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중국 시안

2일 화청지

boriburuuu 2019. 11. 4. 18:17

진시황릉에서 바로 화청지로 가는 버스가 있어 이동했다.(4위안) 도착하자마자 장한가의 티켓을 구매하려 했는데 현장에서는 당일 티켓만 판매한다는 것이었고 제주댁은 화청지는 들어가지 않고 예정에도 없던 장한가를 오늘 보자며 우기기 시작했다. 인천댁과 둘이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온 터라 난감했다. 얇은 블라우스 한장에 얇은 겉옷 한장이라서 밤의 기온에 한시간 정도 이상을 앉아서 공연을 보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었다. 이제 여행 시작인데 컨디션 조절도 해야하고 해서 다음 월요일에 공연은 보러오자고 하니 화를 내면서 혼자 가버리는 것이었다. 인천댁은 휴대폰 배터리도 없고 여행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혼자 갔으니 걱정이 태산이어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이날 화청지의 기억은 엉망이 되었다. 정말 여행은 일행이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화청지는 서안에서 35떨어진 여산 산록의 온천 휴양지에 있다. 이곳은 역대 제왕들이 행궁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으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서주시대에는 여궁을 지어놓고 왕족들이 사용했고, 진대에는 돌을 쌓아 못을 만들고서 여산탕이라 불렀으며, 한대에는 이궁을 짓고서고 황족들이 휴식처로 사용했다. 당태종은 이곳에 온천궁을 세웠으며, 당 현종은 그것을 확장하고서 화청궁으로 개명하였다. 또한 궁전이 못 위에 세워졌다고 하여 화청지라고도 불렀다.

당 현종 때 만들어진 화청지는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 때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다. 청나라 말기부터 복원사업이 부단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당 현종이 만든 화청궁의 일부만이 복원되었다. 현재의 화청지 면적은 85,560이다.

이곳은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백거이의 <장한가>에서는 봄날 아직 차가운데 / 더운 물에 들게 하는 화청지 / 온천의 물 매끄러운데 / 묵은 때를 씻겨내네.”라고 노래했다.










화청지는 193612, 군벌 장학량이 공산당의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서안에 온 장개석을 체포하여 감금하고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의 중지와 거국 일치에 의한 항일을 요구했던 서안사변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화청지 동쪽 구역에 곽말약이 쓴 화청지금자편액이 걸려 있으며 구역 내에는 하화각, 비하각, 오간정(1936년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머물던 곳) 등의 건축물이 있다이곳을 먼저 찾았다.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이하게 해 준 가장 큰 사건이었으니. 제2차 국공합작이 없었다면 지금 세계의 역사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을터였다.









이번에는 여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었으나 걸어서 산을 올라보았다.




시간 관계상 삼원동까지만 올라 아래 전망을 바라보니 화청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설명에 동굴이라고 되어 있더니 동굴 매부를 채색하고 그 안에 천신, 지신 등을 모셔 놓은 일종의 샤머니즘 같은 모습이다.










아래로 내려와 장한가 공연을 하는 곳을 둘러 보았다. 여기 뿐 아니라 여산 전체가 무대가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자못 기대가 된다.






중앙 구역에는 당 화청궁 어탕유적박물관이 있으며 연화탕, 해당탕, 태자탕, 상식탕, 성진탕 등의 당나라 때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탕과 문물 전시실이 있다. 화청지 내의 여산 온천에서는 수온이 섭씨 43도인 온천수가 시간 당 112톤이나 용출되는 데 석회 탄산나트륨 유산나트륨 등과 같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이곳에서 목욕을 할 경우 피부병 풍습 관절염 근육통 등과 같은 질병 치료에 효과를 본다고 한다.




귀비탕은 양귀비가 현종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온천탕으로 둥근모양이 예쁘다. 

 양귀비는 중국 4대 미인중 한명이다. 당시의 미인의 기준은  퉁퉁하고 볼륨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양귀비는 퉁퉁하고 볼륨감도 넘치는데 허리는 아주 잘록하였다고 하고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암내가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해당탕에서 하루에 18번 목욕을 했다고 한다.

탕의 사이즈는 아주작고 아담한데 1인용이어서 그런가보다. 양귀비의 탕 답게 모양이 가장 아름다운 탕이다.


연화탕은 당현종 전용 목욕탕으로 계단이 하나다원래 용과 연화가 새겨져 있었으나 용이 물에 어른거리는 것이 기분이 상한 황제가 용의 모습을 지웠다고 한다. 그래서 연화탕이 되었다고.



성신탕은 원래 황제 전용이었고 옥외여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어 성신탕이라 했으나 후에 신하들의 전용탕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지붕도 있다.

성신탕 옆의 이 공간은 탈의실이었단다.

성신탕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궁녀들이 사용하던 상식탕의 모습이다. 중앙 앞쪽에 6개의 홈이 파여 있는데 황가의 음식을 만지는 궁녀들은 발을 손으로 만지며 씻지 못하게 되어 있어 홈에 문지르며 각질을 제거하는 용도였단다.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연꽃 모양의 분수대는 온천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식용으로는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 당 현종의 탕, 태자탕 등이 있다.  태자탕은 야외에 노출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자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었던것 같다.



이곳은 온천물이 솟아나는 곳인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소박물관인줄 알았는데 가보니 별도의 요금을 내고 족욕을 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었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정말 깔끔하고 에쁘게 꾸며 놓았고 인천댁은 모두 나눠 가지자며 5위안짜리 양귀비 부채를 구입했다.








목간 형식에 새긴 장한가. 당대의 시인 백거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서사적인 장가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에 관한 것이며 4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권력의 정상에 있는 황제와 절세가인인 양귀비의 만남과 양귀비에게 쏟는 현종의 지극한 애정 등을 노래했다.

2장은 안녹산의 난으로 몽진하는 길에 양귀비를 죽게 한 뉘우침과 외로움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황제의 모습을 그렸다.

3장은 환도 후 양귀비의 생각만으로 지새는 황제를 묘사한다.

4장은 도사의 환술로 양귀비의 영혼을 찾아 미래에서의 사랑의 맹세를 확인하게 되었으나 천상과 인계의 단절 때문에 살아 있는 한 되씹어야할 뼈저린 한탄이 길게 여운을 끈다.

온천 석벽에 있는 <온천송비>는 중국 비석 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사공서의 시비가 있는데 인품이 결벽하여 권신과 가까이하지 않고 가난을 감수한 인물로 전기 등과 함께 대력십제자의 한사람으로 꼽힌단다. 시집인 <사공문명시집>이 있다.



















백거이의 장한가를 적어 놓은 석비다.









대충 화청지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인천댁은 혼자 가버린 제주댁이 마음이 쓰여해서 숙소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기다렸으나 연락도 없이 12시 까지 들어오질 않는다. 나중에 와서 구경 잘했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인천댁은 대장 노릇을 하고 잘난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니 추켜 세워줘가며 같이 이왕 같이 왔으니 함께 다니자고 한다. 내일은 박물관을 가는 날이니 한번 같이 가보는데 문제는 꼴도 보기 싫다는 것이다. 사실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고 참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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