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리투아니아 9

빌뉴스 근교 트라카이

돌아오는 길에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어 경치가 너무 좋아 차를세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그 경치를 제대로 표현을 못해 안타깝다. 리투아니아에는 2,800여개의 호수가 있어 호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단다. 트라카이에 들렀다. 빌니우스에서 30킬로 떨어져 있고 한때 리투아니아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인구 5,000명의 시골 마을 이지만 매년 50만 명 이상이 찾는단다. 트라카이성을 보기 위해서다. 카라이무 거리를 따라 늘어선 나무로 된 집들 중 30번지에는 바그다드에서 생겨나 모세의 율법에만 따르는 유다교의 분파 카라이마이의 19세기초 기도의 집이 있다. 약 100여명의 카라이마이가 트라카이에 여젼히 남아 있다고 한다.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목조각상인데 트라카이성을 완공했고 전투에서도 승리해 리투아니..

사울라이 십자가언덕

샤울레이의 십자가 언덕에 도착했다. 인포메이션과 기념품샵이 있다. 샤울라이 언덕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14세기부터라고 하는데 대량으로 세우기 시작한 것은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31년과 1863년 농민 봉기에 참여했다가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간 이들을 기리기 위해 도만타이 언덕에 하나 둘 십자가를 세웠다. 없애면 밤새 다시 세우기를 거듭해 독립을 갈망하는 리투아니아인들에 의해 십자가는 그 수를 더해갔다. 소련은 급기야 십자가의 언덕을 반체제의 상징으로 여겨 불도저로 세번이나 밀어 냈지만 십자가는 점점 많아져갈 뿐이었다. 1993년 9월 7일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십자가의 언덕을 찾아 '희망과 편화, 사랑, 희생정신의 상징'이라고 선포했고 이후 이 언덕은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 돌아보기

이날은 십가가의 언덕에 가기 위해 차를 렌트했다. 가는 길에 카우나스에 들러보았다.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로빌니우스에서 110킬로 떨어져 있었다. 예쁜 성이 보여 차를 세우고 구시가를 돌아보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고 한적한 모습이다. 카우나스성을 언제 지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14세기 중반 발트해안을 장악했던 독일계 튜튼 기사단이 카우나스를 공격하려고 벽 두께를 비롯한 성의 규모를 알아보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1년뒤 카우나스를 공격해 3주동안 장악했는데 당시 성벽 두께가 11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14세기 말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군이 튜튼 기사단을 제압한 후로 이 성은 왕비의 궁, 17세기 무기고, 18세기 감옥을 거쳐 러시아 통치 때 거의 훼손되었고 1960년 원형..

빌뉴스 성 안나교화와 판 피데우시 동상과 인간띠구조물, 성 베르나르딘 성당

성 안나 교회다. 바늘처럼 뾰족한 탑이 있는 정교한 벽돌 양식의 교회는 가장 독특한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찬란한 플랑부아 고딕양식의 교회는 1501년에 세워진 '붉은 벽돌의 환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건물 전체가 붉은 벽돌로만 이루어진 고딕양식의 교회로 33가지의 모양이 서로 다른 벽돌을 구어 쌓았으며 벽면은 부드러운 곡선도 표현되어 있는 진귀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동화같은 느낌의 건물로 뾰족한 탑들로 지붕 전체가 덮혀 있다. 보헤미아의 건축가 베네딕트가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며 외관에서 고딕의 아치와 게디미나스의 기둥 문양을 볼 수 있다. 1812년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서 가져가고 싶어 했다는 아름다운 교회이지만 그의 병사들은 혹독한 추위를 막고자 교회안의 나무 제대를 불태워 버렸..

빌뉴스의 시청과 성당 거리들

15세기에 리투아니아의 행정, 정치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지만 미흡했고 18세기에 스투오카-쿠쳬비추스가 대성당과 함께 건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6세기부터 시청 광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정보를 어기도 하고 범죄자의 처형을 하기도 했다. 중요 행사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영빈관으로 사용되기도 한단다. 시청을 보기 위해 올라가 보았다. 2층에서는 작품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이오니아 기둥들로 장식되어 있다. 깔끔하고 단아한 느낌이다. 한 이름 모를 성당에 들어가보니 결혼식을 하고 있다. 언제 봐도 신부는 아름답다. 성당의 출입문에 그려져 있던 독특한 그림들이다.

빌뉴스 새벽의 문과 성당, 성테레사 교회,성령교회, 성 카시미르 성당

오늘은 빌니우스 시내를 돌아보러 나섰는데 가는 길에 재미있는 벽화가 보인다. 아래 건물에 흡사 트럼프하고 푸틴이 뽀뽀를 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이다. 일반인들은 모두들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데 정치인들이 참.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낡은 건물들이 나타나는데 빈집은 아니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구시가로 들어가기 위해 새벽의 문으로 왔다. 문 위쪽으로 성화와 리투아니아 전통 문양이 보인다. 1503-22년 사이에 지어진 이 새벽의 문은 성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안쪽에서본 새벽의 문이다. 금으로 장식된 기둥의 상단에 있는 웅장한 팔라디오 양식의 외관과 4개의 기둥을 올려다보면 새벽의 문의 성모 마리아 성지를 모시고 있는 예배당의 아치형 창문을 볼 수 있다. 미사를 드리고 있어 올라가 보았다...

빌뉴스 우즈피스 공화국 과 문학의 거리, 시내 곳곳

빌뉴스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우주피스를 찾아 나섰는데 예쁜 꽃밭을 만났다. 수국과 백합 등 정말 예쁘게 가꿔 놓아 사진을 찍었는데 가만히보니 우리나라의 영세민 아파트 같은 곳이었다. 가난하지만 주변을 가꾸며 잘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주피스는 소련세대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독립과 함께 많은 예술가들이 이 마을로 들어와 낡고 초라한 마을을 특색있고 볼만한 건물들로 바꾸어갔고 활기를 찾았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빌니우스에 있는 지구 이름인데 거짓말 처럼 1년에 딱 하루, 4월 1일 만우절에만 나라가 되는 곳이다. 마이크로네이션을 표방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국기, 국가, 군대, 헌법, 화폐, 정부조직, 각료가 있으며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한단다. 실..

빌뉴스 대통령궁과 대성당 광장 주변, 세십자가 언덕

리투아니아 대통령궁이다. 우아한 네오 클라식 양식의 대저택으로 여러 주교들, 황제들, 왕과 귀족들, 대통령들이 머물렀다. 궁전 앞은 다우칸타스 광장이다. 공연 극장의 출입구 장식이다. 열주식 정방형의 그리스, 로마 신전 형태(팔라디오 방식)의 빌니우스 대성당이다. 공식적으로는 '성 스타니슬라우스와 성 라디슬라우스 대성당'이다. 아름다운 신고전주의 교회로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원래 리투아니아 토속신(천둥의 신인 페르쿠나스)을 모시는 신전이 있었으나 리투아니아를 통일해 첫 리투아니아 대공에 오른 민다우가스가 1251년 이곳에 성당을 지으려 했지만 1263년 사망하면서 무산되었다. 빌니우스 대성당을 완공한 것은 대공 요가일라다. 그는 1387년 폴란드 여왕과 결혼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리투아니아 최초의 목..

빌뉴스 대학교와 성요한성당 등

바르샤바에서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리투아니아는 14-5세기에는 동유럽의 강자로 군림한 적이 있지만 이후에 독일, 폴란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1940년 8월에 소련에 합병되었다가 1989년 8월 23맇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를 잇는 인간 사슬을 만들고 15분 동안 자유와 독립을 외쳤고 발트 3국의 모든 교회와 성당은 종을 울렸단다. 이 인간 사슬은 서울-부산까지의 거리(400km)의 1.5배인 620km나 이어졌고 약 200만 명이 참여했다. 발트 3국의 전체 인구 중 1/3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참여한 것이다. 이후 발트에선 '노래 혁명'이 계속 되었고 소련은 탱크를 앞세워 진압하려 했지만 1991년 8월 끝내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