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미술관/레오폴드 미술관

3일 레오폴드 미술관의 클림트

boriburuuu 2019. 8. 18. 21:46

이제 우리는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보기 위해 레오폴드 미술관으로 향했다. 먼저 클림트의 그림을 보러 갔다. 다수의 여성들의 초상화가 있었는데 나의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맹인 노인의 초상화였다.

클림트의 <클라라 클림트의 초상>이다. 1880년.  클림트의 누나로 그림을 그릴 때 20세였다.

 

1894년 작 <마리 브로이니크의 초상>이다. 젊은 시절 클림트가 그렸던 고전적인 그림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청년 예술가는 성공이 보장된 길을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찾았다. 그이 생애 전체의 걸작이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키스>를 그리는데 15년이 걸리는 동안 많은 평지풍파가 있었다.

<피아노 앞의 쇼팽>이다.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와 많이 비슷하다.  클림트의 작품이 변화하는 중간 단계의 그림으로 분위기는 몸환적이면서 으스스하다. 주면의 여성들은 아무 표정 없이 희부옇게 빛나는데 음악을 듣기 위해 나타난 뮤즈들 같기도 하고 창백한 망령 같기도 하다.

클림트의 <여자친구(자매들)>이다. 1907년.  화가는 여름 동안 아터시에서 새로운 그림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The Sisters"라는 제목으로 우아한 겨울 의상을 입은 두 명의 비엔나 여성을 묘사한다. 

빈 대학교 신축건물에 의학, 철학, 법학의 세 학부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는 의뢰를 받아 알레고리화의 초안을 제출하자 강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클림트가 교수들의 능력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는 나체 임신부를 그렸을 뿐 아니라 무기력하게 떠도는 사람들, 학문의 승리를 찬양해야하는 그림에 죽음과 무상함을 그려서 공개 토론에서 신랄하게 비판받았고 <철학>은 1900년 파리의 세계미술전시회에서 1위를 했으나 인정 받지 못한 그는 <철학>을 후원자에게 팔아버렸다. 이후 이 그림들은 화재로 전소되고 말아 흑백 사진만 남아 있고 이 사진을 근거로 이 미술관에서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의학>이다. 중앙에 의학의 여신 히게이아가 당당히 서 있지만 등 뒤에서 생과 사가 갈리는 현장을 외면하고 있다. 그녀의 뒤로 병과 고통에 고통받는 인간들이 물위를 떠가듯 흘러간다. 이 흐름 가운데 검은 베일을 둘러싼 해골이 보인다. 이들은 레테의 강물 즉 죽음으로 향하는 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그림은 의학의 힘으로는 운명을 이길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듯하다. 그림 왼편의 누드는 젊은 여인으로 무력하게 강물에 몸을 맡기고 있어 곧 오른편의 죽음의 덩어리로 쓸려갈 것이다. 삶의 불가항력적인 면모를 더욱 강조한다. 빈 대학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철학>이다.  교육부가 '철학'을 그려 달라며 화가에게 제시한 주제는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였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계몽적 메시지였다. 그로부터 6년 뒤 '철학'은 1900년 3월 빈 분리파회관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런데 클림트가 완성한 철학은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벌거벗은 노인, 서로 부둥켜안은 젊은 연인들, 어린 아이 등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 물줄기처럼 저 멀리 은하수 같은 곳으로 빨려 간다. 클림트는 철학을 존재의 고통과 죽음으로 해석해 표현했다. '철학'은 빈 화단에 천재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언론, 교육부, 미술계 등 빈 사회는 시대를 앞선 천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생각하는 뻔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천재 클림트는 누구도 생각 못 한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다. 과거에 얽매여 있던 화단의 기득권 세력이 클림트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파문이 확산됐다. '클림트가 흉측한 그림을 그려놓고 철학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빈에서 뭇매를 맞은 이 그림은 4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받는다.

<법학>이다. 두 손이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꿇어 앉아 있는 늙고 남루한 피의자의 모습이 보인다. 남자 주위로 고르곤 같은 여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괴물같은 여자들은 피의자를 압박하는 불의의 화신처럼 보이고 남자는 카프카의 <심판>처럼 부조리하게 처단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법과 정의의 여신은 그림의 뒤편에 보일 듯 말 듯 오만한 표정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키스와 함께 그의 걸작으로 인정 받는 <죽음과 삶>이다.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5년 이상이 걸렸다고 하니 그가 여기에 얼마나 큰 열정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해골 모양을 한 '죽은'은 십자가로 장식된 의상을 입고 몽둥이를 꼭 쥔채 고양이처럼 조용하 '삶'에 다가온다. 오른편, 하나로 뭉쳐잔 '삶'에는 아기와 어린이, 여자와 남자와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행복, 절망에 빠진 상태다. '삶'의 군상들은 목전의 '죽음'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클림트는 애초 배경을 황금색으로 정했다가 초록빛이 도는 검정으로 바꾸었다. 죽음은 마치 밤처럼 갑자기 그러나 필연적으로 다가와 삶을 정복하고 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3년이 못되어 클림트에게 죽음이 덮친다.

그림에 담아낸 삶의 수수께끼인 <처녀>다. 클림트 만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꿈꾸는 여자의 얼굴은 삶이 결국 하나의  백일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말갛고 앳된 여인의 얼굴과 유난히 밝고 화려한 색채는 역설적으로 클림트의 우울한 심정을 말해준다. 

<신부>다.  클림트는 일단 스케치를 여러 장 하면서 구상을 가다듬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었다. 이 그림은 무려 140장이 넘는 스케치를 그렸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겼다. 

<소나무 숲>이다. 숲인데 빽빽이 그려져 있는 나무는 너무 어두워 보이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는 매우 특별했다.

 

 

<뇌우>란 작품이다. 처음엔 오른쪽의 사이프러스나무에만 눈길이 갔는데 폭풍우가 오기 전 하늘의 모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클림트의 사진이다.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원에는 고양이가 자주 나타나 정성껏 동봐주었다고 한다.

 

클림트가 가장 신뢰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한 인생의 반려자인 에밀리 플뢰겔의 사진이다.

 

 

<아터 호수와 섬>이다. 클림트는 여름마다 아터호수를 찾았고 50점 이상의 풍경화를 남겼다. 이곳은 소란스러운 빈을 벗어나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  그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위로의 공간이었다. 이 섬에는 성이 있는데 클림트는 성을 표현하지 않았는데 온전한 자연을 표현하고 느끼고 싶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