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좋아 게속 있고 싶었으나 파티마에 와보지 못한 언니를 위해 과감하게 오비두스를 포기했다. 파티마는 리스본 북쪽 141㎞에 위치한 인구 7000명의 작은 도시다. 산타렘주(州) 빌라노바데오렘에 위치한다. 파티마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매년 400만명이 모인다는 세계적인 성지 순례도시 중 하나다. 가톨릭교회가 공식 인정한 성모 발현지이다. 파티마 자체는 조용했지만 파티마 대성당이 앞쪽, 산티시마 트린다데 바실리카 성당이 뒤쪽에 있는 코바 다 이리아 광장을 들어서니 수많은 신자들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 광장은 좌우 너비 240m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보다 약 2배가 더 넓어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 수 백명의 인파가 운집한 이 곳은 성모 마리아 발현 예배당이었다. 규모가 작지만 이 광장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예배당으로 1차세계대전 중인 1917년 5월 13일, 이리아 광장(과거 목초 지역)에 성모 마리아가 3명의 양치기 어린이 앞에 나타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약속했던 곳에 세운 성당이다. 이곳에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암살을 시도했던 총알이 박힌 왕관을 쓰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보관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2010년 5월 12~13일에 이 예배당을 방문해 수많은 순례자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준 성모에게 감사를 표하는 황금 장미를 선물했다. 그는 요한 바오르 2세의 암살을 떠올리며, 이 성모상이 ‘우리의 즐거움과 희망의 금, 은으로 장식된 것이 아닌 우리의 불안, 고난의 총알로도 장식되어 큰 위안이 된다’고 기도했다. 이 곳에는 목동 3명이 성모를 뵙고 자신들의 고통을 봉헌하기 위해 발현언덕을 무릎으로 기어 오른 ‘순례의 길’을 체험해보는 순례객이 많았다. 실제로 광장 한 가운데 대리석이 깔려진 긴 길을 무릎으로 기는 신자가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여성이었다.
파티마가 유명해진 것은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3가지 기적 이야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5월 13일, 이리아 목초지역에서 양을 치던 루시아를 비롯한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10월까지 5개월간 매달 13일에 열심히 기도하면 평화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아이들을 체포, 철저히 조사하고 순례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아이들은 끝까지 성모 마리아를 봤다고 진술했고, 이 중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와 이야기를 나눈 루시아는 성모의 3가지 비밀을 털어놨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구 소련의 공산주의화,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등에 관한 예언이었다. 이를 성모와 약속한 날까지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는 말까지 공개했다. 결국 이런 예언은 모두 현실화됐다. 특히 암살 시도에 대한 예견은 당시 교황에게만 털어놨었는데, 이를 교황이 2000년에 대중에게 밝혔다. 목동들의 얘기를 듣고 파티마에 모여든 6만여 명의 신도들은 1917년 10월 13일에 하늘에서 태양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목격하고는 성모 마리아가 파티마에 강림하였음을 믿게 됐다. 1930년 포르투갈 주교들이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공식 인정했고 가톨릭은 1917년 10월 13일을 ‘태양이 춤을 춘 날’이라고 명명했다. 파티마 대성당은 1917년에 일어난 파티마의 기적 후 레이리아의 주교가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1928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을 시작했고 1953년 10월에 봉헌식이 거행됐다. 로사리오 성당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성모가 목동들에게 묵주를 들고 기도하라고 청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대성당 앞에는 큰 십자가가 있는 65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다. 내부에는 발현을 경험한 목동과 1920년 복원 후 첫 주교였던 호세 알베스 코레이아 다 실바의 묘가 있다. 1952년에 설치된 1만2000여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파이프 오르간, 파티마 기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기적을 표현하고 있다. 매년 5~10월 13일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특히 성모의 처음과 마지막 발현일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오면서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너무 바빠 저녁도 먹지 못한 우리는 차안에서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리스본으로 향했다. 배터리가 다되어 걱정을 했는데 집을 차자을 때까지 기적적으로 헤메지 않고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앞에 있는 주차장에 세우려는데 만차라며 받아주질 않는다. 할수 없이 호텔 앞에 주차했는데 주차카드를 뽑지 않고 그냥 세운 것이 마음에 걸린다. 휴대폰 배터리는 도착과 거의 동시에 아웃되어 우린 정말 기적같은 하루를 보냈다. 오늘 여행만으로 포루투칼은 더 보지 않아도 될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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