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폴란드

제3일(07.22) 쉰들러 공장 박물관, 아우슈비츠

boriburuuu 2018. 9. 21. 15:35

 언니가 어제 검색을 해 본 결과 아우슈비츠는 오후 3시부터 무료 개별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오전에 구시가를 돌아보고 쉰들러 공장 박물관에 가보았다. 역시 모든 관광은 비비칸과 문에서 출발한다.  

 


 

 

 

 

 

 

 

 쉰들러 박물관에 가 보았다. 오스카 쉰들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알려진 실존 인물로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 다루는 박물관이다.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을 이용한 저렴한 임금으로 돈을 벌기 위해 크라쿠프로 와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유대인 학대에 대한 비참함에 눈을 뜨고 많은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도왔던 인물로, 박물관이 있는 자리는 영화에도 나오는 오스카 쉰들러의 에나멜 공장이 있던 곳이다.

아래는 비스와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 클라우드카 오즈카라는다리의 모습이다.


 이 박물관에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유대인 격리의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고 유대인들이 생활하던 공간들을 재연해 놓은 공강과 주고 받았던 편지, 전쟁을 알리는 전보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독일인이자 나치당에 입당한 뒤 사업을 햇던 오스카 쉰들러는 전쟁 때 많은 유대인들을 고용하여 구용, 격리로 부터 구출해냈다. 나중에 그로 인한 막대한 지출로 사업이 망하기도 했단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리스트가 바로 오스카 쉰들러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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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부 전시는 오스카 쉰들러가 했던 일 그것에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부터의 크라쿠프 시의 역사를 쓰고 있는 듯 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것만 알고 있는데, 그때 옆에는 소련도 같이 쳐들어가서 폴란드 땅을 점령했다. 폴란드의 역사를 보면 우리 역사가 생각나 동질감이 느껴진다. 주변에 강대국만 즐비해서 여기저기서 침략을 받은 역사이니.

 

 

 


 

 

 

 


 

 

 


 

 

 

 

 


 

 

 

 

 

 

 

 

 

 

 

 


 쉰들러가 구한 유대인 직원들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크라쿠프 역 박물관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1시 조금 넘어 아우슈비츠에 도착해서 티켓부스에서 무료 개별입장 티켓을 받았는데 오후 5시 티켓이다. 며칠전까지는 3시 이후 입장이었는데 성수기라 사람이 많아서 5시로 바뀐 것이다. 여긴 한번 와서 가이드투어를 받았는지라 기다리기로 하고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에 먼저 가 보기로 했다. 노란색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하고 있었다. 

비르케나우는 아우슈비츠의 수용에 항계가 있어 본격적으로 대량 학살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건설한 수용소였다. 아우슈비츠에 비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였다.

 워낙 규모도 크고 수송의 효율성을 위해 철로가 수용소 안쪽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유대인 학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 가슴아팟다.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들이다. 전기 철조망으로 17킬로가 이어져 있다고 한다.

 

 

 

 


 한 건물에서만 그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3층으로 된 저 좁은 공간에 3층으로 사람들이 생활했다고 한다. 

 

 드디어 아우슈비츠로 들어간다. 앞에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간판을 달아 놓았다.

 

 전에 왔을 때는 한 장소만 박물관으로 만들어 전시를 했었는데 이번에 보니 각 건물마다 새롭게 정비해서 전시물을 나누어 놓았다. 그걸 모르고 찾느라 애를 먹었다.

 

 

 

 

 

 

 원래 이곳은 폴란드군의 병영이었는데 나치가 포로 수용소로 쓰면서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초기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폴란드 정치범들, 집시들, 심지어 장애를 가진 독일인들까지 다양했다. 히틀러가 인종 청소를 시키려고 했던 대상들이 말이다. 

 

 

 

 

 

 

 

 

 

 

 

 

 

 

 

 

 

 

 가엾긴 했지만 모아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유대인들의 경제력과 그것을 뺏기 위해 히틀러가 저지른 학살의 연관관계가 이해가 되었다. 1940년대의 옷이나 그릇 등은 지금 우리가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품질이었으니 말이다.

 

 총살의 벽이다. 나치는 총알을 아끼기 위해 죄수를 세워 놓고 벽에 올라 앉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이 막사는 생체 실험이 이루어졌던 곳이란다. 그래서 창문을 완전히 밀봉해 버렷다.

 

 

 

 

 샤워실의 천장 구멍이다. 나치는 온도가 올라가면 기화되어 독을 뿜는 자갈 같은 것을 많은 사람들을 집어 놓고 던졌단다. 그들은 서서히 죽어가면서 무슨생각들을 했을까?

 

 시체 소각로다. 시체가 너무 많아지자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잇도록 아래와 같은 기구를 고안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이 건물은 무도회장이다. 나치의 장교와 그의 가족들이 파티를 즐겼던 장소라니 참 인간이란.

 

 역시 전통 복장을 한 유댈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다시 있어서는 안될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