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부터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트레킹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고 자비를 들여서라도 오스트레일리아 캠프까지만이라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엔데 50명이 넘는 인원을 인솔하고 있는 대장님으로서는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속으로는 나도 트레킹을 하고 싶었으나 개별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아보여 참았다. 대장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셨다.
날씨도 정말 좋고 이렇게 가까이서 설산들을 볼 수 있는건 분명 행운이다. 다음에 안나푸르나까지는 아니더라도 4천미터급 베이스캠프까지는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
자유시간이 주어져 방 파트너와 함께 첫날 들어오면서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다랭이밭들을 걸어보았다.
다랭이 밭 길은 끝없이 이어진 것은 아니고 가다보면 집으로 연결되어 있어 우린 할 수 없이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아마 깜짝 놀랐을 것 같은데 친절했다.
커피나무다. 여기도 커피농사를 짓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산악 박물관을 찾았다. 2004년에 개관한 산악 전문 박물관으로 산악 국가인 네팔을 대표하는 박물관 중 하나다. 네팔에 사는 각 민족의 의상 및 생활 방식,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세게 최고봉들의 전문 사진들, 지형과 식생, 동식물 등 히말라야에 대한 전 분야를 전시해 놓았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다. 박영석은 2005년 5월 1일에는 북극점에 도달했다. 그가 이끄는 원정대는 그해 3월 9일 캐나다 워드헌트라는 곳을 출발해 평균 하루 12시간, 15㎞ 이상을 걷는 강행군 끝에 54일 만에 북극점을 밟음으로써 한국인 탐험역사에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지구 3극점으로 일컫는 에베레스트산, 북극점, 남극점에 도달했으며, 히말라야산맥 8천m 이상 14좌를 등반했으며,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반하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낸 것이다. 박영석 또한 고상돈이 그랬던 것처럼 참말로 산악인다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201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에 나선 그 일행은 대원 두 명과 함께 10월 17일 실종됐다. 그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안다. 안나푸르나 캠프 근처에 그들의 추모비가 있다고 한다.
엄홍길 씨 등도 보인다.
왼쪽의 고미영씨는 스포츠클라이밍의 1인자로 활약하다가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등정하기 시작하여 11좌를 등정한 여류 등반가이다. 2009년 7월 10일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에 성공하면서 히말라야 8,000m 이상 급 총 11좌에 올랐으나, 하산 도중 해발 6200m 지점 칼날능선에서 실족하여 사망하였다. 일행 중 고미영씨 엄마를 아시는 분이 계셔 사진을 찍어 드렸다.
아래는 전문 사진사들이 찍은 사진을 찍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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