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31

이스탄불을 떠나며

오늘(8.16)이 실질적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형식적으로는 8월18일까지이지만, 말레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기다리는 17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당초에는 오늘 자유 시간으로 되어있었으나, 일행이 그랜드 바자르에 가던 날이 휴일이라 오늘 가자는 건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일행은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고 호텔을 출발(08:40)했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차가 밀려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도로의 가로수와 주위 풍경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바자르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 따로 코라수도원을 개조해 만든 까리예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6명이 나눠서 택시로 갈 생각이었으나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에 차를 세울 곳이 없어 우리를 ..

트로이 유적과 이스탄불 야경을 돌아보며

오늘은 버스를 타고 호텔을 출발해서 트로이 유적지에 도착(08:30)했다. “트로이(Troy)”는 차낙칼레 남서쪽 30km에 있는 대규모의 고대 유적지였다. 이곳은 호메로스(Hemeros)의 대서사시인 “일리어드(Iliad)”에 등장하는 도시국가인데, 트로이전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19세기까지는 트로이는 역사적 실제가 아닌 전설 속의 도시로 알려졌는데,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의 노력으로 실제의 도시로 알려졌다. 그는 49세 때인 1871년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나서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하사를륵 언덕(지금의 트로이 유적자리)아래서 황금목걸이와 항아리, 잔 등을 발굴했다. 이후 계속된 발굴 작업은 여러 번 이루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00년이 ..

베르가마 아크로폴리스를 돌아보며

오늘은 6시에 일어나 이즈미르 역까지 산책했다. 밤에는 이 거리에 술집이 많아 흥청거린다고 했으나, 아침에는 그저 평범한 시가지였다. 돌아오는 길에 일출이 있었으나 건물 때문에 떠오른 다음에 보았다. 이즈미르는 에게해 연안 최대도시로 터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기원전 3000년경 조그마한 항구로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리디아왕국 때 파괴되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부하였던 리시마코스가 페르가몬왕국을 세우고 이곳을 부활시켰다. 그 후 로마의 세력권에 있다가 15세기 오스만제국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도시이름을 이즈미르로 바뀌었다고 한다. 호텔이라 아침식사(07:00)는 뷔페식으로 다른 곳과 비슷했으나, 계란부침이 있는 반면에 야채와 고기류가 하나도 없었다. 일행은 이즈미르에 특별히 볼 것이 없..

셀축 쉬린제마을 등을 돌아보며

일행은 장미와 올리브기름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가, 셀축의 성 요한교회 부근에 도착(12:40)했다. 셀축은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며 성모 마리아집, 성 요한교회 등 기독교 역사에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뒷길로 가면 음식점들이 있었고, 앞에는 푸른 잔디밭 위에 성 요한교회와 성(城)이 보였다. 안내자는 앞으로 1시간 10분간 자유시간이니, 점심을 먹고 관광을 끝내라고 했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조금 전 오일가게에 들리지만 않았어도 시간을 더 쓸 수 있었을 것이었다. 언제 다시 셀축에 온다는 보장이 없어, 먼저 성 요한교회와 셀축 성을 돌아보기로 했다. 한나샘과 함께 성 요한교회에 들어가 돌아보고 있는데, 일행 2명이 들어와 같이 구경했다. 성 요한교..

에페스 유적지를 돌아보며

디딤에서 에페스 유적지까지는 가까웠다. 버스는 1시간30분 만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에페스(Efes)”는 셀축 남쪽에 위치한 “고대 로마의 도시유적”이 있는 곳이었다. 에게해는 물론 터키 전역을 통틀어 규모와 양에서 다른 곳과 비할 수 없는 최고의 유적지였다. 이곳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고대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에게해의 중심도시였다. 기원전 11세기에는 이오니아인들에게 점령당한 이후, 기원전 5세기에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한 때 25만 명에 달하는 번영을 누렸던 에페스는 7세기경 강에서 내려온 토사가 바다를 메워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한다. 바다와 연결되었던 북쪽에서부터 남쪽을 향해 걸어오면서 보아야..

보드룸 성을 돌아보며

오늘 일정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06:00)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제 길거리와 해변에 그 많던 인파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빽빽하게 꽂혀있던 비치파라솔들도 모두 주인에 의해 한 곳에 모아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만이 해변에서 자고 있었다. 해변의 모래는 의외로 딱딱해서 샌들을 신고 걸어가도 발에 모래가 들어오지 않았다. 일행 중에는 벌써 바다에 나와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오늘은 포세이돈 상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늘에는 어제 갈 길을 제대로 못 갔는지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있었고, 텐트 하나 없는 해변은 썰렁한 느낌마저 들었다. 6시 30분이 되자 동쪽 하늘에서 아폴론이 태양을 몰 채비를 끝냈는지,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 낮에는..

디딤 아폴론신전 등을 돌아보며

벨리댄스를 보다 늦게 잤기 때문에 일어나니 벌써 6시였다. 방을 나오니,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호텔 앞 도로의 가로수가 야자수들이었으며, 엊저녁 발리댄스를 했던 곳의 정원 잔디밭에도 야자수들이 심겨져 있었다. 호텔에서 보았을 때, 석회층이 있는 곳이 서쪽으로 알았는데, 해가 그곳에서 뜨고 있어 동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행은 조금 늦은 시간(07:30)에 아침을 먹었는데, 야채와 과일이 없었다. 다만 치즈와 빵이 다양했고, 계란부침이 있어서 그것을 2개나 먹었다. 또한 주스, 커피 및 물이 있어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일행 중에는 뷔페식 식사임에도 많이 가져와 남기는 사람이 있었다 입에 맞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조금 가져와서 맛을 보고, 좋으면 먹으리만큼 가져와야된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를 돌아보며

일행은 공식적으로 페티예의 유적들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어제 유람선을 타고 올 때 보았던 “아민타스석굴무덤”이라도 보고 싶어 숙소를 나섰다(06:00). 그러나 길을 잘 못 들어 호텔 위쪽에 있는 호수 같은 곳에서 일행 몇 명과 같이 일출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페티예의 호텔을 출발(09:00)해 파묵칼레로 향했다. 가는 길의 풍경은 바위산임에도 푸른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밀을 수확한 밭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누런색을 보였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 번 휴식을 취하고, 데니즐리(Denizli) 시내를 거쳐 파묵칼레에 도착(12:40)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식당가였는데, 석회층이 길 옆까지 내려와 있었다. 석회층 아래는 온천수가 고여 있어, 그곳에서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