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트로이 유적과 이스탄불 야경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7:46

오늘은 버스를 타고 호텔을 출발해서 트로이 유적지에 도착(08:30)했다. 

 “트로이(Troy)”는 차낙칼레 남서쪽 30km에 있는 대규모의 고대 유적지였다. 이곳은 호메로스(Hemeros)의 대서사시인 “일리어드(Iliad)”에 등장하는 도시국가인데, 트로이전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19세기까지는 트로이는 역사적 실제가 아닌 전설 속의 도시로 알려졌는데,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의 노력으로 실제의 도시로 알려졌다. 그는 49세 때인 1871년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나서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하사를륵 언덕(지금의 트로이 유적자리)아래서 황금목걸이와 항아리, 잔 등을 발굴했다.  이후 계속된 발굴 작업은 여러 번 이루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00년이 넘는 발굴 작업 결과, 트로이 유적은 한 시대 것이 아니라 청동기시대부터 여러 시대의 유적이 중복되었음이 밝혀졌다. 즉 트로이유적은 1기(기원전 3000~2500년)부터 9기(기원전 85~기원후 500년)까지 중복되어 있다고 한다. 트로이는 이처럼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일행이 주차장에서 유적지로 걸어가자 광장에 커다란 목마가 서 있었다. 트로이 목마를 재현해 놓은 것이나, 철저한 고증 없이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목마의 앞다리 부분에 사다리가 있어 목마 안으로 들어가 창문에 얼굴을 내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트로이 유적 입구에 있는 목마에 올라가 추억을 남기고> 

 일행은 알리의 안내를 받아 트로이 유적지를 답사했는데, 시기별로 되어 있지 않았다. 탐방로를 따라가며 관람했는데, 시대별로 번호를 매겨놓고 안내판을 설치해놓고 있었다. 북쪽에는 트로이평야가 아주 잘 내려다 보였다. 유적은 성채, 아테나신전, 궁전 터, 신전 터, 제단, 오데온(로마시대 유적)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로이 유적지 북쪽에서 내려다 본 트로이평야 풍경> 

 

<트로이 유적 탐방로 입구에 있는 동쪽 성채 모습> 

 

<트로이 유적 북서쪽에 있는 아테나신전 모습>

<기원전 2500년경의 유적인 2기, 3기의  전망대 및 성벽> 

<기원전 2500년경인 2기, 3기의  유적> 

<트로이 유적 서쪽에 있는 도시 요새화를 위한 성채> 

 

<기원전 2100년경인 3기의 트로이 유적> 

 

<기원전 2500년경인 2기의 트로이 유적> 

 

<기원전 1250년경인 6기의 트로이 궁전 모습> 

 

<기원전 85년경인 8기의 트로이 신전 모습> 

 

<기원후 500년경인 9기의 로마시대 오데온 모습> 

 

<트로이 유적지 안에 세운 "트로이 로고" 안내판> 

 

<기원전 1250년경인 6기의 트로이 도로>

 유적을 답사하고 광장으로 돌아오니,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트로이전쟁 당시의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곳에 박물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 보려고 물어보았으나, 전에는 열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는 전에 박물관이었던 건물 앞에 전시해 놓은 흙이나 돌로 만든 수도관과 옹기들을 둘러보았다.

 

<트로이전쟁 당시의 복장을 한 관광객 모습> 

 

<구 박물관 앞에 진열된 당시 사용했던 물항아리와 돌 수도관>  

 일행은 트로이 유적지를 출발해서 차낙칼레의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는 선착장에 도착(10:10)했다. 일행은 알리의 안내로 트로이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를 촬영할 때 사용했다는 목마를 돌아보았다. 오히려 트로이에 있는 목마보다 이것이 더 친근감이 들었다.  

 

<차낙칼레 시내에 있는 영화를 촬영했다는 목마> 

 

<차낙칼레 선착장 풍경>

내려오면서 상점들을 유심히 쳐다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차낙칼레 시계탑을 보면서 선착장 앞까지 왔으나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없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바로 길 건너에 맥도날드햄버거집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햄버거를 하나 산 다음, 배를 타고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기 시작(11:30)했다.  

 

<차낙칼레의 시계탑>

  나는 배에 올라 앞쪽 그늘진 곳 의자에 자리 잡았다. 일행도 몇 명 같이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올라와 서 있는 것을 보고 배낭을 치우면서 앉으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어린이들이 있어 그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는 도선 안의 풍경 1>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는 도선 안의 풍경 2>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는 도선에서 바라본 풍경> 

   일행은 해협을 건너(12:25) 버스로 이스탄불을 향했다. 이 길도 다르다넬스해협을 따라 계속 올라오는 길이라 풍광이 매우 좋았다. 버스는 2시간동안 달린 후, 휴게소를 찾아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이스탄불에 들어와서는 조금 밀리기는 했으나, 버스는 무사히 호텔에 도착(17:10)했다. 방을 배정 받은 다음 저녁을 먹을겸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우리 숙소는 공항 근처여서 아야소피아까지는 10정거장 정도이나 환승해야했다. 개미취언니와 한나샘, 찌니짱과 함께 트램을 타고 나가니 광장에서 수박을 팔고 있었다. 정말 언제 먹어도 달고 맛있는 수박이다. 터키에서는 너무 더워서 거의 끼니를 수박으로 채운 것 같다. 조금 더 들어가니 히드포롬이 나온다. 전에 와 봤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생략해버린 장소여서 설명을 해주고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히포드롬은 기다란 광장으로, 비잔틴시대에 전차경주가 벌어졌던 경기장이었다. 이곳에서 비잔틴제국의 황제나 개선장군의 환영 등 중요한 국가행사가 치러졌다고 한다. 경기장은 가로 117m, 세로 500m의 규모였는데 지금은 세 개의 기둥이 서있는 공원이었다. 가장 먼저 남쪽에 있는 기둥은 이집트 오벨리스크(Egyptian Obelisk)였다.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시리아 정복 시 유프라테스강을 건넌 기념으로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에 세운 것 중의 하나였다. 이것을 비잔틴의 콘스탄티우스황제가 가져왔고, 39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현재 자리에 세웠다. 원래는 높이 60m, 무게 800톤의 거대한 규모였는데, 셋으로 잘라 그 윗부분만 가져왔다. 현재의 높이는 19.8m로 기단에는 다양한 조각이 있었다. 중간에 있는 나선형의 세 마리 뱀 기둥은 330년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신전 앞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었다. 원래는 기원전 478년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의 승전기념탑이었다. 뱀 기둥은 높이가 8m에 달했지만, 머리와 상단부분이 파손되어 현재 5m정도만 남아있다. 떨어져 나간 세 개의 뱀 머리 가운데 하나는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또 하나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마지막 제일 북쪽에 있는 기둥은 콘스탄티누스대제 때인 4세기에 건립된 것이었다. 32m높이의 이 탑은 벽돌을 쌓고, 외벽을 청동판으로 씌운 아름다운 기둥이었다. 그러나 십자군 침입 때 약탈로 사라졌고, 2011년 보수공사를 통해 마모된 부분을 메웠다고 한다. 그리고 블루모스크. 한나샘은 전에 왔을때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질 못해서 오늘 와서야 진정으로 아름다운 모스크의 모습을 본 것 같다며 너무 좋아한다. 중앙광장에는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어 감상하기도 하고 나도 석양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스크의 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다음은 맞은 편에 있는 아야 소피아다. 역시 야경을 즐기며 다시 한번 둘러 보았다. 광장에는 현지 가족들, 타국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어 그들과  짧은 만남을 갖고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무대에서 쉐마 공연을 하고 있다. 밴드와 남자 한 사람이었지만 춤을 추는 자세와 특히 돌 때의 발놀림이 대단히 특이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다. 개미취언니는 터키에서 봐야할 모든 것을 오늘 저녁에 다 본 느낌이라고 한다. 좀 더 놀고 싶엇지만 개미취언니가 피곤해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10시쯤 숙소를 향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잘한 것 같다. 숙소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