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루브르박물관

루브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boriburuuu 2019. 7. 3. 22:35

<모나리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고의 걸작이자 여성을 그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수많은 학자, 문인, 시인 등이 논평했다. 모델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프란시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가 된 리자 게라르디니의 초상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다빈치는 피렌체에서 시작했으나 프랑스로 옮겨 가서  프랑수아 1세는 클루성의 서재에 있던 이 그림을 금화 4만 스쿠도에 매입했다.

 

로지아에 앉아 눈길을 사로 잡는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이끈 예술 혁명의 중심에 있다. 명암의 표현에만 의존하던 그림에서 선명한 윤곽선을 없애고 투명한 액체와 같은 색을 입혀 색조의 단계적 변화를 통해 풍경을 표현함으로써 스푸마토 기법을 완벽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대기 원근법으로 표현된 배경에는 구부러진 강, 바위와 산봉우리 등이 펼쳐지고 소멸된다.

 

<성안나와 성모자>다. 이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는  어머니인 성 안나의 무릎위에 앉아 있고 아기 예수는 어린 양과 즐겁게 놀고 있다. 안식일의 제물이 될 이 어린 양은 아기 예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드로잉과 그림에서 증명되듯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레오나르도의 그림 중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펜과 잉크로 그린 이 그림을 위한 작은 드로잉이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그들 간의 애정 어린 심리적 교감이 종교화 중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라 벨 페로니에르>다. 특이한 것은 아래의 틀의 효과이다. 여인은 틀 너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림 속의 그림 같기도 하다. 프랑수아 1세의 정부라고도 하고 스포르차 가문의 루드비코 일 모로의 연인인 루크레치아 크리벨리라고도 하지만 정확하진 않고 '라 벨 페로니에르'란 '아름다운 머리띠 장식을 한 여인'이란 뜻이란다. 상당히 아름다우면서도 성깔 있을 듯한 모습이다. 이 그림의 특이한 점은 화면 아래 가로질러진 틀의 효과다. 여인은 틀 너머 공간에 서 있는것 같기도 하고 그림 속의 그림 같기도 하다.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광야의 성 요한 또는 바쿠스>다. 몸은 완벽한 남성이지만 얼굴 생김새는 곱상한 여성의 얼굴 모습이다. 이처럼 성별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도 했고 그의 성적 취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암굴의 성모>다.

암굴 앞에서 천사 우리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기 예수와 아기 세례자 요한, 성모의 모습이다. 삼각현 구도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성모 마리아다. 아기 예수의 머리 위에 있는 왼손과 무릎 꿇은 요한을 감싸 안은 마리아는 보호자의 역할을 분명히 한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와 요한은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을 때 서로 만났고 천사 우리엘의 보호를 받는 조숙한 요한은 아기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고 축복과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화면 전체적으로 빛보다 어둠이 우세하지만 배경의 암흑과 인물들을 비추는 빛 사이의 대조는 양감의 표현을 극대화시켜 인물들의 모습을 환영처럼 보이게 한다.

 

 

<세례요한>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걸작이다. 어두운 검정을 배경으로 오른손 검지는 위를 향하고, 왼손은 가슴에 댄 채 십자가를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이 인물을 세례자 요한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걸치고 있는 털옷과 십자가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다 빈치가 밀라노 스포르차 가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한 후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제2의 피렌체 시기(1503-1506)에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이유를 작품의 소재에서 찾는다. 세례자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성인으로 이 도시 대성당의 세례당 이름도 성 요한 세례당이다.
이 작품은 다 빈치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의 테크닉이 함께 사용되었다. 검은 배경으로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젊은이의 표정은 모호하고, 신비로우며, 얼굴의 표현은 극도로 섬세하다. 머리카락과 털옷의 표현 또한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를 극대화함으로써 뚜렷한 선은 전혀 보이지 않으나 인물의 입체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인물이 베일에 싸여 떠오르는 듯한 신비한 인상을 주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을 젊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이로 표현했는데 이에 대해 장 루델(Jean Rudel)은 '위대한 자 로렌초' 시절 피렌체에서 꽃피운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미켈란젤로가 청년 다비드를 통해 피렌체의 정신과 인체의 아름다움을 이상화시켰듯이, 다 빈치는 젊은 모습의 세례자 요한을 통해 신플라톤주의가 추구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