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만 4일을 자지만, 특별히 새벽에 갈 곳은 없었다. 오늘 오전은 자유시간이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 어디 갈 곳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오후부터 모래까지 넓게 생각해서 앙코르 유적을 보게 되므로 사전 지식을 얻을 겸, 6명이 앙코르국립박물관을 개관시간에 맞추어 찾아갔다(08:30). 박물관은 호텔 바로 앞에 있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앙코르국립박물관 간판>
이곳은 2007년에 개관한 현대식 시설의 박물관으로, 앙코르 유적과 관련된 1,3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모두 8개의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연면적은 2만 제곱m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 보고 머리에 기억해야만 했다.
우리는 입장권을 사고 한국어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를 2개 빌려서 2층으로 입장했다. 2층에 오르자 바로 영상실(브리핑 룸)이었다. 2층에는 브리핑 룸과 4개의 갤러리로 구성되었고, 1층에는 매표소와 4개의 갤러리 등이 있었다. 이곳 브리핑 룸에서 우리는 한국어로 된 영상물을 약 15분간 보고 옆방으로 갔다. 여기에 한국어 영상물이 있는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 많이 온다는 것을 느꼈다. 종합갤러리 입구에는 사자상과 불상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앙코르국립박물관 영상실 입구 모습 1>
<앙코르국립박물관 영상실 입구 모습 2>
“종합갤러리”는 캄보디아의 불교를 보여주는 방이었다. 불교는 고대 크메르 문명과 현대의 캄보디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특히 갤러리 내부에는 캄보디아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할 수 있는 유물을 포함한 1,000개의 불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갤러리 A”는 크메르제국의 기원에 대해 말해주는 방이었다. 크메르의 신비 중 하나는 크메르제국이 어떻게 건설되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구조물 중의 하나인 여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한 그들의 왕에 대한 크메르 사람들의 충성심과 함께 고대전쟁이 이러한 제국을 어떻게 파괴시켰는지를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갤러리 B”는 크메르의 종교와 신앙에 대한 방이었다. 어떤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면 우선 그 신앙 또는 믿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크메르제국에 있어 종교는 문학작품, 조각품, 건축양식과 일상생활양식 등 크메르 문명의 모든 측면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곳에는 전설뿐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앙코르 문명을 움직인 독특한 민간 설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갤러리 C"는 위대한 발명자들인 크메르제국의 대왕들에 대한 방이었다. 역사에 의하면 크메르제국을 세계 최고 문명으로 이끈 4명의 위대한 왕이 있었다. 그것은 2왕국을 통일시킨 자야바르만 2세(802~850), 앙코르에 수도를 건설한 아소바르만 1세(889~900), 앙코르 왓을 건립한 수리야바르만 2세(1112~1150), 앙코르 톰을 건립한 자야바르만 7세(1181~1218)였다.
1층의 “갤러리 D"는 지상의 천국 앙코르 왓을 설명하는 방이었다. 앙코르 왓은 지상천국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며, 모든 사람들이 경모하는 이 독특한 건축물은 아직까지 세계건축전문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 거대한 건물(도시)이 어떻게 건설되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고, 앙코르 왓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앙코르 톰이 있는 갤러리 E로 가는 길에는 오른쪽엔 악신인 아수라가, 왼쪽엔 선신인 데바의 두상이 늘어서 있었다.
<갤러리 D에서 갤러리 E로 가는 복도에 진열한 악신과 선신 모습>
“갤러리 E"는 정신의 판테온인 앙코르 톰을 설명하는 방이었다. 여러 시대를 거쳐 고급기술로 만들어진 건축물 명작들의 중심이며, 위대한 도시인 앙코르 톰을 알게 되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디자인 등을 통해 종교와 신앙에 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서민용 저수지 등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포함한 기반시설공사를 위한 고대 공학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갤러리 F"는 과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암석 스토리 방이었다. 앙코르 내부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위대한 세상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물이 되었다. 이러한 비문은 크메르제국의 생활과 신앙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박물관 내부에 보관된 비문은 캄보디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한국어, 일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갤러리 G"는 압사라(Apsara)의 매혹, 고대 복장을 전시하는 방이었다. 또 다른 볼 만한 문화예술 중의 하나는 고대 크메르인의 복장이다. 복장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착용한 아름다운 보석 및 다양한 액세서리도 당시의 사회적인 위치와 지위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크메르인들의 복장과 액세서리 등, 당시의 세련된 패션을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다른 사람을 기다렸으나 1명만 만났고, 나머지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박물관은 호텔과 가까우므로 문제없으리라 생각하고, 어쩔 수없이 둘이만 호텔로 돌아왔다(12:10). 일행은 점심을 먹고 똔레쌉의 한 곳인 메찌레이(Me chrey)로 향했다.
“똔레쌉(쌉호수)”은 캄보디아의 심장과 같은 곳이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계절에 따라 호수의 크기가 달라지는 곳이다. 내륙에 있는 호수는 똔레쌉강과 연결되고, 이강은 프놈펜을 거치면서 메콩(강)으로 연결되었다. 평상시에는 2,700제곱Km에 불과한 평범한 호수가 우기 때가되면 최대 16,000제곱Km까지 커진다고 한다. 이것은 메콩(강)으로 한꺼번에 흘러드는 물이 역류해 호수로 밀려들기 때문이란다.
호수의 깊이도 평상시는 1m에 불과하지만, 우기에는 9m까지 깊어진다고 한다. 호수 크기의 변화는 메콩(강)의 범람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적정량의 물을 공급해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고 했다. 이 호수는 캄보디아의 농업은 물론, 어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연간 잡히는 민물고기의 75%가 이 호수에서 나오며, 호수에 서식하는 200여종의 물고기 중의 하나인 “리엘”은 캄보디아의 화폐단위가 되었다.
이곳은 수상가옥과 마을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 때문에 씨엠립의 중요한 관광지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는 쫑크니어(Chong Khneas), 깜퐁 플룩(Kampong Phluk), 깜퐁 클레앙(Kampong Khleang) 및 메찌레이(MeChrey) 등 4곳의 마을이 있었다. 일행은 관광객이 가장 적게 가는 메찌레이로 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은근히 이곳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가는 길은 붉은색 흙이 있는 비포장도로였다.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와 농가에서 기르는 소, 돼지, 오리, 닭 등과 마을에 살고 있는 순박한 아낙들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사방이 터져있어 지붕과 나무의자만 하나 덜렁 있는 시골 이발소에는 나이 먹은 손님이 머리를 깎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나름대로 추억을 남겼다. 요새는 건기라 우기 때의 선착장이 있던 곳에서 강둑을 따라 멀리 내려가서야 버스주차장이 있었다.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1>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2>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3>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4>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5>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6>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7>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본 풍경 8>
<메찌레이 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며 지역 어린이와 함께>
배 1척에 일행 모두가 탔다. 임시선착장은 붉은 황토물이 흐르고 좁았으나, 선장은 용케도 배를 돌려 호수 쪽으로 내려갔다. 물이 깊지 않았으나 현지주민들은 이 좁은 하천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다. 어떤 이는 맨손으로 고기를 움켜서 둑으로 던져 올리는 광경도 보았다. 물이 적기 때문인지 배는 몇 번이나 강둑을 박았으나, 그 때마다 배를 잘 움직여 호수로 내려갔다.
<똔레쌉 선착장에서 맨 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
드디어 똔레쌉의 메찌레이 수상마을에 닿았다. “메찌레이”는 ‘끝없이 푸르른 지역’이라는 뜻과 같이, 호수와 하늘 및 식물들이 어우러져 주변이 온통 푸르렀다. 배를 타고 호수를 보는 동안, 막힘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광활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수상가옥도 다른 지역보다는 적다고 했으며, 관광객도 많지 않아 일행은 온전하게 호수를 즐길 수 있었다.
<메찌레이 똔레쌉 입구 풍경>
<메찌레이 수상가옥 풍경 1>
<메찌레이 수상가옥 풍경 2>
<메찌레이 수상가옥 풍경 3>
<메찌레이 수상가옥 풍경 4>
호수에는 특이하게도 수상학교가 있었으며, 학생들은 작은 배를 타고 통학했다. 수상가옥 중에는 너무나 작아서, 저기서 어떻게 식구들이 생활 하는지가 궁금했다. 호수에 배를 타고 다니면서 보니, 식구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이곳에서는 18세가 넘는 딸이 있으면 본채 옆에 작은 부속건물을 지어서 살게 한다고 했다. 호수에 부레옥잠이 많았으며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 곳곳에 처져있었다.
<똔레쌉 메찌레이 지역의 수상학교>
<노 젖는 배로 통학하는 학생들 1>
<노 젖는 배로 통학하는 학생들 2>
<노 젖는 배로 통학하는 학생들 3>
<노 젖는 배로 통학하는 학생들 4>
<똔레쌉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그물 1>
<똔레쌉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그물 2>
<똔레쌉 메찌레이의 수상가옥 모습>
<똔레쌉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가족들>
수상마을에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집은 작아도 TV안테나가 있었으며, 물건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수상마을에도 집의 크기나 정도를 보아서 잘 사는 집과 못사는 집이 구분되었다. 더 넓은 곳으로 나가자, 호수에 풀들이 자란 흔적이 있으며, 그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그물이 처져있었다. 호수는 끝없이 펼쳐졌고, 저녁노을은 구름 속에서도 불타고 있었다. 선상에서는 여행사에서 준비한 맥주와 망고 등 과일로 작은 선상파티가 이루어졌다.
<배에 사람이 살고 있는 수상가옥 모습>
<똔레쌉에 쳐 놓은 그물들>
<건기여서 똔레쌉의 물풀이 죽은 곳에 쳐 놓은 그물들>
수상마을 사람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검붉은 진흙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했다. 여기에는 화장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소 대변을 그대로 호수에 흘려보내리라. 물은 자연정화능력이 있다지만, 어쩐지 찝찝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수상에서 생활하며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도, 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광활한 호수인 똔레쌉 풍경>
<똔레쌉 풍경>
이젠 호수로 더 나가봐야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고 했다. 배로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때이기 때문인지, 밤에 물고기가 잘 걸리라고 그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마 그동안 걸린 물고기는 건져내리라. 이곳 수상가옥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용감한 가족”을 촬영한 두 집이 캄보디아 국기를 걸어놓았으며, 한글로 쓴 간판이 보였다.
<똔레쌉에서 그물을 돌아보는 어부들 모습>
<똔레쌉 메찌레이 수상가옥 옆에 있는 부레옥잠>
<똔레쌉 메찌레이의 석양>
<돌아오면서 본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일하는 여인>
<돌아오면서 본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물건을 파는 가게>
<돌아오면서 본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배로 물건을 파는 모습>
<돌아오면서 본 메찌레이의 수상가옥과 교통수단인 배>
<돌아오면서 본 똔레쌉 메찌레이의 수상가옥들>
<똔레쌉 메찌레이의 "용감한 가족" 촬영장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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