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캄보디아

크메르제국 유적 "프놈 꿀렌" 등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9. 12. 9. 19:01

오늘은 앙코르 유적 중 캄보디아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프놈 꿀렌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09:00). “프놈 꿀렌(Phnom Kulen, 꿀렌산)"은 크메르제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씨엠립에서 북쪽으로 50Km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크메르제국을 창시한 자야바르만 2(802~835년 재위)802년에 데바라자(神王)가 되면서, 자바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전쟁에서 방어에 유리한 산 속에 마헨드라뿌라(Mahaendrapura)”라는 도시를 건설하며, 캄보디아에서 유일한 군주임을 천명했다. 프놈 꿀렌은 해발487m로 평지를 이루는 주변보다 높게 솟아있으며, 씨엠립강의 발원지였다.

 

 일행은 산 밑에 있는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곳에서 팔고 있는 짹 플롯을 샀다. 이 과일은 엄청나게 큰 것으로 맛도 좋았다.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에 접어들어 비포장도로인 밀림을 달렸다. 길은 좁고 급커브의 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탔던 큰 버스 대신, 미니버스 2대가 배정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프놈 꿀렌으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본 기념품들>

 

 

 프놈 꿀렌주차장에서 차를 내린 일행은 새로 바뀐 안내자(서길준)를 따라 사원으로 갔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나가 계단으로 되어있고, 길 중턱에는 사원을 중 창건할 때, 기부한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적은 게시판이 있었다. 그것을 지나자 남녀를 불문하고 어린이와 노인들이 적선을 바라고 손을 내밀었다. 안내자가 차에서 내려 1,000리엘 권으로 새 돈을 바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000리엘 권은 시아누크 전 국왕이 젊었을 때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프놈 꿀렌 "왓 뿌레아 앙토"의 나가 담장>

 

<안내자가 1,000리엘 신권으로 바꿔 꼭 필요한 사람에 나누어 주는 모습>

 

<"왓 뿌레아 앙토"입구에 세운 비슈누 상>

 

<사원(왓 뿌레아 앙토)으로 올라 가는 계단 모습>

 

<"왓 뿌레아 앙토" 정문 풍경>

 

<사원 건립에 기부한 사람의 명단과 금액을 적은 구조물>

 

 

 사원인 "왓 뿌레아 앙토(Wat Preah Ang Tho)" 옆의 계단을 올라가니 좁은 건물에 둘러싸인 커다란 와불이 있었다. 20m 높이의 사암 정상부분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그 길이는 17m였다. 현지인은 와불을 만지면 좋다는 믿음이 있는지, 그것을 만지느라고 자리가 잘 나지 않았다. 뒤로 돌아 계단을 내려오자 바위 밑에는 작은 불상이 5개 모셔져 있었다. 조그마한 사원에는 부처님 발자국이라고 하면서 커다란 발 모양을 만들어 놓았으며, 그 안에는 많은 돈들이 흩어져 있었다.

 

<"왓 뿌레아 앙토"의 와불>

 

<"왓 뿌레아 앙토"의 와불 머리 부분 모습>

 

<와불 뒷 편 계단에서 바라 본 주위 풍경 1>

 

<와불 뒷 편 계단에서 바라 본 주위 풍경 2>

 

<와불 위쪽 바위 밑에 모신 불상들>

 

<작은 사원 앞에 있는 부처님 발자국에 시주한 돈>

 

 

 특히 이곳은 크메르제국에서 건축에 필요했던 사암을 채취해 간 곳이었다. “앙코르 왓앙코르 톰등의 건설에 사용된 사암이 모두 프놈 꿀렌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현재 이곳은 프놈 꿀렌 국립공원(Phnom Kulen National Park)으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었다.

 

 일행은 사원을 나와 1,000개의 링가와 요니가 있는 하천()으로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물이 낮은 작은 강바닥의 바위에 작은 링가와 요니들을 수없이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다. 땅이 아닌 하천의 물 속에서 이와 같은 작업을 한 것이다. 지금은 건기이기 때문인지, 강물은 지저분해보였다. 또한 흐르는 물에 햇살이 비쳐서 그 수가 많다는 것만 알았을 뿐, 셀 수는 없었다. 건설 당시에는 강물이 링가를 지나면서 신성한 물로 변모해 크메르제국에 흘러든다는 상징성을 부여했다고 한다.

 

<사원을 보고 내려오다 정문을 배경으로>

 

<하천으로 가면서 본 우렁이를 까먹는 여자 아이 모습>

 

<"1,000개의 요니와 링가"가 있는 하천 모습 1>

 

<"1,000개의 요니와 링가"가 있는 하천 모습 2>

 

<하천 옆 숲 속의 풍경>

 

<비슈누 조각이 있다는 하천을 배경으로>

 

 바로 그 위에는 비슈누와 그의 부인인 락슈미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했으나, 흙과 이끼가 끼여 있고 물결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 중에는 물결이 잔잔할 때 보면, 모습이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위에는 이곳 아이들의 안내로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물을 구경했다. 샘물 옆에는 작은 사당이 2개나 있었다.

 

<물이 퐁퐁 솟아 오르는 샘물>

 

<샘물 옆에 있는 사당 모습 1>

 

<샘물 옆에 있는 사당 모습 2>

 

<물이 퐁퐁 솟아 오르는 샘물을 바라보는 여인>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강을 건너, 그곳에 있는 주차장에서 내렸다.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원두막 같은 집이 여러 채 있었는데, 이곳은 일행이 점심을 먹을 곳이었다. 점심은 씨엠림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 차에 실고 와서, 이곳에서는 돼지고기를 굽고 밥을 지어 주는 형태였다. 점심은 한국여행사에서 주관했기 때문인지 완전히 한국식단이었다. 반찬으로 삼겹살, 상추, 된장, 고추절임, 마늘 등이 나왔는데 무한리필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내려오면서 나무 그늘에서 쉬는 동자승과 함께>

 

 점심 후, 일행 1명과 함께 폭포로 내려갔다. 폭포는 높이20m, 15m 크기로 웅장해서, 요즘 건기임에도 폭포는 아주 멋져보였다. 점심을 먹은 바로 앞의 강바닥에는 뱀인 안난타위에 누워 명상에 잠긴 비슈누와 그의 부인 락슈미가 함께 조각되어있고, 그 옆에는 연꽃에서 브라흐마신이 탄생하는 장면이 있었으나 사진으론 잘 잡히지 않았다. 국립공원에서는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 줄을 처 놓고 있었다. 강 건너에는 자야바르만 2세가 세운 마헨드라뿌라 시절의 궁전 터가 남아있다고 했으나, 시간관계상 가지 못했다.

 

<프놈 꿀렌의 폭포>

 

<프놈 꿀렌의 폭포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1>

 

<프놈 꿀렌의 폭포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2>

 

<일행이 점심을 먹은 곳 앞의 작은 폭포>

 

<물 속 안난타 위에 누운 비슈누와 락쉬미 조각이 있는 모습>

 

 일행은 프놈 꿀렌을 출발(14:20), 돌아오면서 용과 농장을 들렸다. 그러나 용과는 5월이 수확기라서 용과가 매달린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선인장만 보았다. 조금 내려오다가 이번엔 슈거 팜의 열매로 설탕을 만드는 공정을 돌아보았다.

 

<용과농장의 용과가 달리는 선인장>

 

 먼저 슈거 팜(설탕야자나무)에 대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서 올라가, 열매에 칼 등으로 상처를 내고 통을 달아 진을 모으는 것이다. 다음은 그 진을 가지고 내려와서 가마솥에 불을 피워 졸여서 만든 결정체가 설탕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부분 사탕수수 등에서 나오는 설탕을 먹지 않고, 슈거 팜에서 나오는 것을 먹는다고 했다. 결정체를 먹어보니, 우리가 먹는 황설탕과 비슷했다.

 

<슈거 팜(나무)을 오르는 대나무 사다리가 있는 풍경>

 

<슈거 팜 열매와 그 열매가 크는 열매받이 모습>

 

<슈거 팜 열매들>

 

<슈거 팜 열매에서 받은 진액 모습>

 

<슈거 팜 열매에서 받은 진액을 불에 졸이는 모습>

 

<황설탕과 비슷한 슈거 팜을 졸인 설탕>

 

 호텔로 돌아와(16:30) 대부분의 일행은 마사지를 받으러 갔으나, 나는 룸메이트와 왓보를 보러 호텔을 출발(17:30)했다. 왓보(Wat Bo)는 남방불교를 믿는 크메르 사원 건축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사원에 도착해 보니, 과연 18세기에 건설된 사원다웠다. 씨엠립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사원이라, 지붕이나 건물 모양이 오래된 모습이었다.

 

<"왓 보(사원)" 서쪽에서 본 대법당 건물 전경>

 

<"왓 보" 부속건물>

 

<"왓 보"의 탑들>

 

 대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캄보디아의 어느 사원과 마찬가지로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불상을 모시고 있었으나, 특이하게 안쪽 벽에는 사방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벽화는 붓다의 일대기와 힌두교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의 마지막 장인 랑카전투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또한 아편을 피우는 중국 상인과 압사라 춤을 감상하는 프랑스 군대를 포함해 주민의 일상생활상도 그려져 있었다.

 

<"왓 보" 남쪽에서 본 건물 전경>

 

<"왓 보" 동쪽 정문 입구 모습>

 

<"왓 보" 건물 외벽의 조각들>

 

<"왓 보" 대법당에 모신 불상>

 

<"왓 보" 대법당 내벽의 벽화 1>

 

<"왓 보" 대법당 내벽의 벽화 2>

 

<"왓 보" 대법당 내벽의 벽화 3>

 

<"왓 보" 대법당 내벽의 벽화 4>

 

<"왓 보" 대법당 내벽의 벽화 5>

 

 나는 벽화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으나, 스님이 불을 끄며 시간이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더 보고 싶은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원 옆은 스님들의 숙소가 있었고, 그 건물 옆으로 나무를 나가 모양으로 키운 것이 이채로웠다.

 

<살아 있는 나무로 나가 모양을 만든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