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포루투칼(2017.07.20-07.26)

7월 21일 바탈랴 수도원

boriburuuu 2019. 9. 12. 22:29

토마루 수도원에서의 벅참을 뒤로하고 바탈랴 수도원으로 향했다. 21일에 출발해서 한달짜리 유심을 구입한 우리는 유심 구입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물어물어 구입처를 찾는데 성공해서 사려니 30기가짜리 보름권밖에 없다고 한다. 다행히 포루투칼과 다른 유로 국가에서 50%씩 쓸 수 있는 거라고 해서 20유로를 주고 구입하면서 휴대폰 충전을 부탁하고 우린 도시락을 먹었다. 정신이 없어 그때까지 점심도 못먹은 것이다. 드라마틱한 것은 충전을 거의 마치고 휴대폰을 찾으니 내 유심은 끝나 있었다. 사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뻔한 것이었다. 


여하튼 바탈랴 수도원을 보러 갔다. 바탈랴 수도원(Mosteiro de Santa Maria da Vitoria)은 1385년 8월 14일, 카스티야(스페인)와의 알주바로타(Aljubarrota)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포르투갈 주앙1세가 그의 기도를 들어준 성모 마리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었다.

주앙 1세는 전투 전에 성모 마리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승리에 대한 보답으로 최고의 수도원을 짓기로 약속했고, 약속대로 3년 후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의 공사를 개시했다고 한다. 이 수도원의 이름이 ‘산타 마리아의 승리’인 것처럼 알주바로타 전쟁은 포르투갈로서는 중요한 전쟁이었다. 페르난두 1세가 승하하자 직계 후계자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카스티야 후안 왕은 포르투갈을 점령하려 했다. 나라를 빼길 것을 두려워한 포르투갈 귀족들은 페르난두 1세의 서자인 주앙을 지지했다. 결국 영국을 등에 업는 주앙과 프랑스를 등에 업은 후안 왕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1385년 8월 14일 포르투갈 중부 알주바로타에서 주앙을 모시는 장군 누노 알바레스페레이라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 카스티야와 프랑스 군을 몰아낸 주앙이 나라를 구하고, 1385년 국민의회 선거로 왕위에 올랐다. 이 전쟁의 승리로 아비스 왕조가 시작되었고, 주앙1세의 첫째 아들 두아르테 왕자가 왕위를 받아 아프리카 탐험을 도모했고, 산타 마리아 드 비토리아 수도원의 예배당을 건설하다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둘째 아들 엔리케 왕자가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이 수도원은 200년에 걸쳐 완성된 덕분에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와 마누엘 양식이 혼재돼 멋스럽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천사, 성인, 예언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된 정문을 들어서니 주앙1세 예배당(Capel de JoaoⅠ)이 있다. 쭉 뻗은 커다란 기둥, 높은 천장, 햇볕이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신비스럽다. 주앙1세의 회랑(Claustro de JoaoⅠ)은 마누엘 양식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회랑 복도에서 정원 쪽을 바라보면 문 위에 장식된 레이스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회랑 끝자락에 있는 분수는 수도사들이 식사 전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의식으로 손을 씻던 곳으로 1380년대 후반 건축의 대가 아폰수 도밍게스(Afonso Domingues)의 초기 건축물에 디오구 드 보이타가가 마누엘 양식을 추가했다. 수도원 중앙에 있는 돔에는 팔각형 제등이 켜진 둥근 천장의 사각형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 중앙에는 주앙1세와 그의 아내 필리파 왕비의 무덤이 있고, 항해의 왕자 엔리케를 포함한 네 명의 아들 무덤은 남쪽 벽에 있다.

 여기에는 미완성 예배당(Capelas Imperfeitas)이 있는데 16세기 초 마누엘 양식의 화려한 건축 기법이 응축되어 있는 곳으로, 예배당을 완성하지 못하고 갑지가 세상을 떠난 두아르테 왕과 그의 아내 레오느로 왕비가 잠들어 있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천장 없이 7개의 예배실로 이루어져 있다.  











무명용사의 방(Sala do Capitulo)은  기둥 주변을 미동도 하지 않는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어서 신기했는데, 프랑스와 모잠비크에서 전사한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방이라고 한다.





왕의 회랑 아치 위의 레이스 장식이다. 돌로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했는지 경이롭다.


















<수도사들이 식사 전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의식으로 손을 씻던 곳으로 1380년대 후반 건축의 대가 아폰수 도밍게스의 초기 건축물에 디오구 드 보이타가가 마누엘 양식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