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Jogjakarta, 줄여서 족자)는 중부자바의 고도로서 고대 자바문명의 요람이자 자바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족자는 16~18세기 마따람 왕국의 수도였으며 자바 전통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온 곳이다. 고대 불교왕국과 힌두교왕국들이 족자를 중심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또한 국립 가자마다대학, 이슬람대학, 조형미술전문대학을 포함해 고등교육기관이 160여개 밀집해 있고 전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로 북적이는 젊음의 도시이다. 반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는 공화국의 임시수도였다. 따라서 족자는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교육의 도시, 혁명의 도시로 불린다.
족자 시내에 있는 문화유적과 재래시장 등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먼저 구시가지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술탄 왕궁 끄라똔(Kraton)을 찾았다(09:00). 오후 1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오전 중에 왕궁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이 건물은 1755년 하멩꾸부워노(Hamengkubuwono) 1세가 건립하였는데 호화롭고 장엄한 맛은 없지만 단층으로 아담하고 우아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이슬람왕국의 술탄들이 사용한 왕궁으로 현재는 족자의 주시사인 하멩꾸부워노 10세와 가족이 살고 있었다.
<끄라똔(왕궁)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끄라똔에 진열된 가구와 악기들>
<끄라똔의 한 건물 앞에 대포가 있는 풍경>
<끄라똔의 문양>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끄라똔 건물들>
<끄라똔의 건물>
<끄라똔의 풍경 1>
<끄라똔의 풍경 2>
이곳의 가장 멋있는 건축물은 중앙 안뜰에 있는 프로보옉소로 누각양식에 금을 입힌 것이었다. 대부분의 누각처럼 벽과 창문이 없는 우아한 나무 조각으로 장식되었으며 왕실의 손님에게 무희가 춤을 추게 하는 등 연회를 베푼 곳이었다. 일반인인 관광객에게도 왕궁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이든 파수꾼들이 이곳 전통의상을 입고 허리춤에 끄리스(물결 모양의 단도)를 찬 채 한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끄라돈에서 제일 아름다운 프로보옉소 누각>
<끄라돈의 나이든 파수꾼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쉬고 있는 모습>
<끄라돈 관리원 및 경비원모습>
끄라똔에서는 회교도들의 가장 중요한 3대 축제가 개최된다고 했으나 기간이 아니라 볼 수가 없었다. 박물관에는 역대 술탄이 사용했던 가구와 식기류, 왕족의 사진, 초상화, 각종 의류, 끄리스, 시계 등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왕실에 초대되어 온 유럽 손님들이 가지고 온 고유 장식품들도 있었다. 현지인 관광객도 많아 그들과 함께 왕궁을 돌아보았다.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1>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2>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3>
<박물관 천장과 전등의 아름다운 모습>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4>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5>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6>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7>
<끄라똔 박물관의 진열품 8>
왕궁 방문을 마치고 남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는 따만 사리를 찾았다. 따만 사리(Taman Sari)는 하멩꾸부워노 1세가 1758년 건립한 별궁으로 “꽃의 정원”이란 뜻이란다. 왕족의 쉼터와 아름다운 공원으로 건립하였으나 1867년 지진으로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고 했다. 출입구로 사용하는 동쪽 현관문은 예전의 후문이었다. 왕비와 후궁들이 사용하던 목욕탕이 있어 “물의 궁전”이란 별칭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따만 사리(물의 궁전) 풍경>
<따만 사리 뒷쪽 모습>
<따만 사리 뒷쪽의 먹음직스르러운 람부탄>
술탄이 목욕탕 건물 위에서 탕을 내려다보며 그날 밤 함께 지낼 여인을 간택했다고 한다. 지하에는 술탄이 기도하던 장소와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피신하는 비밀 통로도 있었다. 일행 중에서도 행동이 빠른 사람은 술탄이 여인을 간택하던 건물에 올라가 술탄의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이곳에도 현지인 관광객이 많아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목욕탕 옆 건물에는 장인들이 장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바틱을 손으로 그리기도 했다.
<술탄이 그날 밤 함께 지낼 여자를 간택한 건물 3층 모습>
<술탄이 여자를 간택했던 3층에서 내려다 본 따만 사리>
<세공과 바틱을 그리는 장인들>
따만 사리에서 밖으로 나오는 문은 들어간 곳으로는 나올 수 없게 하고 남쪽에 따로 있었다. 문을 나서자 주변은 상당히 고풍스러웠다. 성벽을 따라 구불구불 나있는 좁은 골목길, 바틱 갤러리, 새 시장, 오밀조밀한 작은 집들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 옆에 전시한 바틱제품들>
<따만 사리 뒷골목 풍경>
<따만 사리 뒷골목의 두레박이 있는 풍경>
골목이 거의 끝나는 곳에 지하 이슬람사원이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 들어가는 입구가 어두웠으나 계단을 내려간 뒤론 평탄해서 넘어질 우려는 없었다. 지금은 사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관광 상품으로만 활용하는 것 같았다. 별로 크지는 않았으나 아담했으며 2층 창문에서 현지 젊은이들이 일행을 열심히 사진 찍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지하 이슬람사원 창에 앉아 일행을 찍는 현지 젊은이들>
<지하 이슬람사원으로 가는 통로>
왕궁과 따만 사리 방문을 마치고 시내 중심가인 말리오보로 거리(Ji Malioboro)로 갔다(11:20). 입구부근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걸어서 말리오보로 거리에 있는 백화점 앞에 모였다. 이 거리에서 자유롭게 쇼핑을 하며 구경하다가 점심을 해결하고 14시까지 버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거리는 족자의 번화가로 뚜구Tugu)기차역 입구에서 끄라똔으로 향하는 2Km의 거리를 말했다. 도로변에 호텔, 은행, 쇼핑몰, 가게, 노점상, 마차,오토바이 등이 늘어서 있었고 쇼핑객들과 이국 관광객으로 붐볐다. 백화점에서 도로를 건너자 바틱(천에 이곳의 독특한 문양을 새긴 의류)가게들이 줄지어 있어 관광객의 눈을 끌었다.
<말리오보르 거리 풍경 1>
<말리오보르 거리 풍경 2>
<말리오보르 거리 풍경 3>
우리도 거리를 걸으면서 문양이 예쁘거나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만져보기도 하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기도 했다. 거리 중간쯤에는 이곳 특산물인 목공예가게가 있었다. 나는 어느 나라를 여행가도 목조나 석조로 된 그곳 특산물을 하나씩 사다가 아들딸에게 하나씩 주었다. 이 가게에는 크고 다양한 물건이 있어 한참동안 이것저것 만져보며 골랐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대로 나왔다. 이곳에서는 흥정을 잘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흥정하는 것보다 정찰제(正札制)를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브링하르조 재래시장에 거의 왔을 때 벌써 12시30분이었다. 되돌아가면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하고 도로를 건너 음식을 파는 노점을 눈여겨봤으나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다보니 백화점이었다. 이곳에는 다양한 음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 1층과 2층의 음식점을 돌아보았다.
일행은 말리오보로 거리를 출발해서 은 가공공장을 찾았다(14:45). 인도에 갔을 때에도 많이 다녔던 곳과 비슷했으나 좀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는 장인들이 앉아 일행에게 보이기 위해 은을 가공하는 연출을 하는 것 같았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모양의 각종 제품들이 주인을 찾고 있었다. 일행 대부분이 아이쇼핑으로 끝내고 오히려 건너편에 있는 의류가게에서 옷을 사가지고 나왔다.
<은 가공공장 입구>
<은 가공공장 내부 가계 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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