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술관/브레라 미술관

밀라노 틴토레토, 베로네제,로렌조 로토 등

boriburuuu 2020. 5. 31. 18:14

줄리오 캄피 데이트 의 <알렉산드리아의 성 캐서린, 성 프란시스, 피에트로 마티 르 스탬 파와 함께하는 마돈나와 예수> 다. 1530 년.  이것은 중요한 후원자 인 프란체스코 II 스포르차의 비서 및 찰스 5 세 황제의 궁정에서 중요한 인물과 관련된 또 다른 젊은 작품이다. 이것이 라파엘이  마돈나의 명백한 반향과 함께 고의적으로 현대화되기 시작한 이유 일 수 있다. 커튼 너머로 나타나는 성모의 모티브로 피아센차의 산 시스토를 위해 그렸다. 작가의 밝은 색감은 파로동에서 영감을 받아 관찰자를 눈부시게하는 캐서린의 튜닉의 밝기를 포착하는 거장의 기술을 보여준다.

안토니오 캄피의 <성모자>다.

성흔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이다.

까밀 보카치노의 <비너스와 큐피트>다.

시몬 피터자노의 <두 사티로스와 함께 비너스와 큐피드가 있는 풍경>이다.   1570-3년. 티치아노의 작업장에서 교육을 받고 1582 년부터 밀라노에서 일한 피터자노는 카라바조의 마스터였다. 강렬하고 채도가 높은 색으로 빛나는 이 희귀한 세속적 그림에서 우리는 피터자노의 특정 특징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깊은 풍경과 초원의 개별 풀잎에 대한 그의 정확한 자연주의 묘사뿐만 아니라 여신의 자세로 드러난 정교한 고전적 묘사는 잠자는 아리아드네를 묘사한 유명한 고전 조각을 반영한다.

 

피라리가 그린 <성 카타리나의 순교>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4세기경)는 10세기경부터 동방 교회에서 높이 공경을 받아오던 성인 중의 한 명이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성녀는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으로 왕실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미모가 빼어났으며, 높은 교육을 받았고 지식을 쌓는 데 매우 열성적이었다. 성녀는 소녀 시절에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기로 했고, 예수님과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이 평생을 순결한 여인으로 살기를 다짐했다. 그러다가 성녀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악명 높은 로마제국 막센티우스 황제와 대항하게 되었다. 황제는 젊고 아름답고 교양 있는 성녀에게 청혼하면서, 이교도의 신을 섬기라고 강요했으나,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마음먹은 성녀는 황제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이에 황제는 위대한 철학자 50여 명을 불러 성녀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심을 바꾸도록 설득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성녀는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여 오히려 이방인 철학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다. 이 일로 크게 분노한 황제는 개종한 철학자들을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했고, 성녀는 굶어 죽도록 감옥에 투옥되었다. 12일 동안 독방에 갇힌 성녀에게 비둘기가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황제는 큰 못을 박은 바퀴로 성녀를 고문하고 사형시키고자 했지만, 성녀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구경꾼 여러 명이 그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성녀의 굳은 신앙심과 인내심은 수많은 군인들을 경악케 하고, 그중에서 2백여 명이 개종하였다. 결국 성녀를 참수형에 처했는데, 참수된 목에서는 피가 아닌 우유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성녀의 시신은 시나이산으로 옮겨졌고 그곳에 정교회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이 수도원은 지금도 유명한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이다.
성녀 카타리나는 작품 속에서 주로 머리에 왕족임을 나타내는 왕관을 쓰고 한 손에는 승리 또는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녀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에게 가해질 고문 도구인 못 박힌 바퀴나 목을 벴던 칼이다. 그리고 책과 다른 기술 도구들은 성녀의 지혜와 교육을 의미하기에 성녀는 지혜와 교육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또한 성녀는 예수님의 영적 아내로서 성혼을 상징하는 반지를 끼고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세례 후 그녀의 꿈에 그리스도께서 찾아와 성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는 내용에 기인한다.

안토니오 카노바의 <평화의 중재자 군신 마르스로 분한 나폴레옹 조각상. 1809>이다.

파리스 보르동의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다. 1548년.  보든이 밀라노에서 작업하는 동안 그린이 그림은 서정적인  배경으로 가장 높은 예술적 작품이다. 예수의 기념비적 누드 몸매의 묘사는 로렌조 로또의 피에타에 묘사된 창백하고 생명이 없는 그리스도의 몸 과 비슷해 보인다.

틴토레토의 <성 헬렌, 성 바르바라, 성 앤드류와 다른 성인들과 십자가와 함께 있는 모습>이다. 1560년. 한때 현재 파괴 된 산타 크로체 교회를 장식한 이 제단은 브레라에 들어간 최초의 작품 중 하나였다. 우리는 밀라노가 롬바르드 수도와의 관계가 기껏해야 미약한 베네치아 화가의 작품을 주최하게 된 이유 또는 실제로 제단의 오른쪽에 묘사 된 후원자가 누구 였는지 알 수 없다. 다소 전통적인 구성은 주로 후원자와 익명의 수호 성인에 대한 세심하고 인간적인 묘사로 주목할 만하다.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1562년. 베네치아에서 그의 최후의 만찬을 보고 사진을 찍었었는데 잃어버려 마음이 아프다. 정말 훌륭했는데. 맞은편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가 그려져 있었고. 베니스의 산 마르코 회당에 걸려 있던 작품으로 성 마르코 일생 연작 중 하나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당 묘지에서 마르코의 유해를 찾기 위해 석관을 뒤지다 유해를 발견하자 성 마르코가 나타나 자신의 유해라고 알려주는 장면이다. 중앙의 두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틴토레토의 후원자이자 그림을 주문한 토마소 랑고네다. 이 그림은 베네치아 인들이 산 마르코의 시신을 찾기 위해 무덤에서 시체를 제거 하느라 바쁘게 지내면서 성도에게 나타나서 그의 시신이 이미 무덤에서 제거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멸망 시키라고 명령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방과 그들의 발에 누워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에 악마가 소유 한 남자의 존재는 에피소드의 기적적인 어조를 더해 주며, 그의 계급에 걸 맞는 옷차림을 입은 후원자 랑 곤이 관찰하고 있다. 숙련 된 내레이터 인 작가는 기적을 마치 무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묘사하며 그의“배우들”이 연극적이고 강렬한 포즈를 취하도록 강요한다. 관찰자 또는이 경우 관중은 아케이드에서 빛의 재생으로 강조된 그림의 공간적 깊이에 큰 가속도를주는 어지러운 단축법에 의해 행동의 중심으로 끌린다. 어둠은 빛의 섬광으로 나뉘어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를 강조하고 인물의 양을 강조하고 부자연스럽고 유령처럼 창백한 시체를 증폭시킨다

틴토레토의 <젊은 남자의 초상>이다. 1565년. 이 그림은 체크 무늬로 된 속성의 역사와 함께 1565 년 비엔나의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한 노인과 소년의 초상와의 비교 덕분에 날짜를 알 수 있다. 두 작품은 매우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청년의 얼굴을 유사한 모델로 공유했다. 옷차림은 귀족적이며 자부심이 강하고 거만하며 분리 된 자세는 티치아노가 발명 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16 세기 베네치아 초상화에 많이 채택되었다.

파올로 베로네제의 <시몬 집에서의 저녁식사.1570>이다. 거대한 그림의 완쪽에 예수가 그려져 있는데 베로네제는 관람객의 시선이 중앙이 아니라 한쪽이 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아래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가 든 항아리를 깨뜨렸다고 마태복음은 적고 있다. 또한 긴 금발로 예수의 발을 닦기 위해 엎드려 있다. 이 그림에서의 인물들은 당대의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전통적인 의복을 입고 있는 사도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졌다. 오른쪽에서 일어서는 사람은 돈주머니를 관리하고 있는 가롯 유다로 보인다. 화가가 실제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있는 것은 그날의 삶이다. .

파올로 베로네제의 <최후의 만찬>이다. 1580년.  이 방에는 16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주요 인물들이 전시되어 있다.이 도시는 교회와 팔라치가 수많은 훌륭한 걸작으로 장식되었을 때 도시의 미술사에서 가장 영감을 받은 시기 중 하나다.  최후의 만찬에서 의도적으로 비대칭적인 구성이 그리스도를 곁눈질하고, 비정상적으로 어두운 색상 표와 일상적인 설정이 깊은 화음을 울려 관찰자를 장면으로 몰아 넣었다.

 티치아노의 <성 제로니무스>다.  1550년.  유독 캐톨릭의 그림을 보면 스데반이나 제로니무스 등 순교자에 대한 그림이 많다.   놀랍도록 자유로운 스타일로 그려진 이 걸작에서 자연은 참회하는 성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과 온순하게 잠자는 사자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요소가 성 제롬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었다. 도마뱀은 유혹을 암시한다. 며칠 동안 껍데기에 음식없이 갈 수있는 달팽이는 그의 동굴에 있는 은둔자와 비슷하다. 담쟁이는 십자가의 숲을 암시한다. 그리고 두개골과 모래 시계는 시간의 흐름과 죽음의 흐름을 상기시켜준다.

티치아노의 <안토니오 포르치아백작의 초상화>이다.     1535 ~ 40년.  창문 선반에 서명된 이 그림은 프리울리의 고귀한 안토니오 디 포르시아를 묘사한다. 그것은 초상화 예술가로서 Titian의 성숙한 단계에 속하며, 그가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이상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그의 시터의 사회적 지위 (기사의 옷깃, 검, 검은 옷차림)를 강조한 단계이다. 창문은 강과 산이있는 풍경으로 보여준다. 그는 초기 초상화에서 채택한 구성 공식이다.

로렌조 로토의 성모 마리아의 승천이다. 1512년. 이 그림은 방 VI의 비바리니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에서와 같이, 우리는 성모님에게 허리띠를 남겨달라고 요청하는 마지막 도착한 의심많은 사도인 성 토마스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로또의 모든 유머와 사실성을 볼 수 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정말로 하늘로 올라 갔는지보기 위해 안경을 쓴 성도를 보인다. 이 제단 조각은 로또가 이미 로마에서 일하고 바티칸에서 그림을 그리고 라파엘을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렌조 로토의 <피에타>다. 1545년. 어두운 배경을 배경으로 한 피라미드 구성은 장면의 비극적 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마리아에게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 인류의 공동 구제자로서 그녀의 역할을 강조하는 플랑드르 전통을 반영한다. 그 역할은 또한 땅에 쓰러진 그리스도의 팔과 기절하여 성 요한의 지지를 받고있는 그의 어머니의 팔의 흔들리는 사이의 상관 관계에서도 강조된다. 강렬한 표정, 대조되는 색채, 변화하는 chiaroscuro가 함께 모여 죽음에 대한 슬픈 명상을 만들어낸다.

로렌조 로토의 <라우라 다 폴라의 초상>이다. 브레라에 있는 로렌조 로또의 네 가지 초상화 중, 로라 다 폴라와 그녀의 남편 인 페보 다 브레시아와 리 베랄 레 다 피네 델을 대표하는 인물은 카스텔란하라 크 백작의 토리노 컬렉션에서 나온 것이다. 이 초상화는 로토의 가장 높은 업적 중 하나로 간주된다. 후자는 트레비소에서 가장 저명한 인물 중 한 사람의 아내가 제시된다. 그녀의 침실에있는 가구에 기대어 겸손한 태도로. 설정의 비공식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세련된 드레스를 입고 골드 체인과 귀중한 반지가 달린 깃털 팬과 같은 고급 물건으로 장식하고 있다.이 요소는 동시대 사람들이 그녀를 도시의 일원으로 즉시 인식 할 수있게 해준다. 가장 높은 순위의 가족. 미혼 소녀가 공개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상화는 로라의 기혼 여성으로서의 지위와 그녀가 계약 한 좋은 결혼 덕분에 달성 한 지위를 축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로렌조 로토의 <페보 다 브레시아의 초상>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가 그의 우아한 옷으로 강조되는 트레비소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인 모델의 초상화는 위에 있는 아내와 비교하여 약간 더 낮은 높이와 그의 머리가 액자에 훨씬 더 가깝다는 사실은 캔버스의 윗부분이 잘린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