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청도

제2일 잔교, 저장루 천주교당, 피차이위안, 왕저소고, 찌모루 시장, 루쉰공원, 소어산,팔대관,야경

boriburuuu 2019. 3. 27. 00:30

 오늘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잔교를 먼저 찾았다. 청도에는 시내버스가 1원과 2원의 버스가 다니고 있었는데 먼저 탄 버스는 1원인데다가 차장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차장이 있는차를 타기가 쉽지 않았다.무화과님과 언니가 한자를 잘 알아서 여행을 하는 동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청도는 그리 볼거리는 많지 않은 도시여서 워밍업하듯 돌아보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저멀리 잔교가 보인다. 잔교는 청도의 상징으로 청도의 제1의 관광지로 꼽힌다. 1891년에 독일군과 일본군의 침략을 막기위해 건축된 가장 번화한 상가인 중산로와 일직선으로 놓인 440m의 다리이며, 바다 수면으로 부터 10m 높이에 있다. 청도만내에 위치하였고 번화한 중산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잔교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용이 목을 펴고 바다속에서 물장난 하는것 같다. 1931년에 국민당 정부가 투자하여 재건설하였으며 1933년에 준공되었다. 잔교는 길이가 44미터, 넓이가 8미터이며 남쪾끝은 반원형의 방파제 방뚝이고 제방위에는 회란각을 세워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서 상정각에 올라 파도를 볼 수 있어 <청도10>의 하나로 불리운다. 애석하게도 유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바다와 잔교를 즐기고 있었다.

얼핏 보면 뉴욕의 맨헤튼이나 토론토섬에서 나오는 풍경인줄.

 

회란각으로 들어가는 다리의 이 많은 인파라니.

회란각 내부는 비석과 사진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입장료는 받지 않는대신 위로는 올라갈 수 없어서 한바퀴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문맹의 설움이 느껴진다.

 

 

 

 

 

 

 

이번엔 저장루 천주교당에 가 보았다. 1932-34년 독일인에 의해 설계되어 지어졌다. 1970년대까지 청도에서 가장 높은 고딕 성당이었고 바다에서 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빨간 첨탑이었다고 한다. 높이 60미터의 첨탑안에는 4개의 종이 있어 시간을 알렸다고 하는데 문화혁명 당시 심하게 훼손되어 독일이 비용을 내어 1982년 부활절에 맞춰 새롭게 재건해서 문을 열었고 내부는 15원의 입장료를 내고 방문했다. 유럽의 성당들과 비교하면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스테인드글라스나 14처 등 성당이 갖춰야할 것들은 갖추고 있었다. 무화과님은 65세 이상이라 면제를 받으셨다.

 

천주교당 앞에는 신혼부부를 위한 식당이 있고 그 앞에는 연주와 공연팀이 있어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성모마리아의 동상이 보인다.

내부의 모습들이다.

 

 

 

 

 

 

 

 

 

밖으로 나와보니 신혼부부들을 위한 공연이 한창이었다. 신혼부부도 한쌍이 아니라 여러 쌍이 보인다. 멋진 차들도 여러대이고.

 

 

 

 

 

 

 

 

 

 

 

 

 

식당 내부의 모습이다.

 

 

 

 

완저소고에 가 보았다.1986년 문을 연 오징어 구이집인데 백종원이 극찬한 집으로 유명하단다. 우리도 15원씩을 주고 오징어구이를 먹어 보았는데 크긴 했지만 질긴 느낌이다. 줄울 서서 한참만에 먹을 수 있는걸 보니 유명세는 분명하다.

 

 

피차이위엔으로 갔다. 110년 전통의 상업 거리로 1902년 중국의 조차지였던 시절 서민들이 즐겨 찾았단다. 아치형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인자 모양의 골목을 따라 2-3층의 건축물이 이어지는데 이러한 골목을 ‘리위엔’이라 부르며 베이징의 후퉁, 상하이의 롱탕들과 같다.  먹자 골목으로 해산물, 파인애플밥, 꼬치구이 등이 있고 유명 식당은 강녕식당으로 100년 이상 전통 가게에 수여하는 노자호 명패가 걸려 있다. 춘화루라는 식당도 있다.

 

 

 

 

 

 

 

 

 

이번엔 물어물어 찌모루 짝퉁시장에 가보았다.  찌모루 짝퉁시장은 청도에 여행 온 사람들이 한번은 들러보는 곳이란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곳으로 유명메이커의 가방이나 신발 등의 모조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다. 보통 중국 상인등이 판매하는 가격의 50%이상은 깎아서 사야한다고 한다. 여행을 참 많이도 했지만 이런 곳을 가보기는 처음이니 가볼만한 곳이 없는건 확실하다. 언니와 난 여기서 백팩을 하나씩 샀는데 나중에는 크로스도 하나 살걸 하면서 후회를 했다. 쇼핑도 여행의 한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루쉰공원으로 향했다. 소나무숲과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공원으로 1929년 해변공원으로 문을 열었다가 1950년에 루쉬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화강암으로 된 높이 3미터의 루쉰의 조각상이다. "위대한 사상가요, 혁명가요, 중국 문학의 아버지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혁명가 마오쩌둥의 한마디에는 루쉰에 대한 중국인의 평가가 모두 담겨 있다. 루쉰은 중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작가이자, 중국 문화혁명의 지도자로 중국 현대 사상계를 이끈 인물이다. 또한 마오쩌둥을 위한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되며,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특히 192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Q정전》은 당대 중국의 현실을 집약한 것으로, 루쉰을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신해혁명 전후 농촌을 배경으로, 최하층의 날품팔이 아Q가 혁명당원을 자처하지만 결국 도둑으로 몰려 허무하게 총살당하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해혁명의 좌절과 평범한 중국 사람들의 정신 구조를 아Q를 통해 보여 줌으로써 중국 구사회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바다 쪽으로 내려가니 바위들의 모양이 남다르다. 여름에 오면 즐기기가 좋을 것 같았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아쿠아리움등 놀이시설들이 보였다.

 

이번에는 전망을 보기 위해 샤오위산(소어산)에 올랐다. 해발 60미터밖에 되지 않아 산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이곳은 오래전부터 어민들이 그물과 생선을 말려서 어산으로 불리다가 독일군이 포대를 형성하면서 샤오위산으로 불리웠단다. 1984년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18미터 높이의 누각 전망대인 남조각을 세웠다.

<내부 천정>

누각에 오르니 샤오 칭다오, 루쉰공원, 해안가 주택들의 빨간 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한 곳을 방문한 느낌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전망이 좋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구글 검새이 안되다보니 다음 목적지를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 길을 묻다보니 우리말이 들려서 보니 우리 말을 잘하는 중국 아가씨와 일행 두 명이었다. 팔대관까지 가는 버스 등을 탈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어 감사의 뜻으로 쵸콜릿을 건냈다.  한류 때문인지 우리 말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다들 친절해서 감탄하곤 한다.

 

 

돌아다니다 만난 체육관이다. 팔대관은 하늘을 덮을 만큼 우람하게 자란 히말라야 삼나무가 가로수를 이루고 백일홍, 작약, 모란과 푸른 잔디가 어우러져 있는 칭다오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로이다. 구역안에 8개의 큰 길이 교차하는데 길 이름마다 '관;자가 들어가 팔대관이라 부른단다. 지금은 길 2개가 추가되어 10개의 길이 종횡으로 교차한다. 만국 건축 박물관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 1920년대 칭다오에 주재하던 영사관과 각 주재원들이 지은 별장이 70만 제곱 킬로의 면적에 운집해있다. 독일 뿐 아니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 스페인, 덴마크 등 24개 국가의 건축 양식이 집결해 있는데 그 중 우리는 1930년대 덴마크 영사가 덴마크 공주를 위해 지었다는 공주루에 가 보았다.

안데르센 동화에서 튀어 나온듯한 낭만적인 외관을 가진 공주루는 웨딩촬영의 장소로도 인기가 높단다. 2015년부터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데 내부는 온통 안데르센의 동화 <엄지 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인어 공주>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1930년대에 지어진 화석루다. 1931년 러시아 귀족이 지은 것으로 누각은 대리석을 외장 전체는 화강암을 깎아 장식했다. 한 때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가 별장으로 사용했단다. 내부에는 그가 사용했다는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집 근처에 있는 5.4광장으로 야경을 보러 나가보았다. 중국은 전기 사정이 좋아서인지, 아님 화려한걸 워낙 좋아해서인지 도시마다 야경이 화려하고 볼만했다.

광장 중심에 있는 5.4 운동을 상징하는 '5월의 바람'이란 조형물이다. 바람을 형상화하고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색을 덧입혀 마치 타오르는 횃불처럼 제작되었다. 높이 30미터, 직격이 27미터로 길 건너에서도 한 눈에 쏙 들어오는데 칭다오가 5.4운동의 도화선이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5.4운동의 발단은 1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독일이 산둥성의 귄리를 일본에 양도하라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데 격분한 베이징의 3,000명의 학생들이 1919년 5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 반대 집회를 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급속도로 확산되어 1922년 마침내 일본군을 칭다오에서 몰아냈다.

 

 

내친김에 야경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잔교로 가보았는데 애석하게도 왠일인지 야경을 밝히지 않아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