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2013.01.07-24)

보로부두르 사원 등 관광

boriburuuu 2016. 3. 7. 00:28

이곳은 적도부근이고 우기여서 매일 소나기가 내리며 흐린 날이 많았다. 또한 이슬람교도가 많아 매일 아침 4시면 기도소리가 잠을 깨웠다. 게다가 새벽에 닭 울음 소리도 거들었다.

 

 5시에 일어나 일정을 검토해보니 오늘이 무척 바쁜 날이다. 보로부두르 사원, 므라삐 화산박물관 및 전망대, 쁘람바난 사원, 저녁식사 및 라마야나 공연 관람이었다. 아침을 일찍 먹고 숙소를 출발(06:45)해서 1시간 25분 만에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은 족자에서 북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곳이지만 시내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가는 길 풍경 2>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가는 길 풍경 3>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가는 길 풍경 4>

 



  보로부두르 사원(Candi Borobudur)은 세계 최대 불교사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었다. 보로부두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산 위의 절”이란 뜻이며 현지인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사원의 높이는 약31.5m, 기단 위에 정방형으로 5층, 원형으로 3층을 쌓고, 꼭대기에 커다란 종(鐘)모양의 탑을 얹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단까지 모두 10층으로 되어 있으며 등신불 504개가 있으나 불상의 35% 정도는 두상이 없는 것이었다.

 

<보로부두르 사원 입구의 정원 풍경 1>

 

<보로부두르 사원 입구의 정원 풍경 2>

 

<입구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1>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2>

 

<보로부두르 사원 조감도>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3>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4>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5>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6>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7>

 

  <가까이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사원 모습 8>

 



 기단부터 6층까지는 283개 계단을 올라야 했으며 욕망과 속세를 상징했다. 관광객이 오를 수 없는 원형 3층은 낙원을 의미한다고 했다. 원형 1층 위에는 구멍이 뚫린 스투파(탑)72개가 있으며 탑 속에는 정좌한 형태의 등신불이 놓여 있었다. 이 불상을 만지면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곳의 불상도 두상이 없는 것이 있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목 없는 불상들 1>

 

<보로부두르 사원의 목 없는 불상들 2>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관광객이 등신불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했다. 즉 동쪽과 북쪽의 스투파 1개씩을 해체하여 불상이 밖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이곳은 마치 수많은 석굴암을 보는 듯 했으며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대하고 복잡한 건축물이었다.

 

<유네스코에서 스투파를 해체해 관광객이 볼 수 있도록 한 불상 모습>

 

 

 이 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신전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 지어졌단다. 기단에서부터 6층까지 회랑을 따라 사원에 오르는 행위가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회랑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부조를 보면서 6층(기단 포함)까지 이르는 길이가 5Km에 이르고 쌓아올린 돌덩어리만도 100만개가 넘는다고 했다.

 

<회랑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부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는 부조 1>

 

<회랑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부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는 부조 2>

 







 <회랑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부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는 부조 3>

 



  사원은 8세기 중엽 샤일렌드 불교왕조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보다 3백년 앞서 건립된 셈이다. 그러나 9세기 중엽에 산자야 힌두교왕조가 들어서면서 방치되었다가 1006년 므라삐화산의 폭발로 사원이 화산재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복원사업은 여러 손길을 거쳐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네덜란드가 1907년부터 1911년까지 복구공사를 했다. 그리고 1973년부터 10년 동안 아시아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주도로 대규모 복구사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1980년대에 일본이 추진한 보로부두르 공원화사업은 유적과 환경파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오랜 기간 여러 곳에서 복구사업이 벌어졌지만 완전하게 사원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천재로 사원 일부가 소실된 데다가 인재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사원이 발굴된 뒤 도굴꾼들이 불상과 부조를 훔쳐가고 심지어 네덜란드 총독이 태국 왕을 만났을 때 사원 장식물을 선물로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치 인도 뭄바이 앞에 있는 엘리펀드섬의 석굴문화유적을 포르투갈 군인들이 사격 표적으로 삼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일행이 사원 앞에 섰을 때 큰 규모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원 계단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고 있었다. 일행은 끼리끼리 짝을 지어 사진을 찍으며 사원을 올랐다. 유네스코에서 복원할 때 찾지 못한 돌을 새로 깎아 끼운 것은 원래 것과 색상이 달랐다. 8세기에 과학과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순전히 손으로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짓다니. 그것도 사원 30Km안에는 이와 같은 암석이 없어 므라삐산에서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했다.

 

<사원에서 바라본 므라삐화산 모습 1>

 

<사원에서 바라본 므라삐화산 모습 2>

 

<유네스코에서 복원할 때 새로 깎아 끼운 돌의 색상이 다른 모습>

 

<보로부두르 사원 스투파의 색상이 다른 돌>

 

 


 나는 일행 한 명과 같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부조와 불상들을 보면서 이곳 선조들의 돌 다듬는 솜씨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스투파가 있는 곳까지밖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회랑을 따라 몇 층을 돌았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니 일행이 한 명도 없지 않은가. 이런 곳에는 시간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원을 나섰다.

 

<보로부두르 사원 6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1>

 

<보로부두르 사원 6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2>

 











 <보로부두르 사원 6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3>

 

<보로부두르 사원 6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4>

 


<보로부두르 사원 6층 스투파 모습>

 

<보로부두르 사원 북문을 지키는 수호신>

 

<보로부두르 사원의 목 없는 불상들>

 

<보로부두르 사원의 출구인 북문과 계단 모습>

 





  이곳도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따로 있었다. 들어가는 곳은 주차장과 가까웠으나 나오는 문에서부터는 상점가로 연결된 긴 거리를 걸어 나와야 주차장이었다. 우리는 상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 주위로 오니 일행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이 보였다. 늦지 않은 것이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므라삐 화산박물관으로 향했다(09:40).

 

<보로부두르 사원 주차장으로 가는 길의 상점들>

 

<므라삐 화산박물관으로 가는 길 풍경 1>

 

<므라삐 화산박물관으로 가는 길 풍경 2>

 

 이 박물관은 므라삐 화산(Gunung Mermpi)의 폭발상황을 설명해주는 곳이었다. 족자에서 북쪽으로 약3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불의 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활화산이다. 해발 2,914m로 매일 열구름을 내뿜는다. 지금까지 약 40회 폭발했다고 한다. 일행이 박물관에 도착하자 입구에 므라삐산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스위치를 누루면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므라삐 화산박물관 모습>

 

 


 이어서 영상물을 보았다. 영상물은 화산 생성에서 폭발까지의 과정, 지질 및 화산연구 활동, 므라삐 화산 발생상황 등을 소개했다. 최근 화산폭발은 1998. 7.11. 04:00에 일어났었다. 검은 연기가 산 정상 3,000m까지 올라갔고 뜨거운 연기와 화산재 파편이 수Km 분출되었으며 화산재는 60Km까지 영향을 미쳤단다. 1994년에는 66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1930년에는 1,300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했다. 전시실에는 이에 관한 각종 자료와 그 때 타다 남은 자전거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지진대 및 화산분포도>

 

<므라삐산 모형도>

 

<므라삐 화산푹발시 발생한 화산암들>

 

<므라삐 화산폭발시 타버린 자전거>

 

<므라삐 화산 모형도>

 


 박물관을 출발해서 므라삐 화산전망대로 향했다(12:00). 버스로 전망대 입구까지 갔으나 그곳 주차장에서부터는 지프차를 타야했다. 지프에는 5명씩 탈 수 있는데 한 대에 25만루피아(1인당 5만루피아)를 달라고 했다. 안개가 많이 끼어 날씨가 좋지 않고 전망대에 가도 분화구를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여기에도 음식점과 기념품가게들이 있었으며 전망대 주위의 사진이 걸려 있어 그것으로 대리만족을 했다. 점심식사 후 쁘람바난 사원으로 향했다(13:15).













 

<므라삐 화산 전망대 입구 풍경 1>

 

<므라삐 화산 전망대 입구 풍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