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술관/브레라 미술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boriburuuu 2020. 5. 31. 17:54

브레라 미술관에 도착했다. 빨간 벽돌의 평범해 보이는 모습인데 예수회 수도원에서 만든 교육시설이었고 국유화 된 후 미술학교가 자리했고 지금은 미술학교 건물 2층에 소장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바로크와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롬바르디아 화파와 베네치아 화파들의 그림을 중심으로 15세기 르네상스에서 19세기 까지의 회화가 전시되고 있었다. 우피치, 바티칸과 함께 이탈리아 3대 미술관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단다.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에 동상이 서 있는데 이 미술관이 있게 크게 기여한 나폴레옹의 동상이다.  안토니오 카노바가 만든 작품으로 평화의 중재자 군신 마르스로 분한 청동 조각상으로 1809년에 만들어진 복제본이다. 1805년 당시 이탈리아의 왕이었던 그는 문화 정잭의 일환으로 미술품을 전시했었다.

 

 

 

 

 

마리노 마리니의 <미라클(말과 기수)>다. 1959-1960년. 

<두 천사와 성도 전설의 여섯 이야기가 있는 세인트 베라누스 >다.  마에스트로 디 산 베라노.  13 세기 후반

13 세기 3/4의 토스카나 장인이 그린 이 패널 페인팅은 6 세기 비숍이 그의 생애에서 6 회 에피소드로 둘러싸여 있으며 여전히 비잔틴 전통이 강하게 표시되어있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성도의 왼쪽과 오른쪽의 장면은 그의 삶, 그에 따른 기적, 그의 몸 앞에서 천사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지오반니 다 밀라노의 <숭배 가운데 천사들과 함께 즉위하신 그리스도>다. 1360년 경. 지오반니 다 밀라노는 14 세기에 가장 중요한 롬바르드 화가이며 14 세기 후반에 피렌체에서 활동 한 가장 중요한 화가다. 그는 원래 꼬모호수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왔고, 먼저 밀라노로 이주한 다음 피렌체로 이주하여 산타 크로체 대성당과 현재 Galleria dell’Accademia에있는 특별한 피에타의 성지에 리누치니 예배당을 그렸다. 브레라 패널은 1360 년경 알려지지 않은 교회를위한 제단의 중심으로 그려졌다.

<채찍질> 루카 시노렐리.  1482-5년.  이 그림은 1811 년 나폴레옹 폐지 이후 이미 분리 된 브레라에 도착한 파브리 아노의 산타 마리아 델 메르 카토에서 라코 만 다티의 회합을 위해 실행 된 행렬 표준의 양면 중 하나이다. 아이콘 선택은 고객의 정확한 지시를 반영한다. 마돈나 델 라떼 (마돈나 델 라떼)의 이미지, 즉 아이를 돌보는 처녀를 대신하여 자선 활동을 수행했으며 공공 장소에서 채찍질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참회를 수행했다. 시뇨렐리는 원근법 규칙에 따라 구성된 공간에 편모를 설정하고 기둥이 제공하는 대칭 지지점 주위에 배치되고 화려한 고전 건축 작품으로 뒤를 둘러싸고 있다.

 몬타냐의 <시에나의 성 프란시스와 성 베르나르디노 사이에 있는 마돈나와 아기 예수 >다. 1490년.  이 그림은 비첸자의 산 비아지오 교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성 베르나르디노로 건축 틀 안에 마돈나와 어린이를 그리고 좌우에는 두 명의 성인을 배치한다. 서 베르나르디노와 성 프란시스다.  15세기의 이탈리아 그림에서 자주 그려지던 방법이다. 묘사는 거의 항상 1450년의 그의 카논 화 또는 1444년의 그의 죽음을 따른다. 성 프란치스코의 현대 초상화는 없지만 성 베르나르디노의 죽음의 가면은 보관되어 있다.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1460>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마리아, 예수, 성 요한이 그려져 있는데 성 요한의 표정이 특히 극적이다. 망연자실하다고나 할까? 뒷배경의 회색 하늘은 예수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림 아래 서명에는 "부어 오른 눈에서 비애가 솟구칠 때 요하네스 벨리니의 그림도 눈물 흘리리"리고 적혀 있다고 한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스승이기도 했고 죽은 예수를 그린 만테냐의 매제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 야코포 벨리니, 형 젠틸리와 함께 베네치아 화파의 중심 인물이었단다.

안드레아 만테냐가 1485년 그린 <체루빔의 마돈나>로 작은 작품이다. 베네치아의 성 마리아 마지오레 수도원에 있던 작품이라고 한다. 루이지 카베나기의 복원으로 만테냐의 손을 알아볼 수 있었던 1885년까지 조반니 벨리니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패널은 아마도 화가가 그의 친구인 수도원 마테오 보소에게 준 것일 것이다. 나폴레옹의 폐지에 따라 1808년 산타 마리아 마그지오레 베네치아 교회에서 브레라에 왔다. 앞서 언급한 벨리니의 귀인은 유별나게 생생한 색채와 성모의 표현이 매우 부드러워 설명된다. 만테냐는 이 작품을 그렸을 때 이미 늙어가고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날개 색깔로 구별되는 체루빔과 세라핌을 모두 보여준다. 

드디어 만테냐의 <죽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1483년.  언뜻 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이 그림은 인체에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그림으로 원근의 효과로 인해 사실감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발끝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인데 발과 못 자국과 얇은 천의 질감 등 세베로성당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 못지 않게 정교해서 놀라웠다. 그림의 외쪽에 마리아와 요한,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은 고대 비극의 가면처럼 주름이 깊게 패여 있는 슬픈 모습이다. 가장자리에 향유병이 놓여 있고 바닥은 도유석이라고 알려져 있는 대리석판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모습이 완벽한 신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모습인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이다.

 

<사막의 성 제롬>이다. 몬타냐. 1500년 경. 여기에서 성자는 그의 동굴에 있고, 우리는 그의 빨간 모자를 전경에서 볼 수 있다. 추기경이었다. 그는 보통 사자 옆에 있으며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닥 근처에는 호수가 있으며 그 위에 수도사들이 교회를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있는 아름다운 계단이 있다. 그림 그룹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물을 풍경에 담는 것이다.

<십자가형>미카엘 다 베로나.  1501년.  나폴레옹 홀은 베네토와 롬바르디아의 15 세기 및 16 세기 대형 그림을 전시한다. 베네치아의 환경 조건은 대형 캔버스가 프레스코화보다 선호되는 정도 였고, 이는 결국 다른 곳으로 퍼지는 추세를 민들었다. 베로나에 있는 성 조지의 수도사 식당에 걸려있는 십자가 형은 후원자의 문장이있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무대 위에 설정되어 있다. 배경은 예루살렘이 아닌 베로나 주변의 언덕을 묘사한다.

젠틸레 벨리니, 조반니 벨리니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고 있는 성 마르코. 1504-7>이다. 이 그림은 베니스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옆에 있는 산 마르코 대신도 회당의 응접실에 걸어놓기 위해 그린 것이다. 왼쪽의 수도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주문한 베니스 평신도 형제회 회원들이다.

이 성모자상은 흑인으로 그려져 있어 독특했다. 베르나르디노 부티노네의 <성모자상>이다. 1480년.

<마돈나와 어린 양을 가진 아이 > 레오나르도 데스크 화가 (Fernando Yañez 또는 Fernando Llanos)  1502.  레오나르도는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에게도 매료 된 인물이었다. 그는 비슷한 스타일을 공유하는 야네즈 또는 리아노스 등과 작업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희생을 상징하는 어린 양을 안고있는 성모와 그리스도의 아이 때 모습이 레오나르도의 고양이 마돈나에 대한 연구를 반영하는이 작품을 그렸다. 자세히 보면 고양이가 양의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젊은 남자의 초상>이다. 지오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 1491년.  볼트라치오는 1490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인본주의자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볼트리피오는 초상화로 유명해졌고, 보모의 심리학을 포착하여 주인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발전 시켰다. 이것은 그의 첫 번째 초상화 중 하나다. 시터의 얼굴은 회색 그림자로 표시되고 빛은 기술로 처리됩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라틴 철학자 세네카의 대화에서 가져온“VITA SI SCIAS / VTI / LONGA EST”(사용 방법을 알고 있으면 수명이 길다)라는 모토가 있다.

<성도 요한 침례 자 및 성 요한 복음 전도자와 함께하는 마돈나와 아기 예수> 빈센조 포파 . 1485년.  프레스코화는 원래 문 위에 높게 세워졌다. 양쪽에 메달리온이 있고 금고 실이있는 고전적 사례에서 영감을 받은 기념비적인 아치는 아래에서 축소되어 장면의 환상을 강조한다. 성모 마리아는 발코니에서 열린 하늘을 바라보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람에 흩 날리는 융단, 튀어 나온 예수의 발, 원근감 있는 금고 등은 모두 살아있는 존재감에 기여한다.

<동방박사의 경배>다. 지오반니 아고스티노 다 로디. 1515년. 이 패널은 두 명의 예술가가 그렸다. 지오반니는 풍경과 거의 모든 인물을 그렸고 Marco d’ Oggiono는 처녀의 얼굴과 예수를 그렸다. 그들이 속한 폴립은 16 세기 초 밀라노의 가장 중요한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 인 산타 마리아 sdella Pace의 (개혁 된 프란치스칸) 아마 데인 교회에 걸려있었다.

가우덴치오 페라리의 <마리아의 탄생>이다. 깃 태어난 마리아와 그녀의 어머니 안나, 모녀를 도와주는 다양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분만실에서 일어나는 산파, 친구, 이웃들의 활동을 매혹적이고 실제적으로 묘사하며 거의 유일하게 여성으로만 구성된 장면이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성모자>다. 1500년경. 루이니의이 젊은 시절의걸작은 1826년  루이니가 작업하고 있던 Certosa di Pavia에서 유래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출처도 이전 수집 역사도 알려져 있지 않다. 16 세기의 첫 10 년. 패널은 예를 들어 배경에서 식물과 꽃에 대한 그의 세심한 묘사를 담당하는 롬바르드 후기 고딕 전통과 함께 Varese의 예술가가 유지 한 링크의 강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루이니는 성모의 얼굴 특징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Madonna와 Child에 대한 연구에 비유 한 어린 예수의 포즈에서도 Leonardo da Vinci의 스타일을 계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피와 어머니의 슬픔을 암시하는 색깔의 기둥을 움켜 잡고 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젊은 여인의 초상>이다. 163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