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중국 시안

3일 천복사와 소안탑

boriburuuu 2019. 11. 5. 00:25

시안 박물관과 담장을 함께 하고 있는 천복사에 작은 문을 통해 건너가 보았다. 천복사는 당 중종이 붕어한 부친 고종을 기리기 위해 684년에 창건하여 헌복사라 부르다가 690년에 천복사로 개칭한 사찰로 서안 성벽의 남문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천복사는 창건 당시부터 장안의 거찰로 이름을 날렸다.  당 조정에서는 706, 이곳에 역경원을 설치하고서 해로를 통해 인도에 유학을 다녀온 의정은 이곳에 머물며 불경을 번역했는데 그가 쓴 인도 여행기 <남해귀기내법전>은 중국과 인도 문화 교류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삼장법사(635~713)로 하여금 역경에 종사하도록 했다삼장법사는 이 때 68290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불경을 번역하였다고 한다유부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금광명최승왕경 대공작왕주경 등이 이 때 삼장법사에 의해 번역된 중요한 경전들이다또한 707년에는 거대한 전탑을 세워 자은사의 대안탑과 쌍벽을 이루게 하고서 대안탑과 대비된다 하여 소안탑이라고 하였다. 



이 작은 문을 통해 천복사로 건너간다.

이 사찰의 최대 볼거리는 이 고목들인것 같다. 1300년 이상된 회화 나무가 도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천복사 정원에 걸려 있는 대형 종 연탑진종’이다.








이 나무가 800년 된 가래나무인가보다.





대웅보전은 지금은 소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인탑의 건립 과정 등을 설명해 놓고 있기도 했다.
















드디어 소안탑이 보인다. 당나라 승려 의정이 707년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모시기 위해 지었다. 처음에는 사원안에 세어진 것은 아니었고 대문 밖 맞은편에 세워졌다. 당 말기 천복사는 전쟁으로 파괴되었지만 소안탑은 보존되었다. 북송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천복사는 소안탑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고 합쳐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단다. 당시 불교를 믿던 궁궐의 궁녀들이 자금을 모아 지었다고 한다. 소안탑은 밀첨식 전탑 구조로 탑밑 지궁, 기좌, 탑신, 탑첨 으로 구성되었고 탑신은 사각형 구조다.

소안탑은 초기에는 15층으로 높이가 45m 정도였으나, 1557년 섬서 지방에 몰아닥친 대지진 때문에 2개 층이 무너져 13층이 되었고, 높이도 42m 정도로 축소되었다.  1965년 대수리 때 누각식이던 탑 내부를 계단식으로 바꾸어 꼭대기까지 올라가 서안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는 시간이 지나서인지 문을 닫아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1,300년간 70여 차례 지진을 겪으면서 3차례 금이 가고 갈라졌다가 다시 맞붙어 불가사의로 꼽힌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당의 건축가들이 서안의 지질현상에 맞춰 탑의 기반을 반원형 구체로 만들어 지진에도 압력을 균일하게 분산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기념품 상점의 조각들이 아름다워 몇컷 찍어 보았다.














나오는 길에도 역시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800-1300년 이상의 고수가 10그루가 있는데 9그루의 회화 나무와 1그루의 가래나무다.


나오는 길에 고목으로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을 조각해 놓은 작품이 있었는데 신기했다.






중국 아가씨가 프로필 사진을 찍고 있나보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더니 당연히 같이 찍자는 말인줄 알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박물관 정원에는 유물의 복제품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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