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드레인의 <폴 기욤의 초상>이다. 1919년. 안드레 드레인은 또 다른 시인이자 예술평론가인 기 아폴리나레의 조언으로 시인 맥스 제이콥을 통해 젊은 미술상 폴 기욤을 만났다. 1916년부터 폴 기욤은 미로메스닐 루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디레인에게 개인 전시회를 헌정했다. 폴 기욤의 초상화는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고 그는 그가 가까운 예술가들에 의해 그의 이미지를 그린 것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는 우아하게 나타나서, 냉정한 톤으로 칠해진 무표정하고 분리된 공기를 가지고 관람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흉상은 수평 붓놀림으로 구성된 푸른 바탕에 눈에 띈다. 그의 양복과 나비 넥타이도 눈처럼 파랗다; 파랑은 사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폴 기욤은 왼손에 거의 꺼진 담배를 들고 있는데, 이 그림의 유일한 편안한 면인 반면, 그는 펼쳐진 책(예술책이나 카탈로그?,그러나 모델의 얼굴 모양이 기형적이기 때문에 물리적 유사성은 매우 강하지 않다.
앙드레 드레인의 <폴 기욤 부인의 초상>이다. 1928년. 나중에 장 월터 부인이 될 폴 기욤 부인의 이 초상화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진정한 닮은꼴이다. 도메니카는 우아한 모자와 우아하게 장식된 옷을 입고 세상의 여성으로 등장한다. 세심하게 화장한 얼굴은 심각해 보이고, 강조한 눈은 관람자를 직접 바라보는 것 같다. 화가는 폴 기욤이 죽은 후 탐욕스럽고 부도덕하며 남편과 연인을 조종하고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힌이 여성의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 보는 데 성공했다. 드레인의 초상화는 '다이아볼릭' 도메니카의 상징이 되었다. 배경에는 붉은 커튼이 풍부하게 꾸며진 내부를 연상시킨다. 오른쪽에는 폴 기욤이 드레인에서 의뢰한 위대한 그림인 피에로트 와 할리퀸의 희미한 스케치를 알 수 있다. 도메니카의 초상화는 1929년(파리)에 애비뉴 포치가 된 드보이스 애비뉴에 있는 폴 기욤의 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앙드레 드레인의 <게임 가방>이다. 1913년. 안드레 드레인은 특히 인간의 모습이나 풍경의 표현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주 일찍부터 정물화를 그렸다. 그는 1910년 스페인으로 여행한 후 이 장르를 개발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스페인 황금 시대의 스페인 화가들의 훌륭한 정물화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나서 드랭은 [The Game Bag]에 있는 것과 같은 장식된 테이블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은 새(목각)가 게임백에서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본다. 이 가방은 개나 다른 사냥꾼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뿔을 가진 못에 매달려 있다. 다른 물체들: 바구니, 고블렛 주전자, 유리는 큐비즘을 지향하는 비현실적인 관점에서 대표된다.
앙드레 드레인의 <바구니가 있는 정물>이다. 이 그림은 1924년에서 1927년 사이에 제작된 정물 중 하나이며, 다양한 형태의 렌더링 형식과 빛을 실험했다. 여기서 그는 흑백 붓놀림을 선택한다. 밝은 영역은 흰색 임파스토로 제안되며, 검은 선으로 어두운 영역은 바구니와 포도의 묘사에서 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그는 특히 가벼운 물체를 묘사할 때, 넓은 불규칙한 붓놀림을 병치하여 형태를 만든다. 이 정물화에 그 성격과 현대성을 주는 것은 바로 이 활기찬 붓놀림이다. 오른쪽에 있는 두 개의 붉은 과일은 평평한 색상과 가치와 색상의 순수한 대조로 상당히 다르게 취급된다. 그림자가 없으면 거의 떠다니면서 불협화음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구성은 간단하고 미묘하다.
위의 그림은 앙드레 들랭의 <와인잔이 있는 정물> 1928년. 이 작고 아주 단순한 정물, 과일 한 접시, 빵 한 조각, 와인 한 잔은 1920년대 드레인이 렌더링 폼에 대한 실험의 전형이다. 그에 따르면, "색깔과 선은 함께 사용할 때, 서로를 취소하고 아무것도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때때로 빵과 배와 같이 가치와 색의 대비로, 때로는 선으로, 포도주와 포도주 잔에 흑백으로 물체를 그려가며 놀기도 한다. 이 구성은 치아로스쿠로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특히 과일의 접시에 있는 배와 포도 사이에서 가치관의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드레인은 따뜻한 색상과 시원한 색상을 대조하여 이러한 효과를 더욱 강화시킨다.
아래의 그림은 <과일과 멜론>이다. 1927년. 이것은 여전히 삶 따뜻한 오렌지 색, 노란 색 톤으로 칠해져 지중해의 멜론, 복숭아, 포도 같은 것 같다. 과일의 동그란 모양과 포도는 테이블의 수평 라인에 삶을 준 대각선에 잎이 화환에 속한다. 식탁보의 윤곽을 몇개의 포도를 제외한 윤곽 표시를 사용한다. 멜론과 과일에서는, 흰 포인트의 사용은, 드레인에 따르면, 개체 생명을 주는 네덜란드 그림의 섬세함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앙드레 드레인의 <미디의 풍경>이다. 1932년. 안드레 드레인은 1932년과 1933년에 다시 프랑스 남부의 미디 지역에 머물렀다. 여기에 대표되는 마을은 아이갈리에르로 추정된다. 그것은 예배당이 간과한 왼쪽의 성벽뿐만 아니라 고대의 보관소와 시계탑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아래 편백나무가 늘어선 골목길이 오래된 묘지로 이어진다. 이전에 그렸던 풍경보다 더 평온하다. 그림의 다른 관점은 다른 작품보다 더 정교하게 여기에 중첩되어 있다.,황토색과 초록색 톤이 캔버스를 지배하고 더 쾌활한 느낌을 준다. 오른쪽에서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바위과 풀둘이 서로를 보완한다. 오른쪽에 있는 가느다란 나무들은 뻗은 가지와 옅은 녹색 잎으로 그 구성을 살아나게 한다. 파형은 캔버스의 하부에 있는 낮은 벽, 경로 및 작은 다리에 의해 강조된다.
앙드레 드레인의 <거대한 나무>다. 1929-1930년. 1930년대에 드레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전적인 이상을 추구했다. 이 그림에서 드레인은 형식이나 붓놀림의 변조가 아니라, 그린과 오렌지 등 세잔의 색채 선택으로 세잔느로 돌아온다. 나무의 갈색은 더 길고 깊은 붓놀림으로 제안된다. 한낮 풍경 앞 전경에 있는 나무들, 모티브도 세잔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디자인은 코롯과 19세기 풍경화가들에게 더 가깝다. 나무는 화가를 매료시켰고 반복되는 연구 대상이었다.
앙드레 드랭의 <조끼가 있는 여성 누드>이다. 1924-1925년. 여기 드랭은 매우 바위위에 앉아 있는 실물 크기의 여성상을 선보인다. 그는 형태가 조화롭게 연결되는 모래나 바위와 결합하여 야외에서 누드화를 즐겨 그렸다. 이곳의 배경은 기울어진 선이 있는 갈색과 초록색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오른쪽 호수의 물에 의해서만 부드러워지고 하늘의 푸른색을 반향한다. 하늘은 드레인에 의해 다시 칠해져 있었는데, 원래 산들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남겨 놓았을 것이다. 오른쪽 하단의 하얀 천에 세팅된 항아리가 구성을 고정시킨다. 검은색으로 윤곽을 나타낸 여성 모델의 몸체는 어떤 곳에서는 현실주의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다른 곳에서는 스케치로만 표현된다. 예를 들어 오른손 손가락과 발가락만 제안한다. 하지만 모델의 눈은 시청자를 쳐다보지 않고 있으며 얼굴도 매우 고정되어 있다. 사실, 드레인은 나중에 청동으로 만들었던 것과 같은 금속성의 코 곧은 마스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앙드레 드랭의 <누워 있는 누드>다. 1924-1930년. 1920년대에 드랭은 다른 기술로 실험한 많은 나체를 그렸다. 누워있는 누드에서 그는 밝은 색상의 인물과 일부러 어두운 배경의 강한 대조를 결정했고, 동시에 온몸의 그림자에 극적으로 강조된 갈색 윤곽을 사용하였다. 누드는 화가가 본질적으로 줄인 허구의 풍경 앞에 그려진다. 세 개의 수평 띠는 배경에 구조를 제공한다: 모델이 어두운 오크레 해변에서 눈에 띄게 기대는 인공적으로 생긴 바위, 위 바다가 사실상 균일한 어두운 녹색 띠로 나타나고, 그 다음 하늘은 약간의 변화를 가진 청록색 띠로 나타난다. 보는 사람 쪽으로 돌아선 모습이 나른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몸은 다소 긴장된 듯하고 몸의 휴식이 아닌 스튜디오 포즈로 생각된다.
앙드레 드랭의 <할리퀸과 삐에로>이다. 1924년. 이 유명한 그림은 폴 기욤의 주문으로 그려졌다. 이탈리아 극장에서 두 명의 캐릭터를 묘사했는데 할리퀸은 화려한 체크무늬 의상과 바이콘 모자를 쓰고, 피에로는 러프가 있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폴 세잔,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 등이 이미 16세기부터 인기를 끌었던 염분방크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랭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할리퀸과 피에로는 한쪽 무릎을 들고 기타를 연주하면서 마리오네트나 인형과 같은 끝없는 춤에서 중립적인 배경에 등장한다. 그들은 시선을 마주보지 않고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따라서 그 그림은 어느 정도의 우울로 가득 차 있다. 몇 개의 예비 도면을 작성하여 이 작업을 준비했다. 그는 또한 구성을 고정시키는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작은 정물화에 세심한주의를 기울였다. 피에로의 모습은 마침내 폴 기의 초상화로 인식되었다.
앙드레 드랭의 <기타를 든 할리퀸>이다. 1924년. 화가는 할레퀸을 그렸는데, 그의 화려한 체크무늬 의상과 바이콘 모자가 특징이다. 그는 녹색과 황토색의 매우 중립적인 배경에 반대한다. 젊은이는 왼쪽 다리에 기타를 들고 있다. 그는 연주하는 화음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시선은 보는 사람에게서 돌아섰고 그의 감정 없는 표정 또한 그 그림에 어떤 우울함을 안겨주었다. 어떤 랜드마크도 없는 바로 그 시대를 초월한 풍경은 할레퀸과 현실을 거리를 두고 그에게 몽환적인 모습을 준다. 춤출 준비가 된 그의 몸과 그가 연주하고 싶은 악기 사이의 긴장감은 드랭의 창조적인 발견이다. 이상함의 인상은 마침내 밝은 빛이 옷깃과 밝은 양말에 미치는 두 가지 효과로 강조된다. 1931년부터 이 그림은 드레인을 기리는 책에 사용되었다.
앙드레 드랭의 <앉아 있는 화가의 조카 딸>이다. 화가의 사랑하는 조카인 제네비에브는 12세 경에 다시 한번 여기에 그려진다. 어린 소녀는 한 손을 맞은편 손목에 얹은 채 수심에 찬 자세로 앉아 있다. 그녀는 관람자를 외면하고 있으며, 백일몽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태도는 드레인이 크게 존경했던 카밀 코로가 그린 여성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제네비에브는 밝은 색의 천을 입고 있어 그림을 살아나게 한다. 드레인은 또한 피부를 재현하기 위해 두 가지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 제네비에브의 가장 가까운 팔은 길고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칠해졌으며 다른 팔과 얼굴은 작고 날카로운 붓놀림으로 칠해졌다. 어린 소녀는 등에 커다란 둥근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것은 또한 그녀의 다른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다. 그녀의 실루엣은 녹색 배경에 뚜렷하게 돋보이며, 갈색 머리카락만이 색 전환을 보장한다. 이 간신히 스케치된 배경은 자크 루이 데이비드가 그린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 이 초상화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평온함은 다시 한번 제네비에브에 대한 드랭의 큰 애정과 심리적 초상화에 대한 그의 숙달성을 보여준다.
앙드레 드레인의 <조리 테이블>이다. 1922-1925년. 안드레 드레인은 부엌 기구를 대표하는 일련의 위대한 정물화를 그렸고, 갈색이 지배하는 정적 구조와 어두운 색조로 특징지어졌다. 이[키친 테이블]은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그것은 1927년에 시작되어 재현되었고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일반 도구는 매우 의도적인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오른쪽만 밝다. 그 화가는 또한 형태와 색깔을 가지고 논다. 일부 물체는 십자가의 모양을 형성한다. 프라이팬은 중심을 형성하고 손잡이, 그릴, 나무 숟가락 및 바게트는 네 개의 팔을 형성한다. 벽과 탁자 앞에는 밝은 색의 물체 몇 개가 눈에 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하얀 과일 그릇이 수건을 대조되고 왼쪽에 쌓인 접시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림의 뒷면에 둥근 모양 : 상추 바구니, 체, 프라이팬, 캐러페 및 과일 그릇은 전경의 직선과 대조된다 : 바게트, 포크 및 나이프, 그릴 등. 1930년대 미술 비평가들은 이 정물화와 빛과 어둠의 대조로 특징지어지는 카라바조의 그림 사이에 유사점을 도출했다.
앙드레 드랭의 <화가의 조카딸>이다. 1931년. 1919년, 드랭의 여동생과 그녀의 아기 제네비에브는 그의 집으로 이사했다. 그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 중 하나가 된 아이를 사랑했다. 그녀는 삼촌과 함께 루 뒤다니에에 있는 그의 새 집으로, 그리고 샹부르시에 있는 그의 집으로 이사했다. 드레인은 그녀가 9개월 때부터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삼촌의 그림 중 100점 이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스튜디오에서 그녀는 화가의 연필을 갈거나 비누로 물감 붓을 씻느라 바빴다. 그의 가장 정교한 초상화 중 하나에서, 드레인은 여기 제네비에브를 실물 크기로 그렸다. 약 12살의 제네비에브가 왼쪽 다리로 서 있고, 그녀의 구부러진 오른쪽 무릎이 의자에 놓여 있다. 그녀의 각 발끝은 그림의 가장자리에 눌려 있다. 그녀의 하얀 드레스와 얼굴이 갈색과 노란색의 조화로 구성된 캔버스에 빛을 발한다. 기하학적 선은 둥근 모자와 꽃 바구니에 의해 누그러진다. 제네비에브 게리는 이 초상화에서 일요일 베스트 드레스를 입고 당시 머리를 자라게 한 것을 떠올렸다.
앙드레 드레인의 <만돌린을 들고 잇는 흑인 남자>다. 1930년. 마네는 <기타연주자>나 <풀륫연주자>등 음악가를 자주 그렸는데 영향을 받아 화가는 상상의 인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음악가는 붓놀림의 다양한 각도와 오른손 아래 부분의 가벼운 그림자에 의해서만 애니메이션된 평범한 오크레 배경에 맞서서 눈에 띈다. 질감과 폭력적인 대조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그의 모델을 크게 향상시킨다. 셔츠의 빛은 넓은 지역인 흰색 임파스토로 표현되며, 검은 붓놀림으로 그림자가 표현된다. 만돌린의 목에도 같은 대조가 거꾸로 되어 있다. 눈, 코, 입술 등 얼굴에 있는 작고 섬세한 흰색의 손길이 초상화를 애니메이션화한다. 만돌린을 가진 흑인은 갈색, 오크레, 흰색의 진정한 교향곡이다.
앙드레 드레인의 <꽃병의 꽃>이다. 1934년. 꽃다발과 꽃병은 활기찬 색깔 덕분에 갈색 배경에서 눈에 띈다. 델피니움과 빗자루는 꽃 주위에 별을 형성하는데, 꽃 주위에는 왼쪽의 매우 옅은 분홍색에서 오른쪽의 짙은 빨간색 핑크까지 다양하다. 밝은 색과 어두운 배경의 선택은 미국에서 높이 평가받는 앙리 판틴-라투르의 꽃 정물화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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