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리

2016년 5월 8일 2 로댕 미술관

boriburuuu 2017. 2. 17. 01:41

간신히 일행을 만나 로댕 박물관으로 향했다. 1728년에 지어진 로코코풍의 아름다운 저택으로 로댕이 1908년 부터 죽을 때까지 9년 동안 여기에서 작업하였으며 죽기 1년전 자신의 작품을 국가에 기증해 미술관이 문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정원 오른쪽에 <생각하는 사람>, 왼쪽에 <깔레의 시민>, <지옥의 문>이 있다. 1,2층은 17개의 전시실이 있고 하얀 대리석을 섬세하게 조각한 <키스>, <이브> 등의 작품과 제자이자 애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로댕은 조각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회화 작품도 많이 그렸고 이 박물관에 모네,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키스나 칼레의 시민 등의 조각 작품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것도 너무  좋았다. 건물 뒤의 정원도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 에 오른팔을 괴고 있는데, 그 오른팔은 왼쪽 다리에 팔꿈치를 얹고 있다. 높이 186cm. 작품의 석고상은 1880년에 완성되어, 최초에는 《시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옥의 문》의 문 윗 부분에서 아래의 군상(群像)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을 1888년에 독립된 작품으로서 크게 하여 발표, 1904년 살롱에 출품하고부터 유명해졌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의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키려고 하는 로댕의 시도가 벗은 채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전신 근육의 긴장에 의하여 격렬한 마음의 움직임을 응결시켜, 영원히 계속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강력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살롱 출품 후 파리의 판테온에 놓아두었으나(1906∼1922), 그 후 로댕미술관의 정원으로 옮겨졌다. 모작품의 하나는 로댕의 묘를 장식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탕기 영감의 초상화>이다. 화방을 운영하던 탕기영감은 무명화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파리에 처음 와 낯설어하는 고흐를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그림을 받고 물감을 내어 주었던 넉넉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그림 뒤로 그 당시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일본의 우끼유에가 많이 보인다.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세번이나 그렸다고 한다.

 

 

 

까미유 끌로델의 두상으로 보인다.

 

 

 

 

 

까미유 끌로델과 결혼 약속을 했던 로댕은 아내와 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까미유와 결별한다. 이 조각은 그의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애처롭게 매달리는 젊은 까미유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내인 로즈 뵈레를 모델로 한 조각품인데 정말 아름답다. 로댕은 첫눈에 반해 로즈 뵈레를 모델 삼아 조각을 완성했다. 앳띠고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댕과 결혼한 그녀는 여러 평지풍파를 겪는데 만삭이던 상태에서 남편의 바람피우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 낳은 자식을 남편이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칼레의 시민들이다. 적의 침략으로부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원해서 목숨을 내놓는 칼레의 시민들. 로댕은 이 위대한 영웅들을 표현하면서 위대성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낮은 바닥 위에 배치함으로써 공포와 한탄, 숭고함과 위대성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의 대표작인 지옥의 문이다. 로댕이 죽기전까지 20여년 동안 작업을 반복했던 작품으로 독자적 공간을 가진 <세망령>이 지옥의 문틀 상단을 장식하고 문 상인방 쪽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자리잡고 있다. 위의 <세망령>은 모두 고개를 한쪽 방향으로 떨구고 뭔가에 절망하는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와 흡사하다. 이탈리아 여행 후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깊이 영감을 받은 그는 단테의 신곡의 수없이 읽고 <지옥의 문>을 창조의 순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아래 양쪽 문에는 신곡에 나오는 <웅크린 여인>, <이브>, <아담>, <절망> 등 조각들이 어우러져 있다. 로댕 사후에 주조되었다.

 

 

 

 

 

 

 

 

 

<정원에서 본 로댕 박물관>

 

 

 

 

 

 

 

 

 

 

 

 

 

 

 

 

 

 

 

 

 

<로댕박물관에서 본 군사박물관 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