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스페인(2016.04.03-04.30)

톨레도 대성당, 파라도르 전망대

boriburuuu 2019. 11. 17. 19:57

이제 대성당(11유로)이다.  이슬람 세력이 지배할 때는 이슬람 사원이었으나 1086년 알폰소 6세가 톨레도를 수복하면서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했다.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이며 화려하고 웅장한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스페인 카톨릭 총본산인 카데드랄 중에서도 가장 규머가 크다. 수세기를 거치면서 외관은 프랑스 고딕양식,  내부는 무데하르 양식(이슬람풍의 기독교 건축양식)과 플라테레스크양식(15-5세기의 스페인 건축양식)이 혼합되었다. 한 쪽에 92m의 첨탑이 있고 입구는 3개인데 중앙은 면죄(용서)의 문, 왼쪽은 시계(지옥)의 문, 오른쪽은 사자(심판)의 문인데 조각이 매우 섬세하다. 엘 그레꼬, 고야, 티치아노가 그린 프레스화가 주요 볼거리이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는 일요일이라 미사를 보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주어 이 성당에서 미사를 본 적이 있다. 내부를 보려고 해도 경비가 삼엄해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면서 참사회 회의실을 살짝 봤는데 그 화려함이 뇌리에 많이 남아 있다. 

스페인카톨릭의 본산 톨레도대성당은 세로 113m, 가로 57m로  88개 기둥이 있고 5개의 주랑이 있다. 내진부는 45m로 교회의 중심이고 75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는데 장미창이 특히 아름다웠다. 측면의 4개의 주랑과 연계된 부속 예배당 22개가 연결되어 있다. 종탑 아래 수직으로 만곡한 아치문은 사자들의 문으로 15세기 고딕스타일로 대리석에 사자 조각이 되어 있다.

 





성가대석의 명작인 '백색의 성모상'이다. 검은듯한 피부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성모마리아와 능동적으로 손을 뻗어 머리아의 턱을 만지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여기저기서 모스크였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참사회의실이다. 천장은 무데하르양식의 화려한 격자 무늬 천장이다.

천장 아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성모 마리아의 생애 등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가득히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역대 톨레도 대성당 주교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프레스코화는 석회, 석고 등으로 만든 석회 벽의 건조가 채 되지 않은 덜 마른 벽면에 수용성 그림 물감으로 그리는 기법이라 작업이 까다롭고 신속해야하는데 이런 대형 작품은 몹시 어려웠을 것이다.
















엘 엑스폴리오를 비롯해 대형 천정화가 그려져 있고 성구실에서는 사도들의 심오한 내면세계를 표현한 베드로, 마테, 요한 등의 그림 이 있다. 고야의 <유다의 입맞춤>, 종루 아래 소예배당은 보물실인데 왠일인지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한부분도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은 부분이 없어서 한참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엘 엑스폴리오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작품의 제작 시기는 1577년 7월 2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엘 그레코의 스페인 초기 활동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근거 자료이다. 이 그림에 대한 의뢰는 엘 그레코의 친구인 루이스(대성당의 주임 사제였던 디에고 데 카스티야의 아들)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그림에서 예수는 고요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의 이상적인 모습은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 폭력성과 구분되는 듯이 보인다. 뒷배경에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예수를 힐난하듯 손가락질하고 있고, 두 명의 남자는 누가 그의 옷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예수 왼쪽의 녹색옷을 입은 남성은 예수의 손을 묶은 줄을 단단히 쥐고 그를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 그의 옷을 벗길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허리를 굽히고 있는 노란 옷의 남자는 십자가에 못이 박힐 구멍을 뚫고 있다. 예수의 밝게 빛나는 얼굴은 사형 집행인들의 거친 얼굴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들은 예수 주변으로 몰려들어 자신들의 손짓과 창으로 인해 움직임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예수는 붉은 옷을 입고 있다. 이 붉은 옷이야말로 예수의 신성한 열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엘 그레코가 전력을 다해 표현하고자 했던 결과물이다. 화면의 구성은 수직으로 무척 빽빽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엘 그레코는 이를 통해 학대자들에 의해 예수가 얼마나 탄압 받았는지를 강조하고자 했다. 예수는 건장하고 키가 크며 고요한 모습이며, 마치 수직으로 된 벽처럼 그림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엘 그레코는 16세기 중후반 매너리즘 화가들이 일반적으로 하듯이 공간을 지워버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Wethey에 따르면, 엘 그레코는 후기 비잔틴 회화를 연상시키는 줄줄이 사람 머리를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군중을 표현했다.

<엘 엑스폴리오-엘 그레꼬>

<베드로의 눈물-엘 그리코>

성구실의 천정화이다. 루카 지오다노가 심혈을 기울인 대형 천정화가 압도적인 분위기다.




중앙 예배당의 천장에 나 있는 구멍이다. 둥근 천장에 구멍을 내 자연 빛이 제단과 병풍을 비추는 엘 트란스파렌테라는 채광창으로 나르시스 토메의 작품이다. 세비야에도 이런 천장창이 있었다.






중앙 제단의 모습이다. 왼쪽 두줄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가운데 한 줄은 위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성모 승천, 예수 탄생, 성체현시대, 성모자상을 나타내며 오른쪽 두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을 담은 걸작이다. 화려함과 정교함의 끝이다. 스페인의 성당들은 신대륙의 금 덕분이었는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해서 나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기도 했다.


성가대석은 고딕양식으로 ‘성가대 창살’이란 별명으로 불리운다. 호두나무(50개)로 카톨릭 부부왕이 그라나다를 함락시키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윗부분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성인 성자의 모습을 상상하여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성가대석>




<중앙 대제단-옛날 내가 미사 드리던 곳>











아름다운 장미창이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광장에서 꼬마열차를 타고 톨레도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포토죤에서는 잠시 정차하여 사진을 찍도록 해 주었는데 그레코가 그린 톨레도의 풍경에 나오는 그 곳이었다. 어떻게 몇 백년이 흐르는 동안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수도인 마드리드의 근교 도시이지만 500년전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도시인 톨레도는 약 400년에 걸쳐 아랍세력의 수도였던 곳으로 1085년에서 1560년까지 스페인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상업의 중심지였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알칼라문>



꼬마열차는 우리를 톨레도 시내 전경이 가장 잘보이는 파라도르 전망대에 내려주었다. 국립호텔인 파라도르 근처에 있는 이 전망대는 산기슭에 위피해 있어 타호강을 끼고 있는 톨레도의 환상적인 전경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엘 그레코도 여기에서 톨레도의 전경을 그렸을 것이다. 몇백년이 흘렀는데도 거의 큰 변화가 없는 시가지의 모습은 또 하나의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