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번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앙코르 핵심유적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디어디를 보는가가 관심거리였다. 혼자라면 앙코르유적을 최하 3일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왔으며 일정을 이미 짜놓은 것이어서,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평소보다 20분 빨리 먹고, 툭툭이 1대에 2명씩 타고 호텔을 출발(07:30)했다. 호텔에서 북쪽으로 3Km를 가니, 앙코르 유적을 답사할 수 있는 통합입장권을 판매하는 매표소가 있었다. 일행이 호텔에서 일찍 출발했음에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통합입장권을 구매하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 매표소 앞 풍경 1>
<앙코르 유적 매표소 앞 풍경 2>
오늘의 안내자는 또 다른 사람이었으며, 젊은 한국인이었다. 일행은 줄을 서서 먼저 한 사람 씩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고정시켜놓았고, 찍힐 사람의 설 자리가 정해져 있어 속도가 빨랐다. 사진을 찍고 난 뒤, 일행은 한곳에 모여서서 입장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약15분정도 지나자, 조금 전에 찍은 사진이 붙은 개인별 입장권이 나왔다.
일행은 안내자를 따라 약 200m이상 갔음에도, 타고 온 툭툭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제일 앞에 없어서 뒤로 갔더니, 맨 뒤에 우리가 타고 온 툭툭이가 있었다. 룸메이트는 앞으로 우리가 일찍 올 것이니, 앞쪽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기사는 알아들었다고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행은 툭툭이를 타고 안내자를 따라 라테라이트 성벽을 지나 따 쁘롬의 고푸라가 있는 동문에서 내렸다. 일행은 매표소에서 약 3Km를 더 가서 동문 안으로 들어가 일행이 모두 오기를 기다렸다.
<따 쁘롬으로 가기 위해 툭툭이로 이동하는 일행>
<따 쁘롬의 라테라이트 성벽 모습 1>
<따 쁘롬의 라테라이트 성벽 모습 2>
<따 쁘롬 동문의 아름다운 문양과 부조들>
“따 쁘롬(Ta Prohm)”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설한 불교사원이다. 국왕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혈통이 더 좋았다. 그는 왕이 되자 어머니를 위해 이 사원을 짓고 나서, 아버지를 위해 “쁘레아 칸(Preah Khan)”이라는 불교사원을 건설했다.
국왕은 전왕의 장자가 아니라, 왕족이긴 했지만 지방 영주에 불과했다. 그러나 참파왕국과의 전쟁에 나가 싸워 승리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기존 왕족과 갈등이 있었다. 이에 기득권을 갖고 있는 왕족들과 힌두교 사제계급세력의 약화를 위한 목적과 절실하게 불교를 믿었던 집안의 영향으로 국교를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꿨다. 또한 신과 왕을 동일시하는 “데바라자”사상에서 붓다와 왕을 동일시하는 “붓다라자”사상으로 변경했다.
따 쁘롬은 사원구역과 거주구역을 합쳐 60ha에 이르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사원은 일반 신도들의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많이 필요했다. 사원에서 발굴된 석비에 의하면, 39개의 쁘라쌋(탑), 566개의 석조건물, 288개의 벽돌구조물, 260개의 불상과 석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사원에는 종교지도자, 관리인, 무희, 주민 등을 포함해 총12,640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이 사원은 직사각형의 라테라이트 성벽(가로 1,000m, 세로 600m)에 둘러싸여있으며, 동서에 출입문을 냈었다. 고푸라로 이루어진 출입문은 관음보살(아바로키테슈바라)을 4면상으로 조각해, 자야바르만 7세가 건설한 불교사원임을 세상에 알렸다.
일행이 모두 도착해서 동문에서 긴 참배로(350m)로를 지나가자, 따 쁘롬의 사원구역을 이루는 첫 번째 담(가로 200m, 세로 220m)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면 “무희의 전당”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인공연못을 만들어서 사원에 거주하던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무희의 전당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따 쁘롬 동문에서 사원구역으로 가는 길 풍경>
<따 쁘롬의 관광객 안내도>
<따 쁘롬의 부속건물>
<아직 복원하지 못하고 챙겨논 무너진 건물의 돌들>
<복원한 따 쁘롬의 부속건물과 벼락 맞은 나무의 새순>
<사원을 뒤덮은 스펑(나무)>
<건물 상인방에 만든 불상들 1>
<건물 상인방에 만든 불상들 2>
무희의 전당 뒤쪽은 사원의 핵심구역으로 3개의 담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중앙 성소를 보호했다. 중앙 성소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다. 3중으로 이루어진 회랑과 담벼락을 연속해서 만든 구조로 복잡했다. 하지만 라테라이트로 만든 담으로는 실크코튼나무(스펑)들이 뿌리를 내려 자연과 유적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적과 자연이 하나가 된 따 쁘롬 모습 1>
<유적과 자연이 하나가 된 따 쁘롬 모습 2>
<아직 완전 복원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따 쁘롬 모습>
중앙 성소 옆에 “공명의 집”이 있었다. 굴뚝같이 위는 구멍이 뻥 뚫려 하늘이 보였으며, 아래에는 향을 피우고 등잔불을 계속 켜놓고 있었다. 이곳은 전에 저음 종각이어서, 매일 여기에 사는 주민들에게 시간을 종소리로 알렸다고 한다. 저음의 종소리는 의외로 멀리 퍼져나간다. 나는 이곳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보통 목소리로 말했는데도 의외로 큰소리로 울려 퍼져, 이곳을 과학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곳에서 24시간 켜고 있는 등잔에는 벵골보리수(캄보디아에서는 “띠알”이라고 함)에서 나온 수액을 기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지만, 상처를 내면 낼수록 수액이 많이 나오며 불이 잘 붙는다고 한다.
<굴뚝 같이 위가 뻥 뚫린 저음 종각인 공명의 방 모습>
<공명의 방은 항상 향을 피우고 등잔불을 켜 놓고>
사원 외벽은 꽃문양과 기하학적인 패턴을 연속적으로 장식해 기존의 크메르 건축의 섬세한 부조기술을 계승시켰다. 벽면은 감실을 만들고, 데비타(여신), 압사라(무희), 드바라팔라(신전을 지키는 수문장)를 조각한 것은 힌두교 신전과 비슷했다. 하지만 출입문 기둥에는 불상을 연속해 조각했고, 상인방에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공양을 드리는 불교신자들의 모습을 조각해 불교사원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야바르만 7세 이후에는 크메르제국이 다시 힌두교로 복귀하면서 불상조각들을 제거했다고 한다. 끌과 정으로 부조를 파낸 흔적이 있는 것들은 원래 불상조각이 있던 자리란다.
<건물 기둥에 조각된 압사라>
<건물 외벽에 조각된 압사라>
<나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힌두교 신들의 부조>
<불상이 있었던 자리를 끌과 정으로 파낸 흔적>
이 사원은 회랑을 포함해 상당부분이 무너져 내렸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사원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유적을 감싸고 있어 신비함이 가득하고, 한 곳에는 나무줄기 사이로 웃고 있는 불상이 있어 신기한 느낌마저 주었다. 세월의 시간만큼 자란 거목들이 돌덩이를 밀어내며 사원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지만, 나무뿌리들은 구렁이 같이 사원의 담벼락을 타고 나가 사원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50m 이상 자란 거목들을 베어내면 사원자체가 붕괴되기 때문에, 오히려 나무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설치해 보호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유적과 자연이 만들어낸 기괴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앙코르 천년의 역사가 재현되는 듯하다. 이 덕분에 영화 “톰 레이더”의 촬영지가 되었다고 한다.
<유적과 자연이 하나된 곳을 배경으로>
<나무 줄기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불상>
<유적과 나무가 공존하는 모습>
<나무가 부러진 몸통 주위를 감싸고 있는 새순들>
<유적을 따라가는 스펑(나무) 뿌리>
<유적 여기 저기에 스펑은 뿌리를 내리고>
일행은 안내자를 따라 사원 남쪽으로 가서 조별로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서문으로 향했다. 서문 쪽은 동문 쪽보다 고푸라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먼저 나온 일행은 그곳에서 개미집과 벵골보리수 등을 보며 나름대로 추억을 남겼다. 일행이 모두 나오자, 안내자를 따라 다시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톰으로 향했다.
<따 쁘롬 남문쪽에서 조별(3조)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따 쁘롬에서 제일 보존 상태가 좋은 서문 고푸라 모습>
<따 쁘롬 서문 쪽에서 추억을 남기고>
<따 쁘롬 서문 쪽 성벽에서 추억을 남기고>
<따 쁘롬 서문 쪽에 있는 개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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