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를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7:20

일행은 공식적으로 페티예의 유적들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어제 유람선을 타고 올 때 보았던 “아민타스석굴무덤”이라도 보고 싶어 숙소를 나섰다(06:00). 그러나 길을 잘 못 들어 호텔 위쪽에 있는 호수 같은 곳에서 일행 몇 명과 같이 일출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페티예의 호텔을 출발(09:00)해 파묵칼레로 향했다. 가는 길의 풍경은 바위산임에도 푸른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밀을 수확한 밭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누런색을 보였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 번 휴식을 취하고, 데니즐리(Denizli) 시내를 거쳐 파묵칼레에 도착(12:40)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식당가였는데, 석회층이 길 옆까지 내려와 있었다. 석회층 아래는 온천수가 고여 있어, 그곳에서 어린이들은 온천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행 몇 명과 식당에 들려 “괴즐레메(밀가루에 치즈와 다진 고기를 넣어 부친 요리)”와 맥주를 시켜 먹었다.

파묵칼레는 마을 뒷산을 감싸고 있는 하얀 석회층이 마치 목화솜이 만들어 낸 성 같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목화의 성”이란 뜻을 가진 파묵칼레가 되었다고 한다. 석회층 뒤편에 자리한 고대도시 유적은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였다. 이러한 자연과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행은 먼저 히에라폴리스에 가기로 했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경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건설한 도시였다. 에페스, 베르가마 등 같은 시대에 대도시가 무역의 이점 때문에 해안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이곳은 내륙에 건설되었다. 그 이유는 온천수를 이용한 질병 치료와 휴양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곳은 1334년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막을 내리고, 1987년 독일 고고학 팀의 발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유적지 주차장에 도착(13:40)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버스들이 주차하고 있었다. 일행은 알리의 안내로 히에라폴리스에 발을 들여놓았다. 입구에 로마문이 서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기둥들이 서 있었으며 지진으로 무너진 유적 잔해가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원형경기장으로 향했다. 극장은 도시 북동쪽 산 경사면에 있었으며, 히드리아누스황제 때인 2세기에 건립되었다. 45줄의 객석에 최대수용인원은 1만 명이었다고 한다. 여기도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복구하고 있었다. 지금 좌석은 어느 정도 복구되었으나, 앞 쪽은 아직도 복구 중에 있었다.  

 

극장 앞 무대가 3층까지 일부 복원되어 있었는데 일행 중 한명이 그 위로 걸어가다 경보음이 들리고 모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매우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일행은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조를 지나고, 아폴론신전을 경유해서 중심거리(메인 도로)에 들어섰다. 그 사이에 있는 유적들은 이곳에 있던 일반주택들이었다. 원형극장 오른쪽 산에는 “성 빌립 순교 기념당”이 있어 일행과 떨어져 그 곳을 다녀 왔다. 그러고 나니 히에라폴리스를 보는 시간이 부족해 달리기를 해야 했다. 아래는 림프들 신전이다.

멀리 보이는 기둥 한 개만 남아 있는 것은 아폴론 신전터다.

중심거리를 지나면 아고라가 있었고, 그 왼쪽에는 “트리톤(해신) 신전”과 땅을 파서 만든 화장실이 있었다고 한다. 원형기둥이 남아있는 메인도로 끝에는 세 개의 멋진 아치가 있는“도미티아누스 문(Domitianus Gate)"이 있었으나, 현재 보수 중이었다. 문을 지나자 왼쪽에는 올리브기름을 짜던 석판이 있었다.

 

비잔틴문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아고라, 오른쪽이 땅을 파고 만든 화장실> 

 

<히에라폴리스의 도미티아누스 문, 현재 보수 작업 중> 

 

<올리브기름을 짜는 석판이 있는 곳>

다시 길을 따라 북쪽인 위로 올라가자, 3세기에 지은 것으로 두 개의 아치문이 있는 목욕탕이 있었다. 하지만 내부를 복구 중이라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이곳은 온천을 이용한 치료와 휴양이 도시의 존재 이유였던 만큼, 목욕탕은 어느 시설보다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일행은 올라오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터키에서 제일 크다는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공동묘지)로 향했다. 옛날 이곳을 방문한 사람 중에는 온천수를 이용한 치료에 희망을 품고 오는 환자가 많았는데, 그만큼 사망자가 많아 대규모의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1,200기에 이르는 무덤이 있는데, 시대와 민족에 따라 무덤의 모습이 봉분과 석관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공동묘지 옆에는 현재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는 나무그늘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모두 모였을 때, 대장의 안내로 석회층에 갔다. 석회층은 아래에서 볼 때보다 엄청나게 넓었다. 또한 말 그대로 목화솜이 쌓인 것 같기도 하고, 얼음이 뒤덮인 호수나 며칠 전에 본 소금호수 같은 느낌도 들었다. 도대체 자연은 인간세계의 어디까지 손을 뻗을 것인가가 궁금하기도 했다. 일행은 길을 따라 내려가며 좋은 곳마다 추억을 남겼다. 석회층에는 요즘 석회석이 포함된 온천수가 적게 나와 매일 돌아가며 일정부분만 흘려보낸다고 했다. 또한 석회층이 훼손될 수 있어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인도만 다니게 했다. 석회층의 두께는 약 4.9제곱Km이고, 매년 1mm정도 증가한단다.

 

 

 

 

 

일행이 언덕을 넘어서자, 그곳에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그곳은 석회층 비탈로 온천수가 흐르는 물길이 변두리에 있고, 안에는 온천수가 고인 웅덩이가 여러 곳 있었다. 거기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가야 하는데 미끄러운 곳이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르내리는 사람이 비켜 다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일행은 흘러가는 온천수에 족욕을 하며 즐겼다.

일행은 석회층 방문을 마치고 버스를 탔다(16:20). 알리에게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니 기독교인이 아니면 두시간이면 좋단다. 기독교인이라고하니 아 그럼 부족했겠네요라고 한다. 나는 숙소로 가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목화를 많이 심는 고장으로 면이 유명하다며 데니즐리 쪽에 있는 면제품판매점으로 갔다. 파묵깔레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온 나로서는 기분이 영 아니어서 상품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데, 일행이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결국 파묵칼레를 지나 넓은 벌판에 외롭게 서있는 호텔에 도착(17:30)했다. 이 호텔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 가까이에 어떤 상점도 없었으나,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방을 배정 받아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과 냉장고를 먼저 살폈다. 다행이 모두 이상이 없었다. 터키의 호텔은 냉장고가 있어도 온도를 조정할 수 없도록 조치해서 별로 시원하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을 식당은 1층에 있는데 아주 컸다. 또한 여러 팀의 관광객이 왔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준비해 놓았다.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이곳에서 별도로 나오는 것이 있었다. 해산물을 삶아서 나오기도 하고 금방 구워서도 주었으며, 피데도 금방 구워서 주었다. 또한 닭고기와 수박 및 오렌지도 떨어질 새 없이 금방 보충해 놓았다. 식당 앞 야외수영장 주위에는 야자수가 멋있게 심겨져 있었다. 9시부터  야외수영장 옆에서 공연이 있어 나이가 조금 있는 한물 간듯한 남자가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역시 나이가 있고 한물 간듯한 발리댄서가 한 명 나와 춤을 추었다. 훌륭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터키 여행중에는 가장 좋은 숙소였다. 한가지 단점은 파묵깔레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일몰이나 야격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음악에 맞춰 혼자 추다가 관광객을 불러내 발리댄스를 추게도 했다. 일행도 몇 명 나가 흥겹게 춤을 추었다. 우리는 맥주를 좀 마시기도 하고 야외 수영장에서 놀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