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술관/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지오반니, 얀 다이크, 라파엘로, 벨리니, 필리포 리피, 보티첼리

boriburuuu 2019. 8. 19. 18:26

지오반니 디 파올로의 <천지 창조와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이다. 1445년.  이 시에네 회화의 걸작은 조반니 디 파올로의 절묘한 선견지명 효과와 서술적 세부사항을 결합한 것이다. 이 그림은 위대한 플로렌타인 시인 단테가 "신성한 코미디"에서 묘사한 것을 연상시키는 파라다이스의 비전을 제시한다. 우주는 천체 지구로 보여지는데, 지구는 처음에는 네 가지 원소를 나타내는 일련의 동심원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알려진 행성(중세와 르네상스 우주론에 따라 태양을 포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12궁도의 별자리로 보여진다. 창조의 현장을 주재하는 것은 세라핌에 의해 높이 솟아오르면서 빛나는 천체 빛으로 목욕하는 아버지 신이다. '마파몬도'(세계지도) 옆에는 파라다이스의 정원이 있는데, 오른쪽 하단의 땅에서 발행되는 4개의 강이다. 정원의 황량한 식물상은 가을 이전의 순수하고 죄 없는 인간의 상태를 상징한다.작은 아담과 이브는 은총에서 떨어진 후 타락한 인류의 상태에 대한 그의 깊은 연민을 상징할 수 있는 특이한 벌거벗은 인간 형태인 리테 천사에 의해 정원에서 추방된다. 이 패널은 원래 조반니 디 파올로의 "겔피 알타르피스"의 프레델라(가장 낮은 수평 구성 요소)의 일부였는데, 이전에는 시에나의 산 도메니코 교회(현재의 플로렌스 갤러리아 데글리 우피지)에 있었다.

지오반니 디 파올로의 <성모 대관식>이다. 1455년. 풍부하게 장식된 표면과 은과 금의 광범위한 사용은 예술가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잘 보존된 작품 중 하나인이 패널이 초기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제단에서 파생되었음을 나타낸다. 성모님의 삶에서 장면을 보여주는 프리델라가 원래 대관식의 메인 패널 아래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얀 반 다이크의 <십자가형 과 최후의 심판>이다. 1440-1441년. 부르고뉴 공작 필립은 반 아이크(그의 궁정 화가)를 자신의 '예술과 과학'에서 비길 데 없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 반 아이크의 넓지만 미세우주적인 그림은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해 관찰되는 것 같다. 십자가형에서 그는 상상 속의 예루살렘에 대항하여 군중들 사이에서 놀라운 감정의 범위를 불러 일으킨다. 이탈리아와 성지로의 외교 사절단에서 알프스를 가로 지르는 1426년의 여행은 그의 자연주의적인 풍경 묘사를 알렸다. 그는 최후의 심판의 공포에 똑같이 뚜렷한 형태를 보인다. 기술 연구에 따르면이 두 그림이 항상 디피치로 구성되지는 않았지만 원래는 삼부작의 날개 또는 성막이나 유적지의 문으로 사용되었다. 최근에 보존된 프레임은 라틴어로 된 성서 텍스트와 현재 단편적인 중세 네덜란드어 텍스트의 번역본을 재발견한 원본이다. 

라파엘로의 <옥좌 위의 성모자와 성자들>이다. '팔라 콜로나'라고 알려진 이 그림은 화가가 젊은 시절 산탄토니오 수도원의 수도사들을 위해 그렸던 최초의 제단화로 추정된다. 금으로 새긴 망토를 입고 있는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옥좌에 앉아 있고 온쪽에는 성베드로와 성 카타리나가, 오른쪽에는 성바울과 성 세실리아가 , 무릎 가까이는 성 세례 요한이 서 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로의 여행 중 프라 바르톨로메오의 작품을 접했고 베드로와 바울 등은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틀은 원래의 것은 아니지만 당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라파엘로의 <정원의 아고니>다 1504년.  이 패널은 원래 근처의 제단 조각의 기지(프레델라)의 일부였는데, 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에 초점을 맞춘 세 장면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체포되기 전에 기도하고, 제자들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성배나 컵을 내민 작은 천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 컵은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라"는 것이다.,라파엘은 섬세한 풍경 속에서 그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잠자는 추종자들은 각각 조심스럽게 관찰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오반니 벨리니의 <성자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다.

벨리니의 <마돈나와 아기 예수>다. 1510년.

지오반니 벨리니의 <성모와 아기예수>다. 1480년. 난간으로 우리의 일상 세계와 분리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들은 그들의 시선으로 시청자와 교전한다. 먼 풍경을 드러내기 위해 명예의 천을 옆으로 빼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휴면에서 녹슨 자연으로의 전환을 목격한다. 그것은 새벽 하늘과 같은 은유로서 죽음과 부활을 위한 것이다. 비대칭 구성은 티티안의 작품을 앞질러 본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베니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벨리니를 최고의 화가라고 선언했다. 미세한 베네치아 프레임은 그 시대의 것이다.

필리포 리피의 <마돈나와 아기 예수>다. 1483-84년.  마돈나와 아이는 현대 플로렌타인 궁전에서 보여진다. 창문을 통해 부유한 플로렌타인 은행가 필리포 스트로지(3초승달)의 무기고가 있는 오락실이 있다. 그 배경은 피렌체 근처의 스트로지 빌라 주변을 연상시킨다. 흑인 남자는 물고기를 창으로 찌르는 다리와 집 밖에서 흑인 여성이 가정적인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노예가 된 사람들은 1460년대 포르투갈을 통해 피렌체에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스트로찌의 가정에서 노예가 된 사람들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프라 필리포 리피의 <케이스먼트에서 남자를 가진 여성의 초상화>다. 1440년.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중 초상화로, 국내 환경에서 모델들을 처음으로 보여주며, 풍경을 보는 첫 번째 초상화다. 고급스럽게 옷을 입은 알라 프랑세즈의 소매에는 "레알타"(신앙)라는 철자가 수놓여 있는 여자가 눈에 띄는 팔코트에 손을 얹고 창가에 나타난 남자에 의해 관찰된다. 두 인물은 로렌조 디 라니에리 스콜라리와 앙기올라 디 베르나르도 사피티일 것이다. 그는 1439년경에 결혼했다. 리피의 임무는 알프스 북쪽에 선호되는 3/4 견해와는 달리 프로파일 뷰에 대한 이탈리아의 선호로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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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의 <성 제롬의 마지막 성찬식>이다. 1490년.  성경의 위대한 4세기 학자이자 라틴어 번역가는 베들레헴 근처의 그의 감방에서 보여지며, 마지막 성찬식을 받을 때 그의 동료들의 지원을 받는다. 그 당시 유명한 이 그림은 급진적인 설교자 사보나롤라의 후원자인 플로렌타인 양모 상인 프란체스코 델 푸글리스를 위해 그려졌다. 메디치의 반대자인 푸글리세는 그 깊은 헌신적인 내용 때문에 그 주제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 제노비우스의 세 기적 >이다. 1500년.  이 그림은 약 1500년경으로 그려졌으며 피렌체가 개혁적인 설교자 사보나롤라의 지배하에 있던 해 동안 진화한 거친 스타일로 그려졌다. 그것은 5세기 피렌체 주교의 삶을 보여주는 일련의 4개의 패널에 속하며, 모두 건축 환경으로 유명하다. 왼쪽에서 제노비우스는 장례 행렬을 만나 죽은 젊음을 되살린다. 중앙에서 성 암브로즈로부터 유물(관 안에)을 가져오다가 살해된 사람을 키운다. 오른쪽에서 성 유제니우스는 제노비우스가 축복한 물과 소금을 받은 다음 광장을 가로질러 서둘러 죽은 친척을 되살린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수태고지>다. 1485-92년.  로버트 리먼 컬렉션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이 선언문의 묘사는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달성된 기술인 깊이의 환상을 만들기 위해 1점 관점으로 표현된 고전적 건축 인테리어에서 펼쳐진다. 패널 표면에 보이는 절개된 선은 복잡한 구성을 만들기 위한보티첼리의 작업 방법의 증거다. 기둥의 줄은 천사 가브리엘이 점령한 공간을 성모의 친밀한 침대 방과 분리시켜 주는데, 성모는 신성한 메시지를 받으면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다. 패널은 거의 확실히 더 큰 작업의 일부가 아닌 사적인 헌신적인 이미지로 위임되었다. 후원자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이 그림은 17세기에 로마에서 유명한 Barberini 컬렉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