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리

(6월 11일) 오르세 미술관 바르비종파 외 여러 화가들1

boriburuuu 2019. 6. 27. 22:01

아침을 먹고 오르세로 갔다. 뮤지엄카드가 었음에도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먼저 0층의 밀레를 보고 5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1857년 살롱에 출품되어 평단의 혹평을 받았는데 주제보다는 사실적으로 표현된 여인들의 노동으로 검게 탄 거친 검은 손, 얼굴 등에 대한 것들이었단다. 밀레는 농촌의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에서 벗어나 추수 후 남은 이삭은 얼마 되지 않고 지주의 허락을 받아 삶을 이어가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사실주의적인 표현으로 그려내어 오히려 숭고한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역시 밀레의 대표작인 <만종>이다. 오르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미국 미술협회에 팔렸던 것을 모금운동까지 벌여 되찾으려 했으나 실패한 것을 그림을 팔았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사들여 루브르에 기증했다고 한다. 비르비종의 여느 화가들이 멋진 자연 풍광에 열중하ㅣ는 동안 밀레는 풍경 안에서 노동하고 안식을 취하는 농부들의 가난하지만 숭고한 일상을 표현했다. 부부의 발치 아레 감자 바구니는 원래 아이의 시신이 담겨 있었다고 하는데 너무 잔인하다는 친구의 충고에 밀레가 관을 지우고 감자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부부의 자세가 너무나 평온하고 잔잔해서 마치 죽은 예수의 시신 앞에서도 우아한 품위를 잃지 않는 마리아가 버티고 선 르네상스 고전 예술을 보는 것 같다.

역시 밀레의 <양치는 소녀>다.

밀레의 <봄>이다.

밀레의 <키질하는 사람>이다.


콜스탕 트루아용의 <황소들이 일터로 나가는 아침>이다. 바르비종파의 일원으로 <흰 소>와 같이 전원 풍경 속에 소, 양의 모습을 도입한 동물화가다.

샤를 에밀 자크의 <목초지의 양떼>이다.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으로 자연과 동물이 어우러진 소박하고 목가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양 그림에 몰두하여 '양치는 자크' '양의 라파엘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콩스탕 트루아용의 <거위와 소떼를 치는 소녀>이다. 트루아용은 19세기 대표적인 동물화가로 바르비종파의 7인중 하나다.

 

밀레의 <소 떼들의 귀가>다. 밀레가 젊었을 때 사용한 '화사양식(화려한 색채와 활달한 붓놀림)'의 한 그림이다. 로코코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계를 위해 유행하던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밀레는 이때의 작품은 실수였다며 자책했다고 한다.

밀레의 <양치는 소녀와 양떼>이다.

밀레의 <그레빌의 노르망디 우유 장수 >다.

카미유 코로의 <아침. 소를 지키는 여인>이다.

쥘 베르통의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이란 그림으로 교향 코리에의 소작농의 일상적인 삶을 재현했다. 왼쪽 위에 초승달이 떠 있고 그 아래 경찰은 마일 표석에 기대 서 있다. 늦은 오후의 따뜻한 황금빛이 나무 뒤로 빛나고 있다. 쥘 베르통은 노동 계급의 비참한 상황보다는 목가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표현해 1859년 황후 외제니가 반해 남편 나폴레옹 3세에게 구입을 권유해 생 클로 성에 전시되었다가 뤽상부르 미술관에 기증했다.

쥘 베르통의 <저녁>이다. 역시 목가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윌리엄 모리스 헌트의 <시골 처녀>다.

마리 로잘리 보뇌르의 <니베르네에서의 경작>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여류화가로 평생 동물 세계를 면밀히 관찰하며 전문적인 동물화가로 활약해 여성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까이유 코로의 <님프의 춤>이다. 대표적인 풍경화가인 코로는 19세기 프랑스 예술계가 가장 주목한 풍경화에 님프를 등장시켜 신화적 주제에 열광하는 취향을 만족시켰다. 1850년 코로는 바르비종 마을로 들어갔고 야외에서 그림을 제작한 바르비종파의 일원이다. 

까미유 코로의 <아모르와 함께 있는 님프>이다.

오노르 도미에의 <크리스핀과 스카핀>이다.

옥타비아누스 타세르트의 그림인데 <엄숙한 가족>이다.


위그 메를이 그린 <구걸하는 여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지라니.

샤를 뒤란의 그림<회복기에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제임스 티소의 그림인데 나락으로 떨어지면서까지 사랑했던 케슬린 뉴튼의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임스 티소는 낭트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자크 조제프 티소이다. 일찍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으나 1856년 무렵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건너갔다.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23살 때 파리 살롱에 처음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초기에는 사교계 부인들의 매력을 단아하게 묘사한 작품을 발표하여 빠르게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이후 파리 코뮌에 참여한 뒤, 1871년 무렵 영국으로 망명, 런던에서 에칭, 캐리커처, 초상화 등을 공부하였다. 작품 후반기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져 예수의 일생을 다룬 삽화를 많이 그렸는데, 1896~97년 파리와 런던에서 예수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그린 연작을 전시하였다.

존 요셉 벤자민 콘스탄트가 그린 <길다란 오달리스크>다.


샤를 투르메닌이 그린 <아프리카 코끼리>다.

드라크루아의 작품도 보인다. 역시 터치가 강렬하다. <

들라크루아의 <마굿간에서 싸우는 아라비아 말들>이다. 동양적인 정취와 분위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제리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화가들과 공유했다. 동양의 풍속에 관한 역사적 일화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고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관능적 배경 속 쾌락의 장소로 동양을 묘사했다.  이 그림은 만년작으로 제작 후 3년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말그림 연작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란다. 루벤스의 영향이 나타난다.

외젠 부뎅의 <트루빌 해변의 목욕객들>이다. 부댇의 양식은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중요한 선례를 제공했고 특히 모네에게 영향을 미쳤다. 부댕은 푹경화에 능했으며 특히 해안 풍경화에 능숙했다.

외젠 부댕의 <트루빌의 해안>이다.

제임스 티소의 <무도회>이다. 역시 귀족 여인들의 드레스가 남다르다.

제임스 티소의 성화 중 하나인것 같은데 제목은 잘 모르겠다.


알렉산드르 카바넬의 <켈러 백작부인>이다.

샤를 뒤랑의 <장갑을 낀 귀부인>이다. 화가의 아내안 폴린을 모델로 그린 그림으로 우아한 포즈가 두드러지는데 의지가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을 잘 드러낸다. 유혹하듯 땅에 떨어진 장갑과 매력적인 손 모습, 기품 있는 태도 등이 보이고 모든 것이 검은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극히 제한적 색채의 선택이 화면에 매력을 더하는 작품이다.

에밀 베르나드의 <용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