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루브르박물관

루브르의 카라바조와 라파엘로

boriburuuu 2019. 7. 3. 23:05

카라바조의 가장 규모가 큰 그림인  <성모의 죽음>이다. 카라바조가 17세기 종교회화의 위대한 혁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스러운 주제 안에 세속적 일상의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트라스테베레의 산타마리아 델라 카르멜회 교회의 케루비니 가문의 에배당을 위해 5년이 걸려 제작한 작품이다. 성모의 몸이 누윈 방은 극적인 명암대비로 가득 차 있고 이는 죽음과 비애에 데한 일종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된 성모의 모습은 퉁퉁 불은 다리를 내놓은 젊은 여인의 시체가 주는 불쾌함이어서 카톨릭 수도사들의 반발로 거절 당해 루벤스의 중재로 곤차가에게 팔렸다. 성모의 죽음은 사도들과 어린 소녀로 묘사된 마리아 막달레나의 애도와 절망이 강조된 인간적인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카라바조의 <여자 점쟁이>다. 1595년.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후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발로 제작한 것으로 구성상의 참신함과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는 화면 구도와 명암 표현은 혁명적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손금을 읽으면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청년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낸다. 청년이 허리에 차고 있는 칼과 모자의 깃털이 서로 대조되는 사물을 대각선 구조로 배치함으로써 청년이 지배하는 공간은 비스듬히 확장되며 거만함과 자신감이 드러나고 집시여인의 공간은 축소되고 넓은 소매는 청년의 손을 가볍게 쥔 집시여인의 아름다운 손 모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생생한 표정과 극적인 명암 대비, 그림 밖으로 나올 듯한 귀족의 칼자루 끝 등이 이 작품의 현실적인 효과를 더 강화한다. 도덕적으로 교훈을 주는 메시지를 담은 점쟁이는 17세기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였다.

 

카라바조의 <1601년부터 1622년까지 말트 대법관을 지낸 알로프 드 위냐쿠르(1547-1622)와 그의 시종 >이다. 1608년

 

라파엘로의 <발다사르 카스틸리오네의 초상>이다.  라파엘로의 친구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유명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저작 <궁정인>에서 미학적, 종신적 완벽한 이상을 묘사했던 인물로 맑고 관대한 시선과 포즈, 복장을 통해 감성적이면서도 확신에 찬 성격이 잘 드러난다. 녹황색과 갈색의 의복에 드러나는 색채학적 균형과 입체감은 모델의 윤리적, 정신적 수준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이그림을 그림으로써 라파엘로와 카스틸리오네의 우정을 알 수 있다. 화면 속의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재창조하여 보편적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라파엘로의 재능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악마와 싸우는 성 미카엘>이다.

 대천사 미카엘과 그가 거느린 천사들이 사탄의 무리와 맞서 전투를 벌이며, 대천사 미카엘은 용의 모습을 한 사탄과 그 무리를 땅으로 떨어뜨린다. 라파엘로가 그린 <사탄을 무찌르는 대천사 미카엘>에서 미카엘은 사탄을 제압하고 그의 등을 밟고 올라서서 찌르기 직전의 순간을 경쾌한 운동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라파엘로의 이 작품은 1517년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의 명을 따라 로렌초 데 메디치가 주문했으며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로 준 작품인 만큼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천사 미카엘은 천상 군대의 대장으로서 프랑스 왕의 수호자였다. 프랑수아 1세는 1515년 2만 6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침략하여 밀라노를 점령한 왕이다. 그는 또한 성 미카엘 기사단의 단장이자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 그러했듯이 가톨릭 교회의 보호자였다. 후에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의 카트린 데 메디치와 황태자를 혼인시키기도 했다. 이 작품에는 종교적 메시지와 함께 전쟁을 치른 프랑수아 1세의 완벽한 승리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가족 (소판)>이다.

 

 

<사막에서 수난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세례 요한 >이다

 

라파엘로의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 또는 <아름다운 정원(라 벨 자르디네르)>이다. 1507년 나무판에 유화로 그린 그림으로 삼각 구도를 이용한 안정된 구도다.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보티첼리풍의 세속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세례요한, 두 어린아이를 돌보는 자상하고 모성애 가득한 성모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능을 상징하듯 빨강과 파랑의 옷을 입고 있어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라파엘로의 <친구와 함께 있는 화가의 초상>이다. 라파엘로가 작품활동의 절정에 있던 죽기 전 해에 그린 초상화로 그 자신을 살짝 위에 올려 놓기는 했지만 의도적으로 배경에 배치했고 결과적으로 더 생기넘치는 그의 벗이 그림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그렸다. 남자의 신분은 명확치 않다. 그림을 보는 이의 몸짓과 시선의 미묘한 작용을 통해 친밀한 관계가 돋보인다. 친구가 전경에 위치하기는하지만 그의 눈짓과 손가락질로 인해 시선을 화가에게 쏠리게 한다.

 

라파엘로 산티의 <성녀 마르게리타>이다. 15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