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중국 시안

법문사 사찰과 13층탑

boriburuuu 2019. 11. 9. 22:52

지하철을 타고 서부터미널로 가서 법문사 가는 버스를 탔다. 거의 2시간 걸려서 법문사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 운전수는 4시 반이면 시안가는 버스가 끊기니 이곳에 와서 버스를 타라고 알려준다.

패방이 보이고 저 멀리 13층 탑이 보인다.



매표소에서 120위안을 내고 티켓을 끊었다. 중국의 입장료는 비싸기로 유명해 병마용이나 화청지등은 30원씩 내렸으나 사찰 등은 그대로인것 같았다.

중국에서 가장 단계가 높은 별 다섯개 짜리 풍경구다.








법문사 진신보탑에 이른다.  비로소 부처님 지골사리가 발견된 역사적 현장에 당도한 것이다. 지골사리는 어떤 연유로 법문사 진신보탑에 봉안됐던 것일까. 법문사는 후한(147~189년)의 환제(桓帝)·영제(靈帝)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본래 이름은 아육왕사(아쇼카왕사)였다. 형제 99명을 살육하고 왕위에 오른 아쇼카는 뒤늦게 이를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한다. 제3차 결집을 후원하는 한편 부처님이 남긴 사리를 나라 안팎으로 보낸다. 포교를 위해서였다. 이때 석리방 등 18명의 스님들은 진신사리 19과를 가지고 험난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으로 향했다. 목숨 건 여정 끝에 중국에 도착했지만 불법이 꽃필 수 있는 여건은 무르익지 않았다. 이들은 부처님 사리를 서안 인근의 성총에 묻었다.부처님 사리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인도 서북부 안식국의 왕자 안세고에 의해서였다. 왕위를 버리고 불문에 귀의했던 안세고는 역경승(譯經僧)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성총에 머무르던 어느 날 밤이었다. 대지에서 솟아오른 광채가 하늘을 가르며 북두칠성까지 이어졌다. 예사롭지 않게 여긴 안세고가 그곳을 파보니 산스크리트 문장이 쓰인 7개의 푸른 벽돌과 함께 진신사리가 있었다. 그 가운데 지골사리를 봉안해 조성한 사찰이 아육왕사, 오늘날의 법문사다. 이후 법문사는 당나라 황실사찰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님 5000명이 수행하며 부처님 법을 받들었다. 뿐만 아니라 30년에 한 번씩 봉행했던 공양의식은 황실이 주도하는 국가적 행사로서 법문사의 위상을 드높였다. 당나라 황실은 다른 사찰의 사리보다 법문사 사리를 중요시했다. 공양을 위해 법문사에서 서안으로 지골사리를 이운할 때면 백성들이 길을 가득 메웠으며 황제는 눈물 흘리며 절을 올렸다. 공양의식이 열리는 해는 어김없이 풍년이 들고 사람들은 화목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법문사는 당나라의 몰락과 더불어 쇄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9세기 후반, 당 의종(懿宗)은 진신보탑 지하궁전을 봉해버렸고 지골사리는 전설 속 존재로 남게 된다. 1568년과 1609년 대지진으로 무너지고 재건되기를 반복했던 진신보탑은 1976년 지진으로 또다시 기울어지는 참사를 겪었다. 1981년 8월에는 열흘 이상 격렬한 폭우가 휘몰아치면서 탑의 서남 측 대부분이 함몰됐다. 중국정부는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복원공사에 나섰다. 당 의종이 지하궁전을 밀봉한 후 전설이 됐던 지골사리가 사람들 눈앞에 홀연히 나타났던 것은 바로 그 과정에서였다.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탑돌이를 진행한 순례단은 계단을 따라 지하보궁으로 내려간다. 곧 금빛 불상들로 장엄된 벽면과 지골사리를 보관했던 사리함, 지하궁전으로 연결된 통로가 나타난다. 허리를 굽혀 지하궁전을 들여다본다. 그리 길지 않은 통로 끝에 자그마한 방이 자리 잡고 있다. 저곳에서 1000년을 계셨다.




지궁으로 들어가본다,








여기까지 사진을 찍고 경비원에게 제지당했다. 노 포토란다. 조금 있다가 글을 쓸때 필요해서 사진을 좀 남기고 싶디고 청하니 허락을 해 주었다. 중국인들에게 뭐든 청하면 거의 부탁을 들어주는 편이다. 대국이라 역시 마음이 넓은 것 같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진만 찍어 보았다. 1987년 발굴팀이 지하궁전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호화로운 금, 은제 그릇 121점과 페르시아 유리 그릇 17점, 비단과 자수 견직물 700여점을 비롯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석가모니의 4센치의 손가락뼈'가 발견되었는데 보호하기 위해 다른 세 개의 사리가 함께 있었다고 하고 두 개는 상아를 깎아 만든 가짜이고 하나는 고승의 사리였다고 하는데 그것들이 지금 여기 전시되어 있었다. 상아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다.

두 개의 상아사리 중 나머지 하나이다.



이것이 고승의 사리이다.  가운데 하얀 사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진신보탑 내 지하궁전. 통로 끝으로 진신사리가 1000년 동안 잠들어있던 방이 보인다.

30년에 한번씩 왕들이 부처님 사리를 친견했다고 하는데 이 보살상 위에 놓고 친견한 것으로 추정된단다. 왕들은 30년에 한번씩 진신사리응 친견하도록 법으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그 때는 나라가 평안하고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이름은 봉진신 보살상이다.










대웅보전이다.


종루다. 맞은편에 똑같이 생긴 고루가 있다.

대웅보전에 이르니 오방오불이 모셔져 있다.













법문사와 우리나라 도선사와 자매결연을 맺어 한글과 간자로 쓰인 비석을 놓쳐 불교신문에서 사진을 좀 빌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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