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술관/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폼페이 각종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화들

boriburuuu 2020. 8. 16. 12:21

모자이크화와 프레스코화들이다. 주로 폼페이에서 나온 유물들의 진본이다.

 

 

 

 

기둥까지 모자이크로 장식한 모습을 보니 그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해양 동물 군이다.
폼페이 스타일의 파우노 디 폼페이의 집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는 식물 요소, 분화구, 냄비, 비행 앵무새, 새 및 기타 동물이 있는 프레임을 특징으로하며 지중해의 다양한 식용 물고기를 묘사한다. 오른쪽 하단과 왼쪽의 중간에는 해안 풍경이 있으며, 그 위에는 어부 마틴이 있다. 문어와 바닷가재 사이의 투쟁으로 구성된 중앙 장면 주변에는 새우, 스크랩, 핀, 벽 껍질, 벽, 스크램블, 금박 및 품종을 포함하여 수많은 물고기가 배포된다. 다락방과 특히 이탈리아의 "어류 평면"에 널리 퍼져있는 해양 동물 군의 묘사는 헬레니즘 시대에 개발되고 풍요로웠다. 이 모자이크는 이 문화가 산니티카 폼페이에 침투한 것을 목격하며, 아마도 로마의 휴일 빌라를 통해 중재되었을 것이다

 

 

여성 초상화다.
폼페이의 집 VI, 15, 4의 표지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는 1세기 전반기에 줄리어스 - 클라우디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1 - 49 AD). 초상화는 높은 순위의 폼페이안 여성의 진정한 모습을 재현한다. 평온한 얼굴은 반짝이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구성되며, 두 개의 대칭 밴드로 나뉘며, 그 기간의 패션에 따라 목에 모인다. 엽은 진주 귀걸이로 장식되어 있으며 목에는 금과 귀중한 돌로 펜던트가 있는 진주 실이 있다. 숙녀의 선형은 약간 구부러진 코 모양과 같은 현실적이고 유형화되지 않으며 얼굴의 두 반쪽 사이에는 가벼운 비대칭이다. 두 눈을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점이 분명하다.

파우노의 집에서 발견된 '춤추는 파우노(목신)'의 진본도 볼 수 있었다.
이 조상은 1830년에서 1832년 사이에 파우노의 집에서 발견되었으며, 가장 큰 폼페이에서 빛나는 은혜의 도무스가 발견되었으며, 그 이름은 또한 그 이름을 부여한다. 기원전 1년 하반기(49~1년)에 날짜가 매겨진 청동상은 맨손의 수염을 기른 남자 캐릭터를 묘사하고, 머리는 뒤로 뒤집히고 하늘을 향한 시선을 묘사하고, 꼬리와 손톱은 춤의 단계를 암시한다. 머리와 작은 꼬리에 염소 뿔이 존재하면 파우노, 팬 또는 사티루스의 그림이 식별된다. 실행의 세련미는 헬레니즘 생산 센터, 아마도 알렉산드리아 인을 가리킨다.

 

 

 

 

 

역시 파우노의 집에서 발견된 모자이크화로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3세가 결전을 벌였던 이수스 전투 장면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의 진본이다. 이것은 원본은 아니고 원작을 기초로 해서 폼페이에서 다시 모자이크로 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원작은 기원전 31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돌을 쪼개서 만든 이 모자이크화는 발전된 로마시대 미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같은 색이지만 명암을 달리해 입체감과 사실감이 느껴진다. 돌조각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왕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원래 그림을 묘사해 놓은 것이다. 강인한 전사의 모습으로 긴 창으로 적을 공격하고 있는 알렉산더는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투구를 쓰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적을 공격하고 있고 반면 다리우스왕은 황망하게 도망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 박물관에는 수많은 고대의 포르노그리피도 전시하고 있다.

 

 

질소경관이다.
폼페이의 파우노 하우스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는 알렉산더 모자이크가 놓여 있는 헤세드라의 문턱의 중심(이집트 포르피도의 모방으로 붉은 색으로 칠해진 두 기둥의 받침대에서 분할)을 구성했다. 보라색 프레임 안에는 질소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수로에서 6 마리의 오리가 수영하고, 3 쌍의 동물, 1 쌍의 hycneumon과 코브라, 하마와 악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개의 이비스는 일부 그라미나스가 튀어 나오는 모래 언덕에 직면한다. 모자이크의 주제는 아마도 마케도니아 알렉산더가 정복한 이집트를 암시하면서 계약자에 의해 선택되었을 것이다. 장식 모자이크와 헤세드라의 연결은 상대방 간의 투쟁의 주제를 반영하는 세 쌍의 동물을 묘사함으로써 반복된다. 교차 부리의 두 이비스가 남성과 여성을 묘사하기를 원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

 

 

 

 

 

 

 

 

 

 

 

 

19금의 방이 있는데 집장촌의 문위에 그려놓았던 그림의 원본과 여러 생활 집기들에까지 성적인 표현을 해 놓은 것들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고 전쟁이 잦아 출생률을 높이는 것이 과제이다보니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을 것이고 폼페이가 항구이다보니 각국에서 온 선원들이 많아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작자는 미상인 이 모자이크화는 <판과 헤르마프로디투스>다.  폼페이의 벽화로 원근법이 적용되었다. 매우 사실적인 이 그림은 헤르메스와 비너스의 아들인 헤르마프로디투스가 자신을 쫒아 다니던 님프와 몸이 합해져 양성을 갖게 되었는데 호색한인 판이 그의 남성 성기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 장면을 포착해서 그린 그림이다. 양을 지키는 신인 판은 짐승의 뒷다리와 궁둥이, 다리, 염소 뿔을 갖고 있다.  섬세하게 그려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인 이 그림은 헤르마프로디투스의 고통스러운 외로움과 사티로스 같은 판의 잔인한 행동을 포착하였다.

 

 

 

 

 

 

 

 

 

 

 

 

 

 

 

헬레니즘 법원이다.
기원전 60년경의 폼페이안 스타일의 메갈로그래피는 Boscoreale의 P. Fannius Sinistor Villa의 오에쿠스에서 발견되었으며, 메토프와 코롤라가 스캔한 서신으로 극복된 큰 홀을 묘사하며, 거의 반으로 나눠진 기둥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 에는 마케도니아의 머리 장식, 창 및 방패가 있는 남성 인물이 있으며, 이는 방언 중 하나인 안티고노 고나타를 대표할 수 있다. 왼쪽의 대학 간에는 노인의 인물, 아마도 왕자의 교육자가 태양의 아라토 또는 에레 트리아의 메네 데모와 동일시 될 것이다. 큰 프레스코 화는 유명한 그림의 복제품으로 간주되며 아마도 3세기의 두정으로 간주 된다. A.C.는 실제로 공공 건물이나 마케도니아 궁전에 존재하며, 계약자의 눈에는 정확한 의미가 있으며, 오늘날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마케도니아 왕국에 대한 주제의 연상력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일 제국의 모델이었다.

 

 

 

 

 

 

 

 

 

 

 

 

 

 

 플로라다.
서기 15~45년경에 지어진 폼페이아의 III 스타일의 프레스코화는 1759년 고대 스타비아에 있는 아리아나 빌라의 큐비쿨럼(침대)에서 발견되었다. 녹색 바닥에 있는 프레스코 화는 왼쪽에 있는 칼라토스(바스켓)에 흰 꽃을 넣은 오른손이 있는 나무에서 수집하는 행위에서 어깨를 돌리는 맨발 소녀를 묘사한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를 벗은 노란색 키톤(투노)을 착용하고, 오른팔에 디아라와 팔다리(브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다. 4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원전 1년 동안, 그리고 레다(항상 녹색 바닥), 메데아, 다이애나(파란 바닥)를 묘사한 세 가지 유사한 프레스코화와 함께, 시인의 묘사에 따르면, 인간적 또는 신성한 인물인 님파, 프로세르핀 또는 플로라를 나타내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바쿠스와 베수비우스다.
폼페이의 센테니얼 하우스 2차 아트리움에서 1880년 9월 29일 라라리움(라레스 전용 국내 제단, 죽은 조상의 보호령)에서 68-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폼페이의 IV 스타일의 프레스코화가 발견되었다. 프레스코 화에는 바쿠스와 고립된 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경사면은 서기 79년 분출 전에 베수비우스로 해석된 기둥으로 덮여 있으며, 따라서 전설에 따르면 바쿠스가 자란 니사 산으로 구별된다. 신은 고전적인 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왼손에 티르소 (핀으로 싸인 긴 의식 막대기, 정상에 소나무가 있는)를 들고 오른쪽으로는 칸타로스 (고양이 두 손 컵)를 발치에 웅크리고 있는 팬더에게 제공한다.
장면은 새가 놓여 있는 테이프가 있는 곡선 화환으로 상단에 프레임되고 아래쪽에는 아가토 데몬 뱀이 구부러진다.

정물화다.
62년에서 79년 사이에 날짜가 매겨진 폼페이의 IV 스타일의 프레스코 화는 1755년 7월 13일 폼페이의 이울리아 펠릭스 프라에디아의 표지판(대표실)에서 발견되었다. 원래 벽지에서 분리된 프레스코 화는 나무 프레임에 삽입된다. 측면 파티션은 빨간색으로 바닥이 있는 해상 빌라가 있는 사각형으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에는 노란색으로 펼쳐진 카펫이 있는 메나드와 춤추는 풍자가 묘사된다. 치아 프리즈가 있는 치장 벽토 프레임이 파티션을 상단에 닫는다. 상단 프리즈에는 정물화가 4개 있다.  왼쪽에는 빵, 쟁반 및 달걀 그릇이 있고 두 번째 종의 신선한 물고기, 세 번째 종에서는 쟁반에 가락이 있는 바구니와 메추라기 (와인 주전자)가 매달려 있다. 마지막에는 동전 가방과 도구가 있다. 스크립토륨(오징어, 스타일러스, 파피루스).

 

 

 

 

'사포의 초상화'다 
프레스코 화는 서기 55 ~ 79년에 문체 분석을 위해 날짜가 매겨진 폼페이의 VI, 17 또는 Insula occidentalis에서 1760년 5월 24일에 발견되었다.이 그림은 왼손에 4개의 왁스 칠한 태블릿과 오른쪽에 스타일러스가 있는 흰색 바닥 벽에 눈에 띄는 자빛 바닥 메달에 삽입된 처녀의 흉상을 나타내며, 명상적인 태도로 입술에 닿을 정도로, 거의 글쓰기를 하기 전에 반성하고 싶어한다. 남성 초상화로 펜던트를 만든 사각형은 잘 입증된 패턴으로 지어졌다. 그리스 여류 서정시인으로 플라톤은 그녀를 10번째 뮤즈라 불러야한다고 했다던가. 병풍같이 생긴 서판과 철필을 든 모습으로 작가임을 알 수 있고 옷이나 장신구 등 아름답다.

 

 테렌티우스 네오와 그의 아내다.
1868년 폼페이의 테렌티우스 네오 하우스의 표지에서 발견된 프레스코 화는 55-79 AD(IV 폼페이아 스타일)에 문체 분석을 위해 주어진다. 두 번째 그림은 남편과 아내인 폼페이아 중산층 부부를 묘사하고 있으며, 로비를 통과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환경의 바닥 벽에 배치되었다. 그것은 집 안에 낙서된 비문이 밝혀진 것처럼 테렌티우스 네오 빵집이며, 파키우스 프로쿨루스의 이름이 오랫동안 잘못 생각되었던 것처럼 외부 벽에 그려진 선거인단에 나타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자신을 잘 자란, 교양 있고 세련된 세련된 것으로 묘사한다.  부인의 옷차림과 진주 귀걸이, 금 펜던트, 남편의 하얀 토가를 보면 이들은 서민은 아니고 중산층이었을 것이다. 부인의 손에 들고 있는 철필과 서판을 보면 그들의 위치를 짐작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