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중국 시안

2일 진시황릉

boriburuuu 2019. 11. 4. 15:12

병마용을 나와서 나가는 길에 많은 식당가와 푸드코트등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하는 난제에 부딪혔는데 결국 혼자 가서 밥을 먹으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이어서 점심은 포기하고 옥수수를 하나 집어 들었다. 참 기분이 묘하네.












밥을 먹지 않게 되어 길을 찾다가 점 헤멨는데 그사이 제주댁이 없어졌다. 한참만에 연락이 되었는데 인천댁한테 자기만 떼어 놓고 갔다고 짜증을 냈단다. 정말 적반하장이란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말하고 싶지도 않아 아는체를 안하고 지나친다.


진시황릉은 서안시에서 약 35떨어진 임동현성의 동쪽에 있는 려산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려산릉으로도 불린다. 개인의 무덤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는 이 진시황릉은 시황제가 즉위한 기원전 246년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40여 년이 지난 기원전 208년에 완성되었다. 본래 높이 500(진대에는 122.5cm 정도였다. 500이면 약 122.5m 정도가 된다.)에 주위가 5리나 되는 웬만한  산과  다름없는  능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높이는 76m이고 지름은 485~515m이다.

진시황릉은 봉분을 가운데에 놓고 이중으로 담을 설치하였는데 현재는 기초석만 남아 있다. 안 담은 동서 길이가 578m이고, 남북 길이가 685m이며, 바깥 담은 동서 길이가 974m이고, 남북 길이가 2,173m이다. 안 담에는 동문 서문 북문이 있고 바깥 담에는 동문이 있다. 분구의 정상에 오르면 동서 길이가 25m이고 남북 길이가 40m인 평지가 있다. 건물을 지었던 터로 추정된다.

진시황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제위에 올라 이때부터 이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제왕들이 살아생전에 무덤을 만들면 장수할 수 있다고 여겨 자신의 능묘를 거대하고 호화롭게 만들던 관습에서 기인하였다.

시 황제는 최후로 남은 전국시대 제후인 제왕을 사로잡고 천하를 통일한 후 만리장성을 쌓고 분서갱유를 단행하는 한편 자신의 능묘를 본격적으로 조성하였으니 이 사실을 사기』「시황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시황은 37년 간 재위했는데 l3세 때 즉위하면서부터 자신의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조묘공사를 진행한 것은 재위 26년째 되던 해에 천하를 통일한 후부터였다. 천하의 제수 70만 명을 동원하여 삼천의 깊이까지 착굴해서 동을 부어 현실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궁전을 만들고 문무백관의 상을 만들어 배치하고 갖가지 생활용품을 가득 채웠다. 또 자동 발사장치가 달린 석궁을 만들어 혹시라도 도굴자가 들어오면 사살하도록 장치했다. 수은으로 백천 강하 대해를 만들고 강의 흐름이 끊임없이 환류되도록 장치했다. 현실의 천장에는 일월성신을 만들고 바닥에는 중국의 지도를 만들었으며, 인어 기름으로 불을 밝혀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했다. 또한 이러한 보물이나 장치들이 외부에 알려질까 염려하여 시황의 관을 안치한 공인들이 현실의 문을 잠그고 출구로 연결된 연도로 왔을 때 출구를 막아 전원을 생매장시켜 버렸다. 묘위에는 높이 500, 주위 5리의 분구를 쌓고 초목을 심어 자연의 산처럼 보이게 했다.

이렇게 70만 명이나 동원해서 조성한 초대형 능묘는 시황이 죽은 지 3년 만에 항우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사기』「항우본기에 따르면 항우가 함양에 들어온 후 30만 명을 동원하여 아방궁을 불태우는 한편 진시황제의 능묘를 파헤치고 그곳에 보관된 보물들을 30일 동안이나 약탈하였다고 한다.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1987년에 진시황릉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하였다




우리는 전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진사황릉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산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올라갈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중국인들은 해설사가 설명을 해줄 뿐이었다. 약간 허탈하긴 했으나 여기까지 와서 진시황릉을 보지 않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주댁은 역시나 옆에서 볼것도 없는 곳에 왔냐는 듯이 빈정거린다.

뒤에 보이는 산 전체가 진시황릉이다.

가까이 가보니 중국인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있었다.  능에 오를 수 없게 완전히 철책을 쳐 놓은 모습이다.

뭔가 허전해서 세계문화유산 바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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