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2013.01.07-24)

쁘람바난 사원 등 관광

boriburuuu 2016. 3. 7. 00:29

쁘람바난 사원(Candi Prambanan)은 족자 시내에서 동쪽으로 17Km에 있었다. 세련된 균형미와 정교한 조각미를 자랑하는 힌두교 사원이며 자바 건축의 백미라고 한다. 보로부드르 사원과 더불어 199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9세기 중엽 사원 건립당시 크고 작은 신전이 240개가량(전설에는 1,000개) 있었다고 한다.

 

<"쁘람바난 고고학 공원"의 평면도>

 


<쁘람바난 공원 입구 풍경>

 

<쁘람바난 사원 풍경>

 

 그러나 16세기에 발생한 화산폭발과 큰 지진으로 건축물이 무너져 사원은 200년이 넘도록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1918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사원 복원사업에 착수하여 1953년 주요 건축물 복원을 마무리 했다. 재정문제로 작업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복원된 신전은 아직 18개에 불과했다. 복원되지 못한 나머지 신전들은 아직도 사원 주위에 돌무더기 상태로 남아있었다.

 

<돌무더기 상태로 남아 있는 복원되지 못한 신전 잔해물들 1>

 

<돌무더기 상태로 남아 있는 복원되지 못한 신전 잔해물들 2>





  이사원은 한 변이 222m인 정사각형 모양의 단(段)이 중원(中苑)을 이루고 그 위에 사방 110m인 내원(內苑)이 있었다. 내원에는 뜨리삭띠(삼위일체)로 불리는 3개의 주요 신전이 있었다. 힌두교 3대 신을 모신 신전으로 북쪽에 부라마 신전, 남쪽에 비슈누 신전, 중앙에 시바 신전이 있었다. 힌두교 3대 신을 모신 신전 앞에는 신들의 이동수단으로 이용했던 동물 신전이 있었다. 즉 시바 신을 모신 소(난디), 부라마 신을 모신 백조(앙사), 그리고 비슈누 신을 모신 독수리(가루다) 신전이었다.

 

<쁘람바난 사원 풍경 1>

 

<쁘람바난 사원 풍경 2>

 

 <쁘람바난 사원 풍경 3>

 

<쁘람바난 사원 풍경 4>

 




<난디 신전에 모셔진 난디 모습>

 

 47m 높이의 시바 신전에는 4개의 석실이 있었다. 동쪽에 시바 상, 북쪽에 시바 신의 부인인 두르가 상, 서쪽에 코끼리 머리를 가진 아들 가네샤 상, 남쪽에 스승인 아가스뜨야 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부라마 신전과 비슈누 신전은 각각 23m의 높이였다. 부라마 신전과 백조 신전사이에는 조그마한 아피트 신전이 있었다.

 


<쁘람바난 사원의 시바 신전 전경>

 

<시바 신전 외부의 아름다운 조각들>

 




 나는 내원의 각 신전을 다닌 후 마지막으로 시바 신전을 찾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관리인이 시바 신전 입구에서 헬멧을 나누어주며 쓰라고 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알 수 있었다. 신전의 석실에 들어갈 때 헬멧이 천장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신을 모신 석실은 훼손 때문인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신상을 보려고 해도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따라 더듬거리며 신상을 만져보았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관능적인 두르가 상이었다. 이 석상이 바로 사원건립에 얽힌 전설 속의 여인이라고 했다. 이 석상을 만지면 예뻐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시바 상이 모셔진 곳보다는 밝아 석상에는 사람의 손때가 시커멓게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남자이지만 두르가 상에 손때를 조금 더 묻히고 나왔다.

 

<시바 신전 북쪽에 있는 두르가상>

 





 가네샤 상이 모셔진 석실은 웬일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여기서도 코끼리의 코를 만져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바 신전과 브라마 신전 외벽에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이야기가 부조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정말 이것을 만들은 장인들의 정교하고 세밀한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신전 뒤쪽으로는 또다른 힌두교 유적들이 보였다.

 

<하천 건너편에 있는 힌두교 유적 1>

 

<하천 건너편에 있는 힌두교 유적 2>

 











<출구로 나오며 바라본 쁘람바난사원 모습>

 

<박물관 앞에서 본 쁘람바난 사원 모습>

 






 여기도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달랐다. 밖으로 나오자 사원 바로 옆에 박물관이 있었다. 넓은 부지에 건물을 지었으며 부지 한 쪽에는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도 머리 없는 불상이 많았다. 건물 안에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악기, 링가(시바 신을 상징), 보로부두르 사원 조감도, 주요 인물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상관도 있었지만 그것을 볼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제일 뒤였기 때문에 박물관을 천천히 관람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

 

<쁘람바난 사원 옆에 있는 박물관 입구>

 

<박물관 본건물 모습>

 

<박물관 야외에 진열된 석조 불상 등>

 

<박물관에 진열된 예술품 1>

 

<박물관에 진열된 예술품 2>

 

 <박물관에 진열된 예술품 3>

 

<박물관에 진열된 예술품 4>













 











<박물관 야외에 진열된 석조 예술품들>

 

<박물관 야외 풍경 1>

 

 <박물관 야외 풍경 2>

 








 또한 보로부루드 사원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규모가 큰 곳은 오디오가이드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현지가이드 없이 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오디오가이드는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도 조드뿌르의 메헤르가르성과 태국 방콕 두씻의 안안다 싸이콤 궁전에도 이것을 활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쁘람바난 사원을 출발하여 저녁식사와 더불어 라마야나 공연을 관람할 장소에 도착(17:45)했다. 테이블은 있었으나 아직 식사준비가 되지 않았다. 일행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않아 식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맥주를 시켜 마시기도 했다.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기다릴 것을 알았으며 사원이나 박물관에서 시간을 더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인솔자는 교통체증 등을 감안해서 좀 일찍 출발한 것 같았다.

 

 식사는 18시30분부터 시작됐다. 한 번에 많이 준비한 것은 상관이 없었으나 조금씩 놓은 것은 미처 차례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한 것들만으로 배를 채웠다. 그 사이 다른 관광객들도 합류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전통악기의 연주(2명)에 맞추어 라마야나 공연을 하는 여인 한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당히 숙련된 몸놀림이었다.

 

<라마야나 공연장 식당에서 간이 공연 모습 1>

 

<라마야나 공연장 식당에서 간이 공연 모습 2>

 

 

 식사가 끝나자 시간이 있어 정원에서 얘기 하기도 하고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기도 하였다. 비가 오면 실내에서 공연을 하나 지금은 비가 오지 않아 야외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가자 앞좌석에는 명패가 놓여 있었고 일행은 그 뒤에 앉게 되었다. 그 때문에 약간의 잡음이 있었으나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라마야나로 말 한마디 없는 무언극이었다. 그러나 배우들의 의상이나 몸놀림으로 보아 그들은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외국에서 공연을 볼 때 그 내용을 모두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개략적으로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힘들게 나쁜 사람들을 모두 이기고 해피앤드로 끝나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문화인 이 공연을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마야나 공연 모습 1>

 

<라마야나 공연 모습 2>

 

 <라마야나 공연 모습 3>

 

<라마야나 공연 모습 4>




 

 <라마야나 공연 모습 5>

 

<라마야나 공연 모습 6>






<라마야나 공연 마무리 인사>


 공연이 마무리되자 모든 배우들이 나와 인사를 했다. 인사가 끝나자 일행 중 일부가 무대로 뛰어나가 배우들과 함께 촬영을 하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돌아오니 10시 30분이었다. 나는 발리에서의 자유 시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꿈나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