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61

카투만두 보다나트

네팔 티벳 불교의 총본산으로 네팔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불탑이다. 오랜 예날 한 노파가 카투만두를 다스리는 마하라자를 찾아가 불탑을 조성하기 위한 땅을 기부해 달아고 요청했는데 오만한 왕은 소 한마리를 주며 소의 살을 저며 땅에 깔 수 있는만큼의 땅을 기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왕의 약속에 노파는 복어회보다 얇은 칼질로 현재 보다나트 자리에 해당하는 면적에 쇠고기를 깔아 보다나트를 세웠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설이 있지만 티벳의 통일 군주 송첸 감포가 자신의 두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보다나트에서는 탑돌이를 하거나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티벳 불교의 대형 마니차다. 겉에 불경을 새기거나 안에 불경을 넣고 만든 것인데 이를 돌리면 법력이 사방으로 ..

카투만두 파슈파티나트 사원군

많은 여행자들이 단지 '화장터'라고 알고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군은 네팔 힌두교의 총본산이다.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강으로 꼽히는 강가(갠지주강)의 지류인 바그마티강이 흐르는 탓에 네팔에서 인도의 바라나시에 맞먹는 종교적 지위를 갖고 잇는 것이다. 사원군이라는 말처럼 10여개의 사원과 화장터가 모여 있다. 바그마티강이다. 먼 인도에서 성지 순레를 올 만큼 힌두교도들에게 영험함을 인정 받은 곳인데 갠지즈강처럼 수질은 좋지 않다. 전부 6곳의 화장터가 있는데 연중 내내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와 냄새에 둘러싸여 있다. 바라나시에서는 사진을 엄격히 금해 1장의 사진도 없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꽃으로 한껏 장식한 이 분은 아마도 귀족 계급이나 돈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사원에서 가까울 수..

카투만두 스와얌부나트 사원

카투만두를 상징하는 대표적 불탑 중 하나로 세게 문화유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카투만두 계곡은 호수였고 이 사원은 호수 한가운데 섬처런 떠 있었다고 한다. 건립 연대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카투만두 호수설은 최근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처음 건립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아쇼카왕이 카투만두를 순례할 때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14세기에 이슬람 침입자들에게 파괴된 후 다시 재건되었다. 지난번 지진으로 크게 파괴된 모습을 보니 마음 아팠다. 이 거대한 반구형의 스투파는 다양한 불교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돔 형태의 스투파 상단에는 네팔식 불탑이 자리잡고 있다. 불탑 중앙의 눈은 부다의 눈을 상징하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카투만두 계곡을 응시하고 있..

포카라 설산 전망대, 다랭이논 산책하기, 산악박물관

전날부터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트레킹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고 자비를 들여서라도 오스트레일리아 캠프까지만이라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엔데 50명이 넘는 인원을 인솔하고 있는 대장님으로서는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속으로는 나도 트레킹을 하고 싶었으나 개별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아보여 참았다. 대장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셨다. 날씨도 정말 좋고 이렇게 가까이서 설산들을 볼 수 있는건 분명 행운이다. 다음에 안나푸르나까지는 아니더라도 4천미터급 베이스캠프까지는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 자유시간이 주어져 방 파트너와 함께 첫날 들어오면서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다랭이밭들을 걸어보았다. 다랭이 밭 길은..

사르나트 불교 4대 성지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로 부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을 편 곳으로 불교에서는 초전법륜지라고 한다. 뒤로 다멕 스투파가 보인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다는 수행자 시절 자신을 따르던 다섯명의 도반을 떠올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기 위해 그들을 찾는데 부다가 수자타라고하는 소녀의 우유죽 공양을 받은 후 고행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변절자로 여기고 멸시했던 이들은 저 멀리 부다가 오는 것을 보고 모른체 하자고 약속했지만 깨달은 자의 포스는 강렬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자리를 청했고 부다는 그의 첫 설법인 사성제의 팔정도를 전한다. 그날 이후 사르나트는 불교의 절대 성지가 되었지만 이후 힌두교, 이슬람교의 득세로 인해 쇠락했다. 다멕 스투파는 다섯 도반에게 처음 설법한 자리에 세워진..

바라나시

새벽에 바라나시에 가 보았다. 3천년 고도로 '바라나시를 보지 않고는 인도를 본것이 아니고 바라나시를 봤다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다' 라고들 한단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깅인 강가(갠지즈강)와 동일시되고 때로는 쉬바신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가트는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이나 비탈면이란 뜻으로 조성된 이유는 종교적 목적으로 강가에서 목욕을 통해 자신의 죄업을 씻는 것이데 더 많은 사람들이 강가로 갈 수 있게 조성한 것이다. 구분된 가트는 왕가나 세력가들의 소유로 그 주변에 비하르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 있다. 안개가 자욱이 끼여 있는 갠지즈강에는 보트들만 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계단들이 바로 가트다. 장사지내는 사람들을 화장하는데 쓰이는..

카주라호 동부사원군 자인교 박물관과 세 사원들

자인교 박물관을 먼저 보러 갔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종파라 그런지 건물도 에쁘게 지어 놓았네. 안에는 24대의 성자(터탕가르)들의 상을 비롯해 힌두교신들의 상도 전시하고 있었다. 파르스바나트 사원인데 셋 중 가장 큰 사원이다. 뒤로는 산티나트 사원의 첨탑이 보인다. 내부에는 빠르스바나트의 새까만 모습인 '아디나트'에게 바쳐진 사원이어서 이름 붙여졌다. 아디나트 사원이다. 힌두사원과 흡사해 보인다. 11세기 초에 만들어진 4.5미터의 아디나트상이 모셔져 있는 산티나트 사원은 비교적 근래인 백여년전에 만들어졌다. 안에는 다양한 아디나트상이 모셔져 있다. 특히 이 4.5미터의 아디나트상이 모셔져 있는데 1028년에 만들어진 이 상은 금욕을 중시하는 자이나교의 원리답게 체격에 비해 성기는 작게 만들어져 있다...

카주라호 동부사원군과 마을들

나로라 시가르 호수다. 사람들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하는데 어디나 사람들이 참 많다. 세계 2위의 인구대국답다. 동남아쪽은 언제나 사탕등을 준비해 가는데 이 마을에서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 뿐 아니라 노인, 오름들까지 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논빛에서 살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해서 겁이 나고 말았다. 이 중 한 아이가 영어를 좀 하는데다 영민해서 사탕도 맡겨 버리고 따라다녔다. 자바리사원에 도착했다. 카주라호의 사원을 통틀어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11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외벽에 새겨진 요정 압사라의 조각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장식인데 정교하고 아름답다. 천정의 문양도. 소똥을 말리고 있는데 겨울에 난방을 위해서나 음식을 조리할 때 연료로 사용한..

카주라호 남부사원군

아침에 자유시간이 주어져 호텔에서 비교적 가까운 남부사원군을 보러 갔다. 안개가 많이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차길을 당당히 소떼가 점령하고 있다. 소떼를 몰고 있는 할아버지와 한 컷 길을 가다보니 다 허물어져가는 집들과 청년들이 보이는데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남부사원의 최고봉이라는 차투르부즈사원에 도착했다. 한기의 시카라로 이루어진 사원으로 안에는 3미터에 달하는 비슈누신상이 있다. 길에서 인상을 쓰며 똥을 누고 있는 어린애가 보인다. 인도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고 거지들도 너무 많아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학교 운동에서 아이들이 경기를 하며 놀고 있다. 반파되어 형태만 남아 있는 사원들이 보인다.

카투만두 꾸마리 사원, 더르바르 광장

네팔 왕국의 살아 있는 여신인 꾸마리를 모시고 있는 꾸마리 사원이다. 신상이 아닌 살아 있는 여자 아이를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쉬바파르바티 사원이다. 18세기에 바하두르왕에 의해 건립된 힌두 사원으로 특이하게 쉬바와 파르바띠 부부를 동시에 모셔 놓은 것이 특징이다. 사원 위 창문에서 쉬바와 파르바띠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름다운 공작새 문양의 창이다. 세공 기술이 엄청 뛰어나다. 마주 데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