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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 스코페

boriburuuu 2023. 6. 21. 23:03

아침 일찍 서둘러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우리가 내려서 차표를 끊은 곳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 찾다가 안의 여행사 사무실에 가서 물으니 이곳이 아니란다. 전화를 해 주더니 기차역 앞의 국제버스 터미널로 가야한다고 해서 다시 택시를 타고 가서 간신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나마 여유 있게 하자고 좀 빨리 서두른것이 다행이었다. 택시 요금이 10유로나 나오는 곳이었으니 자칫 잘못 했으면 버스를 놓쳤을 거고 그럼 모든 일정이 꼬였을 것이다. 테살로니키에서 스코페까지는 5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버스에는 우리를 포함해 4명만 타고 있었다. 버스비가 많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성수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비싸야갰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코페에 내려서 환전을 하고 유심을 사서 끼웠는데 택시를 타려니 제대로 작종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게에 가니 삼성폰이 품질이 낮아서란다. 오랫만에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 금액은 5유로밖에 안했지만 속는건 질색이다. 경찰을 찾아 대동하고 가니 통신사가 1시간 가량 고장이라 그후엔 될거라며 그래도 안되면 환불해 주겠다는 답변이었다. 시간만 보낼 수 없어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건데 처음 숙소를 찾을 때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참 유용했다.  개인 주택이라 운전수들이 통화를 하면서 집을 찾아주고 주인과 연락까지 해주기 때문에 집을 찾는 것이 수월했다.  스코페의 숙소는 올드시티에서는 15-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올드 시티로 가는 길에 제일 먼저 오흐리드의 성 클레멘트 교회를 만났다.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수호 성인인 오흐리드의 성 클레멘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교회는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성 클레멘트는 중세 시대 때 불가리아의 성자이자 학자, 작가였다. 기의 제자 중에 잘 알려진 인물로는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 형제가 있다. 교회 앞에 성 클레멘트의 동상이 서 있다. 

교회의 건축은 1972에 시작되었고 1990년 8월 12일 문을열었다.  

돔 형식의 교회 벽화는 조반 페르로프 등에 의해 그려졌다. 

우체국 건물이 남다르다. 

다리를 장식하고 있는 사자 동상이다. 

다리 건너 성채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재미 있는 동상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 

마케도니아 광장에 도착했다. 가장 큰 규모의 이 광장은 스코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광장 중심에는 마케도니아 역사의 시작과도 같은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이 서 있다. 

기마상 아래에 있는 분수에선 음악이 흘러 나온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니었다. 

알렉산더 동상은 공모전을 통해 무명의 여류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마케도니아의 동상은 위인의 업적이 클수록 말이 올라선 각도가 크고 땅에 닿은 말의 발 개수가 작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상은 각도가 엄청 크고 발도 두개만 땅을 딛고 있다. 스코페의 모든 동상은 이 알렉산더 동상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광장에서 조금 나가니 개선문이 나타났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스톤 브릿지는 스코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스코페 깃발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다. 이 다리는 1451-1469년 사이에 만들어졌던 다리(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가 건설)를 재건축한 것이다.  수많은 지진과 홍수를 견뎌냈고 1555년 대지진에도 살아 남았으며 1944년 파시스트들의 폭탄 테러 미수사건 등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강에서 수영하는 여자 동상이 서 있다. 

마더 테레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 있다. 

2009년 1월에 오픈한 이 기념관은 스코페 출신의 마더 테레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원래 이 자리엔 마더 테레사가 세례를 받은 성당이 있던곳이었다. 

성당 옆으로 화려한 돔의 정교회 성당이 있었는데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뒤편에서 바라본 기념관의 모습이다. 

안에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18세에 수녀가 된 마더 테레사는 인도로 파견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살았다. 그로 인해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정치적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찍은사진 중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모습이 보여 반가웠다.  

3층에는 마더 테레사를 기리며 기도를 할 수 있는 성당이 있다. 

창문에 십자가 모양의 창이 있었다. 

주변을 돌아다녀보니 특이한 모양의 건물도 있고 동상들이 보인다. 

이 황소를 보니 뉴욕 맨하탄에 있는 동상이 생각났다. 

가족의 모습이다. 

다리 건너편으로 고고학 박물관, 정부 청사 등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이 다리는 문명의 다리다. 역사 혹은 신화 속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 건물은 마케도니아 기념 박물관인데 마케도니아에서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을 위해 바쳐진 곳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1943년까지 유대인 거주지였다. 

다리 끝 한쪽에 성 클레멘트와 나움의 동상이 서 있다. 

다리  끝 한 쪽에는 키릴 문자를 만든 동방정교회 사도인 성 키릴루스와 그의 형 메토디우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여인들이 어린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동상들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어머니라고 한다.

이쪽 분수는 말의 분수다. 여기 사람들은 말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광장은 필립포스 2세 광장이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이고 꼭대기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니 터키 목욕탕 건물이 보인다. 1466년에 지은 다우트 파샤 목욕탕인데 지금은 내부를 개조해 국립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도 유대인 추모 공간인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