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심장이라 불리우는 포로 로마노는 곧 로마의 역사이다. 로물로스에 의해 7개의 언덕에 처음 정착했고 포로 로마노는 상거래와 회의를 하던 공간으로 중심지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점차 황제들을 위한 기념비와 신전이 세워지면서 황제의 공간으로 성격이 변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버려졌다가 테베레강의 범람으로 토사에 묻혔다가 르네상스 시대 로마를 재건하면서 채석장으로 전락했다. 더구나 1933년 무솔리니가 아프리카 점령을 기념하는 개선식 행사를 하기 위해 콜로세오에서 베네치아 광장까지 일직선 도로를 만들면서 반으로 갈라지기까지 했다.
거의 폐허처럼 보이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차분히 걸어보고 싶었는데 현실은 비는 오지 사람들은 그 날씨에도 어찌나 많은지 뜻대로 되질 못했다.
성당이 보여 비도 피할겸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이 성당을 밖에 있는 것이라 나가야만 볼 수 있어 다시 돌아왔다.
멀리 팔라티나 언덕에서 아래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베스타신전이 보인다. 불의 여신 베스타를 모시던 신전으로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원래 20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지금은 몇개 남아 있지 않다. 배스탈이라고 불리우는 6명의 처녀가 베스타의 신성한 불곷을 하루 종일 지켰는데 밤에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6-10세의 귀족 가문에서 선발된 베스탈은 30년 동안 일하는 동안 처녀성을 간직해야했다고 하고 어떤 죄를 지어도 사람의 손으로 죽일 수 없었다고하나 불씨를 꺼뜨리거나 처녀성을 상실한 경우는 생매장 당했다고 한다.
셉티미오 세베루스의 개선문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것으로 203년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아들인 카라칼라 제타에게 헌정된 개선문이다. 3개의 아치문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형패이지만 권력 다툼에서 승리한 카라칼라가 그의 동생 제타를 죽이고 이룬 승리라는 비극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주요 연설이 이루어지던 로스트리다.
비가 본격적으로 와서 카메라 렌즈에 물이 맺히고 들고 있는 책도 다 젖어 버렸을 뿐 아니라 카메라를 꺼도 전원버튼이 듣질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네. 출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 아까 본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들어갔다. 비도 피할겸.
크게 기대하지 않고 급하게 들어갔는데 내부가 역시 바닥이나 중앙제단 등 멋지다. 역시 로마의 성당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떤 신부님이 벽면의 이곳에 입을 맞추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뭐냐고 물으니 성 베드로가 모릎을 꿇은 자국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하면 믿음직한 것은 바로 여기가 로마이기 때문일게다.
다시 나와서 콜롯세움을 보니 이제 비도 좀 잦아드는 것 같고 오늘 보지 못하면 팔라티노언덕도 볼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들어가려는데 이번엔 입구를 못찾아 한참 헤멨다. 나중에보니 포로 로마노하고 연결되어 있어 그냥 올라가는 거였다.
또 비가 오기 시작해서 30분 정도 아치 밑에서 음악을 들으며 기다렸다. 로마의 소나무 밑에서 예쁜 풍경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여행중에 이런 여유를 부리는 것도 괜찮다 싶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물로스가 로마를 세운 곳으로 로마가 시작된 곳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상이 평평해서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로마 제정시대에는 이곳에 궁전을 지었다. 아예 귀족들도 거주지를 옮기면서 이곳은 로마의 부촌이 되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골격만 남아 있지만 세월의 흐름을 어찌할 수 없지 싶다.
멀리 대전차 경기장의 모습이 보인다.
여긴 바실리카양식의 교회터이다. 규모가 상당히 컸었네.
베스탈의 집터이다. 베스탈이 살던 기숙사로 3층 규모에 30개의 기둥을 가졌다. 중앙 정원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여성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중앙 정원과 연못, 주변의 조각성들만 남아 있다. 규모가 커서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전체적인 모습이 다 보였다.
그 당시 귀족들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조각상들도 세워놓았고.
팔라티나 언덕에서 바라본 콜로세오의 모습이다.
포로 로마노 안에 있는 성당은 내부공사중이다.
시저의 신전이다. 원로원에서 브루투스 등에게 살해당한 시저의 시신이 화장되었던 곳으로 훗날 아우구스투스 황제로 등극한 시저의 조카 옥타비아누스가 시저를 위해 신전을 세웠다.
원로원 건물이다. 원로원은 공화제 시대의 최고 정치 기관으로 입법, 자문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집정관을 선출하던 곳이었다. 중세시대에 성 아드리아노 성당으로 쓰여 보존상태가 좋고 지금의 건물은 1930년대 무솔리니가 복원한 것이다. 이 건물에서 시저가 암살당했다.
사투르누스 신전이다.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를 모시던 신전으로 현재 8개의 기둥과 지붕 일부만이 남아 있는데 지붕 위에 라틴어로 '로마는 원로원과 시민들, 즉 로마공화정'이란 뜻으로 로마 자체를 의미하며 첫 글자를 딴 S.P.Q.R이 싀여 있는데 지금도 로마의 상징으로 쓰고 있으며 신전 지하에 엄청난 보물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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