오>다.  1606년

작자 미상의 <서 바실>이다. 

엘 그레코 워크샵의 <성 요한과 전도자>이다.  1600년

조지 마누엘 티에토코풀리의 <예수의 옷벗기우심>이다. 1606년.

엘 그레코 워크샵의 <프랑스의 왕 세인트 루이스>다. 1600년

엘 그레코 워크샵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다. 17세기

루이스 트리스탄의 <성 마태>다. 1620년

블라스 무노즈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황홀경>이다. 1685년

작가 미상의 <성 프란시스의 황홀경>이다. 17세기

블라스 무노즈의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의 황홀경>이다. 1685년

루이스 트리스탄의 <구에바라의 카르디날 니노의 초상>이다. 1620년

루이스 트리스탄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다. 1513-24년.

엘 그레코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다. 

성 요한의 초상이다. 

성 베드로의 눈물이다. 

밖으로 나와 엘그레코의 집 박물관을 전체적으로 바라본다. 이 집은 스페인의 군 장교이자 예술 후원자인 베가 인클란 후작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공공을 위한 문화 프로젝트를 개발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 집의 복원은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오래된 유대인 지역의 건물을 사들여 엘 그레코가 살던 집의 분위기를 내려 노력했고 실제로 살던 집 근처라고 한다. 

정원도 예쁘게 잘 가꾸어 놓았다. 여기서 싸 간 도시락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