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프란체스코 가리발디의 <토비아스와 대천사 라파엘이 함께 하는 풍경.이다. 1650년.
조반니 프란체스코 바비에리의 <우물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이다. 1640-41년.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다. 1576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베네치아 회화의 큰 영향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마지막 버전 중 하나로 간주된다. 안락의자에 있는 왼쪽에 있는 우리 여인은 대천사로부터 세심한 방문을 받는다. 빛과 색은 티티안의 작품에 대한 화가의 감탄을 보여주고, 틴토레토의 발자국은 분명하다. 여기서 엘 그리코는 장면에 진실성을 제공하기 위해 캐릭터를 쉽게 프레임하는 간단한 아키텍처 시나리오를 사용한다.
엘 그레코의 <깨끗한 임신>이다. 1608-1614년.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다. 1596-1600년. 두 인물을 둘러싼 공기는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화가는 마리아가 경의를 표하며 가슴에 팔을 건널 때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선택했다. 상부 지역은 악기를 가진 천사 음악가의 코러스가 손으로 나침반을 표시하는 지휘자의 지시를 따르는 영광의 휴식에 의해 점령되고, 다른 하나는 점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레코는 이 두 세계, 지상과 천체에 합류하며, 성령의 비둘기가 내려오는 체루브의 머리에서 내려오는 빛의 아래광선을 가지고 있다. 그림의 감정적인 면은 대조와 브러시의 터치와 함께 색상으로 증가한다.
엘 그레코의 그림이 반가워서 한 컷.
엘 그레코의 <십자가를 지심>이다. 1587-1596년. 골고다 정상으로 가는 예수의 십자가를 지심의 일부인 이 에피소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아버지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 하늘로 시선을 돌리신 휴식의 순간으로 확인되었다. 그런 식으로 그레코는 몸의 고통보다 영과 관련된 가치에 더 큰 중점을 두었다.
벨라스케스의 <오스트리아의 도나 마리아 초상화, 스페인 여왕>이다. 1655-57년.
카라바지오의 <알렉산드리아의 세인트 캐서린>이다. 1598-99년. 카라바지오의 작품은 로마에서 그의 첫 번째 수호자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에 의해 의뢰되었다. 세인트 캐서린의 그림은 그녀의 자연주의에 대한 눈에 띄는 모델은 필리데 멜란드로니다. 공주에게 어울리는 풍성한 옷을 입고 쿠션에 무릎을 꿇고 보는 이들을 바라본다. 성 캐서린은 그녀의 순교를 암시하는 모든 속성으로 나타낸다 : 칼바퀴와 바퀴, 그녀가 머리를 맞은 칼과 손바닥. 빛은 화가의 전형적인 밝은 어둠을 만드는 장면을 극적으로 조명한다. 이 캔버스에 존재하는 카라바지오의 빛과 볼륨해석은 이탈리아와 유럽의 나머지 부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터 폴 루벤스의 <비너스와 큐피트>다. 1606-1610년. 루벤스는 모든 플랑드르 화가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크 운동의 진정한 대표자였다. 비너스와 쿠피도는 예술가가 티티안의 그림을 모사한 사본 중 하나이며, 스페인 왕실 컬렉션의 일부였던 이탈리아 마스터가 잃어버린 그림을 테마로 한다. 두 가지 중요한 세부 사항은 눈에 띄는: 진주 팔찌와 비너스 ' 왼쪽 새끼 반지, 모두 티티안의 작품에 존재한다. 이 이탈리아 회화에 매우 가까운 원본 버전은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 보존되고, 또 다른 하나는 바두즈의 리히텐슈타인 컬렉션의 플랑드르 마스터에 의해 보존된다. 화가 스타일의 차별화된 특징은 그의 세련미와 색의 숙달이다.
피터 폴 루벤스의 <삼손의 실명>이다. 1609-1610년. 성경의 계정에 따르면, 삼손을 붙잡고 처벌하고 싶어하는 필리스티아인들이 데릴라에게 그의 위대한 힘의 비밀을 발견하고자 유혹하라는 제안했고 보수를 받은 데릴라는 샘슨의 마음을 얻고 비밀을 알았다. 여인은 삼손이 잠이 들자 힘의 기원인 일곱 머리칼을 잘라버린다. 힘이 사라지자 그의 눈을 멀게하고 가자지구로 데려갔다. 루벤스는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폭력적인 순간을 선택했는데, 네 인물로 대표되는 필리스티안이 그를 죽이기 위해 거인에게 갔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삼손의 가슴을 가리키는 창, 불꽃이 화가가 사용하는 유일한 주홍빛 터치, 그리고 위험하게 스트롱맨의 눈에 향하는 단검을 들고 있다. 데릴라는 하녀로 식별 할 수있는 노인 여성과 있다.
피터 폴 루벤스의 <성 엘리자베스, 세례 요한과 함께한 성모자>다. 1618년.
렘브란트 반 레인의 <모자와 두개의 체인이 있는 자화상>이다. 1642-43년. 렘브란트는 회화 역사상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조와 깊고 강렬한 드라마는 그의 그림의 차이를 구별한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작가가 평생 겪은 개인적인 상황, 감정, 분위기를 충실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손에 있는 것과 같은 자화상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의 영혼의 거울과 같다. 이 작품은 화가의 최고의 자화상 중 하나다.
얀 베릿 반 브론코스트의 <오르바를 연주하는 젊은 남자>다. 1641-45년. 티오바를 만지는 이 청년은 얼굴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빛과 악기를 들고 있는 손에 강한 영향을 미치며 몸을 어둠 속에 남겨둔다. 화가가 테이블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델을 대표하기로 결정한 자세는 몸의 무게와 머리를 돌리며 눈길을 끈다. 그의 옷을 위해 선택된 색상 범위는 포도 나무 가지로 장식된 그의 모자의 구체화 된 터치와 생생하게 대조된다,
프란즈 할스의 <풍경을 마주보고 있는 가족 초상화>이다. 1645-1648년. 프란스 할스는 네덜란드 초상화주의의 위대한 천재로 여겨지며, 17세기에 놀라운 호황을 누렸던 장르로, 국가의 경제적, 상업적 호황과 부유한 계급이 초상화를 통해 행운을 기록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할스는 다른 어떤 것과도 마찬가지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활력과 자발성을 털어놓아 모델의 성격을 관통했다. 이 캔버스에서 남편은 결혼의 충성심을 상징하는 손을 잡고 소녀의 기슭에 있는 개는 충실함을 나타낸다. 브러시 스트로크는 느슨하고 매우 현대적이다. 그의 집단적 초상화(예: 손에 있는 인물)는 그의 유산 중 가장 유명하다.
피터 얀즈, 사예레담의 <산타 마리아 드 위트레흐트 교회의 서쪽 외관>이다. 1662년. 화가는 이전에 현장에서 스케치와 측정을 제작했으며,나중에는 작업실에서 건축 도면을 완성했다. 마침내 몇 년 후, 그는 섬세한 디자인을 해당 지지대로 옮겨 마무리했다. 그의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건물을 묘사하는 것이었는데, 때로는 건물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의 기념비성은 건축 공간의 명확성과 단순성과 조명을 비추는 선명한 범위 팔레트 덕분에 전달된다.
장 오노레 프리고나르의 <스윙>이다. 1750-1752년.
호세 드 리베라의 <자비>디 1633년.
사이먼 부엣의 <에우로파의 납치>다. 1640년.
바르톨로뮤 에스테반 무리요의 <비터보의 세인트 로즈와 함께하는 성모자>다. 16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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