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네팔 10

카투만두 보다나트

네팔 티벳 불교의 총본산으로 네팔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불탑이다. 오랜 예날 한 노파가 카투만두를 다스리는 마하라자를 찾아가 불탑을 조성하기 위한 땅을 기부해 달아고 요청했는데 오만한 왕은 소 한마리를 주며 소의 살을 저며 땅에 깔 수 있는만큼의 땅을 기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왕의 약속에 노파는 복어회보다 얇은 칼질로 현재 보다나트 자리에 해당하는 면적에 쇠고기를 깔아 보다나트를 세웠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설이 있지만 티벳의 통일 군주 송첸 감포가 자신의 두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보다나트에서는 탑돌이를 하거나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티벳 불교의 대형 마니차다. 겉에 불경을 새기거나 안에 불경을 넣고 만든 것인데 이를 돌리면 법력이 사방으로 ..

카투만두 파슈파티나트 사원군

많은 여행자들이 단지 '화장터'라고 알고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군은 네팔 힌두교의 총본산이다.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강으로 꼽히는 강가(갠지주강)의 지류인 바그마티강이 흐르는 탓에 네팔에서 인도의 바라나시에 맞먹는 종교적 지위를 갖고 잇는 것이다. 사원군이라는 말처럼 10여개의 사원과 화장터가 모여 있다. 바그마티강이다. 먼 인도에서 성지 순레를 올 만큼 힌두교도들에게 영험함을 인정 받은 곳인데 갠지즈강처럼 수질은 좋지 않다. 전부 6곳의 화장터가 있는데 연중 내내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와 냄새에 둘러싸여 있다. 바라나시에서는 사진을 엄격히 금해 1장의 사진도 없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꽃으로 한껏 장식한 이 분은 아마도 귀족 계급이나 돈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사원에서 가까울 수..

카투만두 스와얌부나트 사원

카투만두를 상징하는 대표적 불탑 중 하나로 세게 문화유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카투만두 계곡은 호수였고 이 사원은 호수 한가운데 섬처런 떠 있었다고 한다. 건립 연대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카투만두 호수설은 최근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처음 건립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아쇼카왕이 카투만두를 순례할 때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14세기에 이슬람 침입자들에게 파괴된 후 다시 재건되었다. 지난번 지진으로 크게 파괴된 모습을 보니 마음 아팠다. 이 거대한 반구형의 스투파는 다양한 불교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돔 형태의 스투파 상단에는 네팔식 불탑이 자리잡고 있다. 불탑 중앙의 눈은 부다의 눈을 상징하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카투만두 계곡을 응시하고 있..

포카라 설산 전망대, 다랭이논 산책하기, 산악박물관

전날부터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트레킹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고 자비를 들여서라도 오스트레일리아 캠프까지만이라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엔데 50명이 넘는 인원을 인솔하고 있는 대장님으로서는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속으로는 나도 트레킹을 하고 싶었으나 개별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아보여 참았다. 대장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셨다. 날씨도 정말 좋고 이렇게 가까이서 설산들을 볼 수 있는건 분명 행운이다. 다음에 안나푸르나까지는 아니더라도 4천미터급 베이스캠프까지는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 자유시간이 주어져 방 파트너와 함께 첫날 들어오면서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다랭이밭들을 걸어보았다. 다랭이 밭 길은..

카투만두 꾸마리 사원, 더르바르 광장

네팔 왕국의 살아 있는 여신인 꾸마리를 모시고 있는 꾸마리 사원이다. 신상이 아닌 살아 있는 여자 아이를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쉬바파르바티 사원이다. 18세기에 바하두르왕에 의해 건립된 힌두 사원으로 특이하게 쉬바와 파르바띠 부부를 동시에 모셔 놓은 것이 특징이다. 사원 위 창문에서 쉬바와 파르바띠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름다운 공작새 문양의 창이다. 세공 기술이 엄청 뛰어나다. 마주 데발이다.

파탄 더르바르 광장

카투만두에서 남족으로 5킬로 떨어진 고대 도시 파탄을 찾았다. 15세기 이후 박타푸르, 카투만두와 함께 3왕국으로 번영을 누렸는데 파탄의 애칭은 랄리투뿌르 즉 '미의 도시'라 불렸다. 고대 파탄의 장인들은 카투만두 계곡에서 제일가는 솜씨를 자랑했는데 현재도 그 유적들이 남아 있다. 우리 일행은 더르바르 광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도 작은 사당들이 보인다.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의미로 옛날 카투만두 왕국의 중심 광장이다. 왕국과 사원이 밀집되어 있어 네팔 전통 건물의 전시장 같은 분위기다. 중앙길을 중심으로 서쪽은 사원군이고 동쪽은 왕궁 건물이다. 사원들은 대부분 17세기에 건립되었고 왕궁은 16세기에 지어졌다. 크리쉬나 사원이다. 17세기 말라 왕조 때 크리쉬나신에게 봉헌된 북인도양식의 석조 사원이다. 탑..

네팔 포카라 샤랑코트 일출, 페와 호수, 데비스 폭포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한 전초기지로 해발 800미터 정도의 낮은 구릉이지만 7천미터급 설산이 잘 보이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곳이다. 때문에 세게적으로 많은 여행자가 찾는다. 인도의 열악한 환경에 있다보니 포카라의 청정한 자연이 더 다가왔다. 오늘은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샤랑 코트에 올랐다. 페와 호수 북쪽에 자리한 히말라야 전망대로 마차부차레,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의 영봉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2시간 정도 걸려서 간신히 일출시간에 맞춰 샤랑코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샤랑코트 트레킹에서 돌아와 페와 호수를 둘러보았다. 네팔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로 넓이가 4.4제곱킬로에 달하는 포카라의 상징같은 곳이다. 다음으로 우리 일행은 데비스 폭포를 보러 갔다.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많은 ..

네팔 룸비니-포카라로 이동

마야데비사원을 찾았다. 부다가 태어난 곳에 세워진 사원이다. 부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해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하던 중 산통을 느껴 사라수를 잡은 채 부다를 낳았다고 한다. 아쇼카 석주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다.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휴러가 발견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돌기둥으로 기원전 249년 아쇼카왕이 부다의 탄생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이 석주로 인해 부다의 역사적 실존이 증명되었는데 원래 위에 말조각이 있었는데 벼락을 맞아 떠어졌고 옆의 마모가 심한 돌이 그것이라고 한다. 석주에는 아쇼카왕의 명문이 씌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쇼카왕은 왕위에 오른지 20년 만에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가 부다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

네팔 룸비니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로 왔다. 룸비니는 부다가 태어난 곳으로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첫 설법지인 사르나트, 열반지인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이다.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이 순례를 했고 법현, 현장등도 순례를 하고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쇠락해 밀림 속에 묻혀 있다가 1896년 독일인 휴러의 유적발굴단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방 파트너와 나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간 곳은 한국, 네팔 불교도 친선 평화의 공원이다. 2008년 한국의 불교 단체가 부다의 열반 성지인 쿠시나가르에서 모셔온 진신사리를 봉행한 자리에 세운 공원이다. 행사에 참석했던 기리샤 코이릴라 당시 네팔 수상이 룸비니 성역 한가운데 행사를 추진한 한국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