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대영박물관

이집트관

boriburuuu 2020. 12. 6. 13:19

★고대 이집트-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집트 미라인 카테베르 미라(아문신을 모신 신녀. 63전시실)이 있다. 룸 64에 있는 ’진저‘라는 빨강머리의 미라는 기원전 3100년 무렵 매장된 것으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또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인 ‘로제타석’(4전시실)이 있다.

기념비적인 디오라이트 스카라브 딱정벌레, 아마도 케프리를 대표할 것이다. 기원전 4세기.

 

기원전 680년경 수단 가와 출신의 타하르코 왕의 스핑크스다.  이 스핑크스는 수단에서 온 네 번째 쿠시테 파라오인 타하르코를 나타낸다.

페라스, 묘지 1,  AD 100–400년경의 메로이트 컵이다. 그러한 미세 웨어는 AD 1세기에 주요한 혁신이었으며 종종 꽃, 덩굴 및 동물로 장식되었다. 개구리는 다산과 물과 관련이 있었고 종종 메로이트 품목에 나타난다.

접힌 앞다리 사이에 있는 타하르코의 아문 보호자형의 숫양의 그라니틱 편마암 스핑크스; 부분적으로 복원된 직사각형 베이스에는 상형문자의 연속 수평 레지스터가 새겨져 있다. 690BC-664BC

목제 침대 다리, 초기 쿠샤이트 시대, 기원전 700-300년경
이 정교한 다리는 의자나 침대의 일부였으며 높은 수준의 기술과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독특한 누비아 스타일과 결합된 이집트의 우상화에서 영감을 보여준다.

중세 건축, 수단 파라스, 서기 4세기
이 사암 프리즈는 루어 누비아의 한 마을인 파라스의 첫 번째 성당에서 제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독수리는 기독교 우상화의 핵심 부분이었고 침례와 신성을 상징했다.

그 유명한 람세스 2세(기원전 1250년)의 두상이다. 크기가 7.5톤에 달하는 규모이다. 아부심벨을 건축해 이집트의 건축왕으로 불리운다. 히타이트인들과 외교 교섭을 해 역사적인 조약에 서명을 하기도 하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원정을 하기도 해 그를 찬양하는 기념물의 크기나 수는 정말 많다. 그의 번영된 통치는 거의 67년 동안 지속되었다. 왕의 빈소 사원('라메세움')의 문 옆을 맴도는 한 쌍의 거대한 좌석 동상의 윗부분이다. 이 동상은 한 블록에서 조각되어, 남쪽으로 거의 124마일(20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채석되었다. 대략 20톤의 무게로, 그것은 육지와 나일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썰매로 운반되었다. 일단 세워지면, 그 조각상의 더 훌륭한 조각이 완성되었다. 모든 이집트 조각상들처럼, 원래는 그려진 것이다.색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1816년 지오바니 벨조니가 테베의 룩소르 서안 라메세움의 무덤에서 이 거대한 석상을 옮겨 왔다.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 카르낙(테베) 출신의 라메세스 2세의 콜로살 화강암 이미지.

 

 

 

남편과 아내의 석상이다.

이집트 라시드(로세타), 196년 이집트에서 온 로제타 스톤.
로제타 스톤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왕을 기리기 위해 발행된 법령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기념물에 기호), 데모틱(일용 필기체)에,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는데, 당시 지배 엘리트들은 그리스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버전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현대적 해독을 가능하게 했다. 로제타 스톤은 나폴레옹의 침략군에 의해 1799년에 발견된 더 큰 슬래브(스텔라)의 유일한 알려진 파편이다.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정복하기 위해 약 사만명의 군대와 학자를 동원해 카이로를 점령하고 수많은 고대 유적과 유물을 수집했는데 영국 함대가 프랑스 군대를 대파하자 로제타 지역에 고립되어 방어 기지를 구축하던 중 1799년 8월 회색 돌비석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군의 조건부로 항복한 프랑스군에게 중요 유물의 양도를 요구해 1801년 양도되었다. 이후 토마스 영이 부분적인 해독을 해서 이집트 유물에 대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기원전 1370년경 이집트 카르낙(테베) 출신의 아멘호테프 3세의 거상 화강암 머리다. 두상만 3미터가 되는 거대한 아멘호테프 3세(기원전 1350년)의 두상이다. 옆에 팔이 놓여져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람세스 2세 이전 왕조인 18왕조의 파라오로 상, 하 이집트로 나뉘어 있던 국가를 통일한 파라오라 두 개의 왕관을 쓰고 있다. 흡사 불상으로 보일만큼 온화한 모습인데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렸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란다. 원래는 한 쌍으로 이집트 콘스페크로드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아멘호테프 3세는 특히 이집트의 수도 테베에 있는 그의 사원을 위해 수많은 동상을 의뢰했다. 그의 평화로운 통치는 화려하고 뛰어난 예술적 정교함의 시기였으며, 종종 웅장하고 야심찬 규모로 전시되었다. 완전한 조각상은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과 약간 작은 조각이 카르낙의 무트 신전의 출입구를 있었다. 두 번째 동상의 머리도 대영 박물관에 있지만미이라는 카르낙에 남아 있다. 1세기 후, 람세스 2세 왕이 자신의 공식 '초상'과 일치하도록 얼굴 특징이 다시 만들어졌다. 람세스는 수많은 왕족 전임자들의 동상을 전용했다.

 

<붉은 화강암으로 자리잡은 소베켐사프 1세의 동상>이다. 테베의 카르낙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17왕조 시기 작품이다. 원래 상감된 눈; 왕좌 앞의 카투치; 후방의 아포트로피 모티브; 수염과 네임이 손상됨; 발과 플린스가 복원됨

기원전 1270년경 이집트 아비도스에서 온 왕들의 목록(세부)이다.
이 이집트 통치자들의 목록은 라메세스 2세의 신전에서 나온 것이다.,과거의 왕들의 기념비적인 목록은 살아있는 통치자의 정당성을 표현하는 역할을 했다. 완전한, 원래의 안도감에서, 라메세스는 전임자들과 이집트를 통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오시리스 신을 기리는 것이 보여졌다. 왕들은 타원형의 '카투치'로 쓰여진 그들의 왕좌 이름으로 대표된다. 지배적인 여왕을 포함한 중요하지 않거나 사생아로 간주되는 통치자들은 생략되었다. 파라오는 주로 그의 왕좌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은 전형적으로 그의 신성한 아버지인 태양신 라에 대한 진술이었다. 이것은 왜 각 카투슈가 상단에 태양 디스크를 포함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원전 1290년경 이집트 테베에서 온 후네퍼의 죽은 자의 책 <죽음의 서>다.
죽은 자의 책은 죽은 자에게 넷더 월드를 통해 힘을 실어주기 위한 주문 모음이다.

이집트 테베에서 온 혼드지테프의 내관, 기원전 240년
호네지테프 신부의 미라는 금박 마스크와 덮개, 그리고 인간 모양의 나무 관 두 개에 싸여 있었다.

기원전 1290년경 이집트 왕들의 계곡에서 온 세티 1세의 푸른 유리 샤비
샤브티의 인물들은 고대 이집트의 장례 전통의 일부였다. 죽은 자의 책에서 나온 샤브티 주문은 샤브티스가 사후세계에서 주인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집트 아비도스에서 온 고양이의 엄마, AD 1–100년 경
신과 관련된 동물들은 이집트 역사의 후반기에 정기적으로 미라로 만들어졌다.

이집트에서 온 개구리 모양의 화장품 그릇, 기원전 3300년경
이전과 초기 왕조 시대는 석조 선박의 제조 측면에서 이집트 역사상 가장 부유한시기다. 개구리를 대표하는 이 브레시아 화장품 용기는 초기에 도달한 높은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개구리의 눈은 이전의 물질로 덮여 있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개구리는 어린이의 출생과 출산을 상징했고 나일강의 행진에 엄청난 숫자로 살고 있으며, 그들은 나일강의 연간 홍수와 연결되어 있다. 개구리 부적은 죽은 자와 함께 묻혀 그들을 보호하고 다시 젊게 했다

이집트 셰이크 하마데 출신의 피트-리버스 나이프다. 기원전 3200년경
Naqada II 문화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훌륭한 부싯돌 칼의 생산이었다. 상아 손잡이는 양옆에 새와 야생동물이 줄지어 장식되어 있으며, 위로 올려진 안도감으로 조각되어 있다. 동물들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것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지만, 크레인, 코끼리, 사자, 바바리 양, 하이에나, 당나귀, 소를 포함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마도 당시 이집트에서 볼 수 있거나 다른 곳에서 친숙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그렇게 섬세하고 정교하게 장식된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틀림없이 '의례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3150년경 이집트 아비도스 출신의 전장 팔레트다.
신들의 축복을 얻기 위해 지역 통치자들은 신의 동상을 입히고 활력을 불어넣는 데 사용되는 화장품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장식된 의식용 팔레트를 사원에 기증했다. 이 팔레트의 앞면에는 화장품이 섞인 그릇의 잔해가 있다. 이 커다란 팔레트에 새겨진 조각은 그들이 본 것처럼 세상을 혼란과 무질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들을 대신하여 행해지고 있는 노력을 보여준다.이 때 초기 왕들은 종종 그들의 힘과 힘을 상징하기 위해 다양한 야생동물의 형태를 취했다.

기원전 2985년경 이집트 아비도스에서 온 덴왕의 샌들을 위한 아이보리 라벨이다.
이 하마 상아 라벨에 메이스를 들고 있는 인물은 덴왕인데, 여기 베두인 대표를 메이스로 때리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왕의 이름은 그의 앞에 쓰여져 있다. 그는 다산과 사나운 힘을 상징하는 황소의 꼬리를 달고 있다. 그러나 왕관 대신 덴 왕은 왕실의 머리보를 입는데, 이마에 왕실의 요로 코브라의 목과 머리가 있다. 라벨의 반대쪽에는한 쌍의 샌들의 절개된 그림이 표시되어있어 라벨이 아마도 왕의 신발이 들어 있는 상자에 붙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앙카라 동상(아마도), 이집트, 기원전 2686–2613년
제1기(단계) 피라미드 건설 등 제3왕조 초기의 눈에 띄는 건축문화 발전은 석조 조각으로 자신 있는 실험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공식 앙화()를 대표하는 붉은 화강암상은 구왕국을 전성하는 원형의 개인 조각의 드문 예 중 하나이다. 예술가의 기술적 능력은 사실주의와 이상화를 모두 보여주는 잘 조각된 특징에서 볼 수 있다. 왼쪽 무릎 위의 킬트에는 그의 이름을 산출하는 낮은 안도감에 비문의 수직선이 있다.

기원전 1750년에서 1450년 사이에 수단의 케르마에서 온 도기선이다.
케르마 문화권의 포터들은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그릇을 생산할 수 있었다.

테베 헤누메히트 묘에서 발견된 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