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폴란드

제1일(2018. 07.20) 크라쿠프로 이동 구시가 광장, 성마리아 성당 바벨성 등

boriburuuu 2018. 9. 21. 15:21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약 558년간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는 14-6세기까지 프라하, 빈과함께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세계2차대전때도 독일군 사령부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전쟁 피해가 적어 잘 보존되었다. 해서 1979년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크라쿠프 비비칸의 모습이다. 동화 나라같다.

 

 

 

 

 

 플로리안스카문이다. 크라쿠프 구시가지 지역은 중세 시대에 8개의 문을 가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오늘날가지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문 안에 작은 예배소가 있고 문 앞에서는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아코디언, 나팔 등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크라쿠프에 있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이다. 공주가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인데 레오나라도 다 빈치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의 진품을 볼 수 있어 가기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내부수리중이어 문을 닫았다. ㅠㅠ

그러나 다행히도 그 작품만은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해서 나중에 그곳을 가 보았다.

 

 <헤르메스의 동상이 있다>

 

 

 

  <차르토리스키 미술관>

 

 

 

 크라쿠프 중앙광장이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큰 광장이란다. 중앙부에 있는데 특히 인근에 많은 역사 유적과 고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가치가 높다. 이 광장 앞 거리에는 고풍스러운 마차가 오가며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공장 한쪽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크라쿠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아름다운 두 개의 탑을 갖고 있는데 1222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고 두 첨텁 중 높은 탑은 81미터의 감시탑이고 낮은 것은 69미터의 종탑이다. 매 정시가 되면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옛날 타타르족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불던 나팔수가 타타르족이 쏜 화살을 목에 맞아 주어서 그를 애도하기 위해 '나팔병의 연주'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직물회관 수키엔니체다. 길이가 100미터의 건물로 각종 기념품과 수공예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4방 모두 입구가 있어 광장 어느 방향이든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2층을 국립 미술관이다.

 

 

 

 

 

 폴란드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우는 '아담 미츠키예비치'의 동상이다. 비둘기들은 역시 동상을 좋아하나보다.

 

 광장 한쪽에 이렇게 조그만 성당도 있다. 크라쿠프에서 가장 오래된 성 보치에하교회다.

 

  

 

 

 

 

 

 크라쿠프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 쪽 도로에는 중세의 우주관이던 천동설을 부인하고 처음으로 지동설(태양중심설)을 주장하여 근대자연과학의 눈을 뜨게 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했던 야기에오 대학교가 있어 가보았다.

야기에오 대학은 먼 훗날 로마교황이 된 청년 보이티와가 다닌 대학으로서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보이티와는 징병을 피하려고 공장 근로자․ 채석장 노동자 등으로 일했으며,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서 많은 유대인들의 피신을 도와주었다. 1942년 대학을 졸업한 보이티와는 1946년 천주교 사제가 되었으며, 모교의 신학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보이티와는 1964년 크라쿠프 성당의 대주교였다가 1967년에는 추기경이 되었는데, 1978년 가톨릭 역사상 455년 만에 비(非) 이탈리아권 출신 로마교황 바오로 2세가 되었다.

 

 

 

 

 

 

 

 

 

 

 

 

 

 이 대학의 독특한 지붕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바벨성으로 갔다. 성 안에는 왕궁을 비롯하여 왕궁 성당인 바벨 대성당 등이 있다. 바벨 성은 1795년 폴란드의 3차분할로 지도상에서 폴란드가 사라졌을 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가 군사병원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나치 독일의 한스 프랑크 총독의 저택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불운하게 유지되어 오던 바벨 왕궁은 역설적으로 고성들이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2차 대전이 끝난 뒤 폴란드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은 전체적으로 타원형인데, 비스와 강 건너에서 바라볼 때 정면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붉은색 지붕이 바벨 왕궁이고, 성 왼쪽 앞에 2개의 첨탑이 솟은 건물이 왕궁 성당인 바벨 대성당이다. 바벨 성의 아담한 규모나 건물들의 독특한 양식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을 떠오르게 하는데, 바벨 성의 입장은 매일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바벨 성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바벨 성당이 있는데, 바벨 대성당은 20개의 고딕 양식 예배당이 있다. 그 중 황금색 돔인 지그문트 예배당은 1499년 화재로 왕궁이 전소되자 지그문트 1세가 1502년부터 1536년까지 성을 재건하면서 르네상스 양식을 많이 가미해서 동유럽에서 다양한 유럽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한다. 바벨 성당에서는 왕의 대관식과 왕족의 결혼식을 거행했으며, 왕의 사후에는 장례식을 치르고 성당 지하에 무덤을 만들었다. 성당에는 많은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예상보다 훨씬 넓은 지하공간에는 묘 하나하나마다 화려하여 당시 폴란드 왕의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심지어 가짜로 벽을 만들어서 그 안에 숨겨놓은 묘도 있다.

 

 <신학 대학 건물>

 

 

 

 

 

 

 

 <바벨 대성당 외관>

 

 <교황 요한 바오로>

 

 

 

 <쇼팽의 묘>

 

 

 

 <교황 요한 바오로 예배당>

 

 

 

 이번에는 국립 미술관에 갔다. 다빈치를 만나기 위해서다.

 

 

 

 다른 층은 폴란드 화가들의 작품들이 있고 해서 그리 볼거리가 많지 않았고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은 한층의 한 방을 오로지 그 그림민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고 관람객들을 위해 따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사진을 찍어 걸어두는 배려(?)를 하고 있었다. 진품을 가까이서 원없이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