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2013.01.07-24)

브로모 화산지역을 향하여

boriburuuu 2016. 3. 7. 00:30

 오늘은 족자를 떠나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날이었다. 모처럼 햇살이 비치는 맑은 날씨였다. 나는 4일간 이곳에 있었던 큰 가방을 정리해서 아침을 먹기 전에 숙소 앞에 내다 놓았다. 대형 버스는 단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므로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곳에 버스를 세웠다. 2호차를 타는 사람은 3일 동안 작은 가방을 메고 이곳까지 걸어서 오갔다. 그러나 큰 가방을 가지고는 힘들어서 리조트 차로 여러 번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리조트에서 마지막으로 한식을 맛있게 먹고 단체사진을 찍은 다음 숙소를 출발했다. 그동안 길벗 부인인 양여사가 일행을 깍듯이 대해준 것이 고마웠다. 답례로 변변치 않으나 거의 매일 한 병씩 마시는 작은 소주(처음처럼) 3병을 주었다. 마음속으로는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었지만 여행 중이라 줄 것이 없었다. 리조트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를 출발(06:50)했다.

 

 일정을 살펴보아도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브로모 화산지역 입구마을 호텔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왔기 때문에 버스를 탈 때는 부부와 여성들에게 앞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를 차지했다. 심심해서 창밖을 내다보니 깨끗한 집도 허름한 집도 눈을 스쳐지나갔다. 마을을 지나자 넓디넓은 들판에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오토바이에 부인과 아이를 함께 태우고 가는 가장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인도네시아 국기가 걸린 깨끗하고 넓은 정원을 가진 관공서를 지나기도 했다.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1 : 멋있는 주택>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2 : 넓은 들판에 자라는 벼>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3 : 가족의 나들이>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4 : 국기가 걸린 관공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상당히 큰 마을을 지날 때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우리의 동동묘지는 거의 산에 있는 것이 보통이나 이곳에는 마을 안에 있었다. 시멘트로 다양한 모습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푸른색, 흰색, 붉은 색 등을 칠해서 공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덤 크기도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것보다 작았다. 서양은 평토를 해서 비석만 세우나 그것과도 다른 독특한 문화였다.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5 : 나무와 어울어진 마을>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6 : 마을과 붙어 있는 공동묘지>

 

 

 또다시 평야가 나타났다. 이곳은 병충해 예찰을 한 결과 괜찮다는 뜻인지 논에 흰 깃발을 매단 것이 눈에 띄었다. 우리도 통일벼를 한창 심을 적에 병충해 예찰을 하여 괜찮은 곳엔 흰 깃발을, 우려가 되는 곳은 붉은 깃발을 달았던 기억이 났다. 인도네시아는 평야가 많고 화산재 덕분인지 경지정리가 잘되었을 뿐 아니라 농작물도 잘 자라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곳 사진관도 나타났다.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7 : 흰 기를 꼽아놓은 들판>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8 : 사진관 모습>

 

 3시간쯤 달렸을까. 주유소에 들려 휴식을 취하며 볼일을 봤다. 버스는 주유를 마치고 화장실과 떨어진 곳에 세워놓고 있었다. 눈치 빠른 노점상들이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싱싱한 과일을 버스 옆에 펴놓고 일행을 기다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일행 중에서도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외국을 여행하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9 : 주유소의 노점상들>

 

 

 지금까지 알지 못했는데 2호차 조장으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뉴스를 들었다. 나와는 북인도와 네팔 그리고 티베트 및 중국을 함께 여행한 적이 있는 단학에 대한 얘기였다. 그가 위경련으로 일행과 떨어져 족자의 병원에 긴급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요양 중이라는 것이었다. 족자에서 2~3일간 요양하다가 상태가 좋아지면 일행의 최종 목적지인 발리로 온다는 것이었다. 여행 중에는 특히 외국에 나왔을 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건강이 아닌가. 그가 빨리 좋아지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나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일행은 주유소 앞에 버스를 세우고 길벗이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빌렸다. 준비한 사람은 그것을 먹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식당에서 사먹었다. 나는 빵이 있었지만 인도네시아 음식을 사먹기로 했다. 여기는 밥을 푼 다음 반찬은 가지고 오는 것만큼 계산하는 곳이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이라도 잘 먹고 소화를 시키도록 만들어준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맛있게 먹었다.

 

 2호차를 탄 일행들이 지루하고 심심한 모양이었다. 항상 조용하기만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앞에서부터 차례로 노래를 시키고 있었다. 말은 조용조용히 했지만 꼭 필요한 말을 듣기 좋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회자였다. 모두 박수를 치며 한데 어울렸다. 그러다 내 차례가 왔다. 노래방 덕분에 가사를 외우는 것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한 곡조씩 불렀는데 나만 못한다고 하기도 싫었다. 노래방이 나오기 전에 불렀던 가사가 생각이 나서 한 마디 불렀다. 일행은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서 보지 못한 사탕수수밭이 보였다. 논에는 한참 신나게 자라는 벼가 있는가하면, 벌써 이삭이 패서 익어가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여기도 병충해 예찰을 했는지 논에 흰 기가 많이 보이기도 했다. 일행은 이렇게 주위를 구경하며 버스여행을 계속했다.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10 : 사탕수수와 벼>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11 : 넓은 평야의 흰 깃발>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12 : 경지정리가 잘 된 모습>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13 :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

 

<브로모 화산지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 14 : 산을 볼 수 없는 넓은 평야>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오면서 쉬기도 했지만 벌써 12시간이 흘러 19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2시간이상 더 가야 한단다. 호텔에 도착해도 시간이 늦어 저녁을 먹기 힘들다는 판단아래 큰 식당을 찾았다. 모두 식성에 맞춰 음식을 시켰으나 갑자기 70여명이 들어 닥치니 주방에서 미처 음식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대부분은 밥이 나오기 전에 우선 맥주를 시켜 마셨다. 나도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과 맥주를 마시고나서 나시꼬랭(볶음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버스를 타자 대부분 하나님이나 부처님 등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거의 15시간이 걸려 수카뿌라 뻐마이(Sukapura Permai)호텔에 도착(21:30)했다. 너무나 피곤한 우리는 마사지를 신청했다.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엄마와 딸처럼 보이는 여자분이 두명 왔다. 길자씨와 나는 기념품과 사탕을 주기도 하니 정말 열심히 맛사지를 한다. 산골 마을에 사는 남루한 그들의 모습에 우린 후한 팁을 주었다. 그녀들은 그게 맛사지 값인 줄 알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팁이라고 하니 너무도 좋아했다. 우리에게 볼키스를 하기도 하고 하면서 헤어졌다. 내일 새벽 일출을 보러 가야해서 오늘은 자는둥 마는둥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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