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중국 시안

4일 무릉

boriburuuu 2019. 11. 5. 00:41

지하철을 타고 53번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1024번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려고 시안역으로 갔는데 시간이 너무 늦은 시간만 있어 포기하고 지하철로 이동했다. 곽거병 묘 박물관이다. 곽거병(B.C.140~ B.C.117). 하동 평양(지금의 산서성 임분시) 사람으로 전한 무제 때의 명장이다최고 관직인  대사마 표기장군이고 관군후에 봉해졌다.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며특히 흉노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무제 원수 6(B.C.117)2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한 무제는 크게 상심하여 자신의 묘역에 배장하도록 하여 그의 불후의 공적을 표창하였다. 시호는 경환후이고 그의 묘는 기연산을 상징한단다곽거병 묘의 하단부의 남북 길이는 101.50m이고 동서 길이는 73m. 정상부의 남북 길이는 15m이고 동서 길이는 8m. 곽거병의 묘에 무릉박물관이 있다. 그 의 공적을 상징하듯 하서주랑의 척추인 치렌산 모양으로 무덤을 만들었고 무덤 앞에 16개의 석상이 있는데 그 중 12개가 국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마답 흉노상으로 거대한 말이 흉노를 밟고 있는 석상이다. 곽거병의 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고 서쪽의 무릉이 한눈에 보인다.









그 유명한 마답 흉노상이다. 말이 흉노를 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석상인데 무제 원수元狩 6(B.C.117)에 주조되었다. 높이 168. 길이 190. 국가문물국에서 국보로 지정했다.  한나라의 말이 흉노왕(김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으로 추정)을 짓밟고 있는 석상이다.  지금은 중국대륙의 지배자이자,  세계를 호령하는 중국이지만, BC200년 경에 한고조 유방이 흉노를 통합한 묵돌 선우와의 전투에서 진 이래, 한무제가 흉노를 정벌(BC 119년)하기 전까지 한나라는 흉노에 조공을 바치고, 공주를 흉노왕의 부인으로 보내야 했던 나라였다.  고려와 몽고의 관계가 생각난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륙의 지배자는 한족이 아니라 흉노족이었던 것이다.  한나라보다 이전의 최초의 통일제국이었던 진나라의 진시황제가 두려워하던 북방 기마민족이 바로 흉노족이었으니, 초한지의 패자 유방이 초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개창하였다고 하지만, 흉노족에는 상대가 안되는 나라였던것을 생각하면, 과거의 흉노가 얼마나 강대한 민족이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마답흉노상은 그런 흉노에 대한 한족의 적개심을 형상화한 석상이고, 거의 100년간 흉노에 억눌려 있던 한족이 자유를 되찾은 것이 곽거병의 공적이니 한무제의 릉 옆에 묘를 쓰게 한 것도 당연하다 싶다.





약마상이다. 공중으로 도약하는 모습의 말의 석상으로 역시 무제 때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문물국에서 국보로 지정했다.


이곳에는 이런 거석들이 16개가 있는데 그 중 12개가 국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석상들이니 그렇겠지만 알아보기가 참 어려웠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소란다.



<멧돼지 형상의 와저>

<양을 먹고 있는 괴수>

<누워 있는 코끼리상>







동판으로 만든 곽거병의 용맹스러운 모습이다.












쪼그리고 앉은 호랑이이다.

앞모습

반대편에서 본 모습이다.


<쯔그려 앉아 있는 말>


곽거병의 묘위에 게단을 올라 람슬정이란 정자에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안개 때문인지 시야가 좋지 않다.


정자에서 내려오는 길에보니 한 여성분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일종의 샤머니즘 같은 것인것 같았다. 큰 바위에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하는.




안에는 가장 유명한 유물힌 마답흉노상이 복제되어 있다. 곽거병의 용맹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그의 무덤에서 나온 여러 부장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왕의 능에서 나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죽은 공을 세운 신하를 위한 한무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전시실에 가보니 사람 모형으로 설녕을 해 놓고 있다.



김일제의 묘다. 김일제는 한무제로 부터 김(金)씨 성을 하사받은 세계 최초의 김씨로서, 신라 경주 김씨의 근원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 인물이다. 김일제는, 휴도왕의  아들인데, 휴도왕이 죽고 한나라의 노예가 되었다가, 한무제의 눈에 띄어 한무제의 말 기르는 사람이 되었다가, 한무제의 암살기도를 막아 노예에서 해방되고, 죽기 전에는 산동성의 땅을 하사받고, 투후((秺敬侯)라는 직책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봉토를 하사받은 곳이 한반도와 가까운 산동성이다.













코뿔소가 꼭 하나씩은 있다. 그당시 선물 받아 매우 귀햇기 때문일까?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인 류금동마다. 198151일 오후, 흥평현  서오향 두마촌 사람들이 무릉 3 무명총 남쪽 60m 지점에서 평토작업을 하다가 굴 하나를 발견하여 무릉박물관에 신고하자, 무릉박물관에서 이곳을 발굴하여 236건의 문물을 발견. 그 중 국보급 문물이 2, 1급 문물 37건이 있었다..류금동마2건의 국보급 문물 중의 하나다. 동으로 주조한 후 도금한 마상으로 높이 62, 길이 76. 국가문물국에서 국보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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