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네팔

네팔 룸비니-포카라로 이동

boriburuuu 2019. 8. 26. 12:04

마야데비사원을 찾았다. 부다가 태어난 곳에 세워진 사원이다. 부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해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하던 중 산통을 느껴 사라수를 잡은 채 부다를 낳았다고 한다.

 

 

 

아쇼카 석주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다.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휴러가 발견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돌기둥으로 기원전 249년 아쇼카왕이 부다의 탄생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이 석주로 인해 부다의 역사적 실존이 증명되었는데 원래 위에 말조각이 있었는데 벼락을 맞아 떠어졌고 옆의 마모가 심한 돌이 그것이라고 한다. 석주에는 아쇼카왕의 명문이 씌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쇼카왕은 왕위에 오른지 20년 만에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가 부다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위대한 분의 탄생지임을 기려 이 지역의 조세를 생산물의 1/8로 한다."

 

 

이 사원에는 부다 탄생의 모습을 새긴 돌조각이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4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돌 조각에는 사라수 가지를 잡고 옆구리로 부다를 낳는 마야부인과 어린 부다를 받는 브라마가 새겨져 있다. 왼쪽에 있는데 자세히 봐야 보인다. 또 바닥에는 희미하게 부다가 탄생해서 7걸음을 걸어가 한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한 존재다. 온 세상이 고통에 휩싸여 있으니 내 이를 편안하게 하겠다,"고 말했다는 전설에 나오는 일곱 걸음을 걸은 발자국이 남아 있는데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를 않는다. 실제로 봐도 그것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밖으로 나와 마야데비 연못으로 갔다. 마야부인이 부다를 출산한 후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연못이다. 5세기경 이 곳을 찾은 순례승 법현은 "부인이 목욕한 연못은 지금도 사람들이 그 물을 퍼 마신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현장도 "물은 맑고 거울과 같은데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세월의 탓인지 먹거나 목욕 등은 생각할 수 없는 더러운 물이다.

 

 

마야부인이 잡았다는 사라수는 아니고 보리수 나무인데 각국에서 찾아온 순례객들이 기도를 장소이다.

 

 

 

 

 

 

성지 순례를 하러 온 사람들이다. 정말 진지하다.

연못은 그리 깨끗하진 않지만 반영이 아름다워 사방으로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식당 아주머니와 아이의 모습이다.

 

 

이제 버스를 타고 우리는 포카라로 간다. 9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끝없이 달려가는데 길 아래의 하천은 빙하수가 흘러 약간 뿌옇게 보이는 물이다.

 

와보지 않았을 때는 네팔을 추운 지역일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아열대 기후였다. 바나나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길은 좁고 차가 간신히 교행하고 있는데 파키스탄 처럼은 아니지만 트럭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점점 포카라가 가까워지면서 하얀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대니 운전수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우리를 내려주었다.

 

 

 

유채 꽃밭이 펼쳐져 있고 뒤에는 설산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점점 포카라가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