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캄보디아

앙코르 톰의 "바욘"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9. 12. 9. 19:04

 일행은 툭툭이로 따 쁘롬 서문을 출발해, 앙코르 톰의 동쪽인 승리의 문으로 들어갔다. 오는 길에 내려서 해자와 승리의 문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안내자로부터 어디까지 오라는 말을 들었는지 운전기사는 앞서 가는 일행만 쫒아갔다. 우리는 승리의 문을 통과해서 코끼리테라스 앞에서 멈춰서 일행을 기다렸다.

 

<앙코르 톰 첫 성벽 문에 있는 사면상 모습>

 

<앙코르 톰의 첫 성벽인 다테라이트 성벽(담) 모습>

 

<코끼리 테라스의 부조>

 

<코끼리 테라스의 심하(사자)상>

 

앙코르 톰(Angkor Thom)”은 자야바르만 7세가 건설한 크메르제국의 수도였다. 선왕이 참파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사망한 아픈 기억을 되살려, 외적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견고한 축성도시를 건설했다. 사방 3Km의 둘레에 8m 높이의 성벽을 쌓아 총면적은 900ha에 이르렀고, 120m 깊이 6m의 해자를 만들어 요새화 했다.

 

 앙코르 톰의 도성 내부는 격자형태로 114개 구역으로 구분했다. 구역과 구역은 수로에 의해 완벽하게 구분되었지만, 물길로 연결되었다. 도성 내부로 흘러들어온 물들은 성벽안의 연못에 저장했다가, 지하배수구를 통해 해자에 공급했다. 당시 앙코르 톰의 수로 시스템은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연못(바라이)과 수로는 메워지고, 목조건물은 없어졌으며, 돌로 만든 신전과 왕실 건물만이 남아있었다.

 

 앙코르 톰 내부에는 바욘을 비롯해서 자야바르만 7세가 건설한 불교사원과 기존의 국왕이 건설한 힌두사원이 혼재해 있었다. 역대 왕들이 건설한 힌두사원은 바푸온과 피미언아까가 있으며, 왕궁도 기존의 왕들이 지은 왕궁을 증축해서 자야바르만 7세가 궁전으로 사용했다.

 

 앙코르 톰은 동서남북에 성문을 하나씩 내고, 동쪽에 승리의 문을 추가해 총 5개의 성문(城門)이 있었다. 5개의 성문에서는 앙코르 톰 내부를 연결하는 30~40m의 직선도로가 있고, 도로 옆으로는 8m 폭의 수로를 만들었다. 당시 범죄자들은 발가락을 자르는 형벌을 내렸기 때문에, 발가락이 없는 사람들은 도성을 드나들 수 없었다고 한다.

 

 일행이 모두 모이자 안내자를 따라 바욘 북문으로 갔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복구와 관리상태가 좋은 바욘 남문에서 들어와 북문으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행은 따 쁘롬을 보고 오기 때문에 승리의 문을 통과해 북문으로 간 것이었다.

 

<앙코르 톰 바욘 북문에서 바라본 바욘 원경>

 

<앙코르 톰 바욘 북문에서 바라본 바욘 모습>

 

바욘(Bayon)”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불교사원을 건설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건설한 신전이자 왕실사원이었다. 즉 국왕의 권위를 신격화해 절대불변의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다. 바욘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 힌두교는 메루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앙코르 톰 남쪽 정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일행은 북문을 통과해 바욘을 바라보았다. 이 사원은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신비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탑 같기도 하고 사람 얼굴 같기도 한 건축물들이 연속해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니 완벽한 균형과 대칭에 의해 엄청난 규모의 돌들로 이루어진 4면상의 탑들임을 알 수 있었다.

 

<앙코르 톰 바욘 북문 쪽에서 바라본 바욘 근경>

 

 일행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후임 왕에 의해 다시 힌두교로 개종해서 만든 시바의 상징인 링가를 보고 불상을 긁어낸 모습도 보았다. 바깥벽은 높이 4.5m, 가로 156m, 세로 141m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고 했다. 지붕이 무너진 회랑을 이루던 석주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두 줄로 서있었다. 회랑은 동쪽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행은 안내자를 따라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3m 높이로 경사가 심했으나, 현재는 나무계단을 설치해 오르내리기 편하게 했다.

 

<바욘의 북문에서 주 사원으로 들어가며 본 복원한 듯한 링가 모습>

 

<앙코르 톰의 바욘 북문에서 들어가며 본 회랑 모습>

 

<바욘 북쪽 회랑의 방석에 앉은 불상 모습>

 

<바욘 북쪽 회랑에 끌과 정으로 불상을 제거한 흔적>

 

<바욘 북쪽 회랑에 있는 일종의 요니와 링가 모습>

 

 

3층에서 안내자는 일행에게 자유시간을 주어다. 중앙 성소에 해당하는 3층에는 4면상을 장식한 쁘라쌋()이 가득했다. 정중앙에 있는 것이 중앙 성소 탑인데, 특이하게도 직경25m크기의 원형 탑이었다. 지면부터 계산하면 무려 43m나 되는 것으로, 중앙 성소 탑은 스투파(불탑)를 형상화했으며 앉아있는 불상을 본존불로 모셨다.

 

 바욘을 장식한 4면상은 왕관을 쓰고 있어서 불상(관음보살)이라고 보기보다는 붓다라자를 상징하는 국왕(자야바르만 7)에 더 가깝다고 한다.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4면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보였다. 이 사원에 세운 4면상 탑은 현재 36개가 남아 있었다. 나는 혼자서 3층 여기저기를 다니며 4면상을 돌아보았는데,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좋다고 느껴지는 4면상을 앙코르의 미소로 여겼다.

 

<바욘 3층에 나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구조물>

 

<나가의 몸통으로 2층과 3층의 경계를 만든 담 모습>

 

<앙코르 톰의 미소인 바욘 사면상 모습 1>

 

<앙코르 톰의 미소인 바욘 사면상 모습 2>

 

<앙코르 톰의 미소인 바욘 사면상 모습 3>

 

<앙코르 톰의 미소인 바욘 사면상 모습 4>

 

<창문을 통해 본 앙코르 톰 바욘의 사면상>

 

<앙코르 톰 바욘의 사면상을 배경으로>

 

<앙코르 톰 바욘 중앙성소 3층에 모신 불상>

 

<앙코르 톰 바욘 3층 사면상이 있는 곳에 요니만 남은 모습>

 

 

 모일 시간이 되어 안내자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그는 일행을 1층 회랑으로 안내했다. 일행은 허겁지겁 그를 따라 1층 동쪽회랑 남쪽 섹션부터 보기 시작했다. 1층에 있는 제1회랑은 고푸라(탑문)를 사이에 두고 구분되기 때문에 총 8개 섹션으로 나누어졌으며, 1개의 섹션길이는 36m라고 한다. 1회랑은 왕족과 성직자 등만 드나들었던 제2회랑과 달리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벽화를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한다.

 

 동쪽 회랑 남쪽 섹션은 참파왕국과 전쟁하기 위해서 나가는 웅장한 군대의 행렬이 묘사되어 있었다.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군대는 말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기마병과 지휘관들이 선두에 서고, 그 옆에는 파라솔이 있어 그것의 숫자를 통해 지휘관의 계급이 구분되었다. 일반 보병들은 투구를 쓰지 않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고,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을 입고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중국군대도 크메르 군에 섞여 있는데, 그들은 웃옷을 입었고 상투를 튼 모양이었다.

 

<앙코르 톰 바욘의 동쪽 회랑 남쪽 쎅션의 웅장한 군대행렬>

 

<앙코르 톰 바욘의 동쪽 회랑 남쪽 쎅션의 크메르군인 중국인 군대 모습>

 

 

 군대행렬 뒤쪽에는 보급부대가 뒤따르는데, 그들 중에는 원숭이를 어깨에 태우고 수례를 미는 여자와 머리에 물건을 인 여자, 어린이를 안고 남편을 따라가는 여자 모습도 있었다. 또한 남편에게 몸보신용으로 자라를 슬쩍 건네는 여인, 물소를 제물로 받치는 모습, 냄비에 불을 지펴 요리하는 모습, 음식을 먹는 장면 등을 묘사한 것도 있었다.

 

<바욘의 동쪽 회랑 남쪽 쎅션의 원숭이를 목에 태우고 가는 여인 모습>

 

<바욘의 동쪽 회랑 남쪽 쎅션의 아기를 안고 창을 들고 가는 여인 모습>

 

<바욘의 동쪽 회랑 남쪽 쎅션의 남편에게 자라를 슬쩍 전하는 여인 모습>

 

<바욘의 동쪽 회랑 남쪽 쎅션의 물소를 제물로 바치는 모습>

 

  이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남쪽 회랑 동쪽 섹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크메르제국과 참파왕국의 군대가 전쟁하는 장면과 크메르국민들의 일상생활이 그려져 있었다. 벽화 위에는 배를 탄 크메르제국의 군대가 있고, 아래에는 참파왕국의 군대가 노를 젓는 장면이었다. 그 다음에는 치열한 전투 후에 물에 빠진 참파왕국의 군대가 악어에게 물리거나, 창에 맞아 죽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똔레쌉에서 배를 타고 참파왕국 병사들과 전투하는 장면>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위쪽은 크메르제국, 아래는 참파왕국 병사들 모습>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악어에게 물리거나 물에 빠져 죽는 참파왕국 병사들>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크메르제국과 참파왕국의 치열한 전투 장면 1>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크메르제국과 참파왕국의 치열한 전투 장면 2>

 

 

 다음에는 크메르인들의 개싸움 장면, 불을 지펴 꼬치구이를 굽거나 바비큐를 하는 등 요리하는 모습, 식사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었다. 일행은 회랑 관람을 마치고 남문으로 나왔다. 회랑은 아직 6개 섹션이 남았고 1층과 2층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안내자는 특별히 더 볼만 것이 없어, 이것으로 바욘 관광은 끝났다고 했다.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개 싸움 모습>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사냥과 수렵을 하는 모습>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닭 요리를 하고 야자수를 마시는 모습>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음식을 먹는 모습>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불을 지펴 바베큐를 하는 모습>

 

<남쪽 회랑 동쪽 쎅션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

 

<앙코르 톰 바욘을 돌아보고 남문으로 나오는 계단을 내려오는 일행 모습>

 

<앙코르 톰 바욘 사원 구역인 남쪽에서 바라 본 모습>

 

 일행은 대부분 안내자를 따라 호텔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쉬다가 오후 230분에 앙코르 왓을 보러 온다고 했다. 하지만 룸메이트를 비롯한 몇 명은 앙코르 톰을 더 둘러보고, 조용한 시간일 때 미리 앙코르 왓의 3층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