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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코 투르노보(성당들(40인의 순교교회, 성 페테르와 파울교회, 성 디미트리 교회, 차베레스 요새)

boriburuuu 2023. 6. 20. 23:10

집에 차를 놔두고 나서다 보니 집 주변에 예쁜 꽃들이 장 가꿔져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숙소가 올드 타운이다.  인증샷을 남겨 본다.  

 

40 순교자 교회(Forty Martyrs Church)다. 

다리 아래로  건너가야만 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티켓을 팔고 있었다.  통합 티켓이 있나 물어봤는데 말은 통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학생들이 단체를 보기도 하고 관람객이 많은 편이었는데 교회는 벨리코 타르노보에서 가장 유명한 중세 불가리아 기념물이다. 그것은 불가리아의 차르 이반 아센 2 세 시대에 1230 년 3 월 9 일 (성 40 세바스찬 순교자의 날)  전투에서 에피루스 에 대한 그의 위대한 승리를 기리기 위해 지었고 13 세기에서 14 세기에는 수도원 "Great Lavra"의 주요 교회였다.

1908 년 9 월 22 일, 같은 교회에서 페르디난트 왕자는 불가리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차르 칼로 얀 (Tsar Kaloyan), 안나 마리아 (Anna Maria)와 이리나 (Irina), 성 사바 스 르 스키 (St. Sava Srbski), 그리고 왕실과 불가리아 귀족의 다른 많은 구성원들이 교회에 묻혀 있다. Kaloyan의 유해는 사망 한 지 800 년 후인 2007 년 4 월 19 일에 교회에 엄숙하게 재 매장되었다.

교회는 국가 유물 , 국가 중요 문화의 건축 및 건축 기념물및 국가 중요 문화의 예술적 기념물 로 선언되었다.
성바스토폴의 거룩한 40 명의 순교자 교회는 성바스토폴의 거룩한 40 명의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바로 건너편에 아름다운 성당의 종탑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성당은 문을닫았다.  

13세기의 성 페테르와 파울 교회다.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다. 1913년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교회는 마을에서 봉사하는 가장 긴 교회 중 하나였다. 오늘날 교회는 부분적으로 복원되었으며 내부에서 수년 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유적을 감상할 수 있다.

저멀리 차베레스 성채와 성당이 보인다. 

성 디미타르 교회다. 이 매우 아름답게 복원된 교회는 Arbanassi로 가는 길에 있는 Tsarevets 반대편에 위치한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개방하지는않고 있었다.  테오도르 형제와 아센 형제가 콘스탄티노플 황제에 맞서 두 번째 불가리아 왕국을 세웠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1186). Tsars Peter, Ivan Asen 및 Kalojan이 이곳에서 왕관을 썼다. 1913년 지진으로 여러 번 리모델링되고 1980년대에 재건된 단일 네이브 교회는 라틴 십자가 모양의 계획으로 지어졌고벨리코 투르노브 건축양식 특징이다.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밖에서 봐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고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우리는 티켓을 끊고 차베레스 요새에 들어갔다. 사진을 몇 장 찍다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언니가 숙소에 가서 우산을 가져오자고 한다. 직원에게 갔다 오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숙소에 가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비가 내려 숙소로 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축했다. 

비가 멈춘 후 다시 가니 그 직원은 우리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지를 치켜 올리며 들어가라고 한다. 차베레스 언덕은 트라키아인과 로마인들의 정착지였으며 요새는 비잔틴 시대인 5-7세기에 세워졌다. 8-10세기 불가리아와 슬라브인들에 의해 재건되었고 12세기 비잔틴제국이 강화했다. 제2 불가리아 시대 때 전성기를 맞았으나 1393년 오스만 제국에 점령되어 파괴되었다. 

거대한 종탑이 반겨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비가 온 뒤라 시가지가 구름에 싸여 있는듯해 분위기가 남다르다. 

 

요새 꼭대기에는 '성모 승천교회'가 복구되어 우뚝 서 있다. 

성당으로 들어가본다. 

내부는 온통 벽화들로 그려져 있는데 종교적인 내용과 정치적인 내용이 혼재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예수님의 모습이다. 

벽 전체가 캔버스가 되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은 기존 정교회 성당들과 비교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자니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거대한 그림들에 압도되어 그 감동의 여운이 한참 갔다. 

원래의 성채는 이런 모습이었단다. 

허물어진 건물과 터만 남은 모습인데 근래 발굴작업을 통해 400채 이상의 주택, 18개의 교회, 수도원, 상점, 성문과 타워 등이 발굴되었다. 

성 디미트리 교회의 모습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