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술관/푸쉬킨 박물관

푸쉬킨 박물관의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boriburuuu 2020. 9. 10. 14:59

빈센트 반 고흐의 <붉은 포도밭>이다. 1888년. 고흐가 죽기 2년전 아를에 정착한 후 그린 그림으로 그는 동생 테오에게 '비가 내린 후 석양이 땅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포도 잎을 와인처럼 붉게 물들일 때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늘의 색조는 강렬한 붉은 색조와 대조를 이루고 고흐만의 꿈틀거리는 터치는 그림에 깊은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정체 구성은 오른쪽에서 중앙을 향한 해안선 구도와 멀리 보이는 완만한 지평선의 수평 구도가 특징적이다. 이 작품은 고흐가 테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그려 선물한 것인데 고흐의 작품 중 테오가 팔았던 유일한 작품이다. 1890년 벨기에 화가 안나 보쉬에게 350프랑이라는 헐값에 팔았고 후에 슈킨이 재구매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레이의 초상>이다. 1889년.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려 고흐가 귀를 자른 후 치료해 주었던 의사로 가난했던 고흐는 감사의 마음으로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다고 한다. 강렬한 색채의 대비 속에 평면적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닥터 레이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한 수작이며 그와 너무도 흡사하게 그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닥터 레이는 고흐의 가치를 몰랐고 그림을 다락방에 버려뒀고 부인은 축사의 환기구를 막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1900년 앙리 마티스의 친구인 화가 찰스 카모엔이 고흐의 발자취를 답사하던 중 이 초상화를 발견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노란 피부톤, 뾰족한 수염 등이 일본 문화가 많이 반영된 그림이라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형무소에서(죄수의 뜰)>이다. 1890년.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이 그림은 구스타프 도레(19세기 프랑스 삽화가. 런던의 가난에 찌든 지역을 그림)의 판화에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한다.  좁은 죄수의 뜰 안을 너무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무한반복 원을 그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 세 명의 간수들은 무심하게 죄수들을 감시하고 있고 감옥 안은 절망의 공간으로 희망이 사라진 곳으로 보인다. 가운데 고개를 들고 화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있는 인물이 고흐 자신이라고 한다. 생애 말년 고통을 겪던 고흐는 자신의 현실을 감옥에 빗대어 그린 것인데 담벼락 위 나베 두 마리가 날고 있어 고통 없이 자유의 몸이 되고 싶은 고흐의 염원이 투영되어 있다. 그림을 통해 희망을 부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비 갠 후에>다. 1890년.  고흐는 생명의 빛이 다해가는 중에도 여름의 강한 생명력을 지닌 밀과 감자밭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이 그림은 풍경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고흐 그림의 특징인 색채의 강렬함, 꿈틀거리는 선의 굵기, 삶을 짓눌러 놓은 듯한 물감의 두께감이 너무도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온 몸이 상쾌해지는 강한 삶의 의지와 활기찬 빛으로 가득한 그림이다.

폴 고갱의 <과일>이다. 1999년

밀레의 <여인과 아이, 1890>이다.

폴 고갱의 <카페 아를(자누부인의 초상)>이다. 1888년.  모델은 아를 카페의 주인인 지누부인이다. 고흐와도 절친한 사이라 고흐는 늘 '나의 사랑하는 친구'라 칭했다 한다. 그러나 고갱은 약간은 욕심 많고 사기성 짙은 사람으로 판단해 그림 속 이미지인 압생트 술을 앞에 놓고 있는 교양과는 거리가 멀고 돈만 밝힐 것 같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 뒤쪽의 모자 쓴 남자는 고흐가 사랑하는 우체부인데 술집 여자와 잡담을 하고 있는 한량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고흐와 고갱 두사람을 비교하는 일화에 자주 등장한다.

폴 고갱의 <고갱 초상화>다. 1889년.  고갱은 자화상을 그려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림 속 화가는 화려하진 않지만 고집스러워 보이고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굽히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고갱은 초상화를 그릴 때 배경으로 자기 그림을 쓰는데  1899년에 그린<파도 속에서>라는 작품이다.

 

폴 고갱의 <너 질투하니>이다. 1892년.  이 그림에 대해서 고갱은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밝힌다. '두 젊은 여인이 해변에 있다. 한 여인은 방금 목욕을 하고 관능적인 포즈로 누워 쉬면서 자난밤 나눈 사랑을 서로 이야기하다가 다가올 사랑에 대해 들떠 있다. 그러자 다른 여인이 돌아 앉으며 이렇게 묻는다. '너 질투하니?' 고갱은 오염되지 않은 타이티의 자연 속에 원시적인 사랑을 자신만의 색채로 이렇게 표현한다. 바닥의 묘한 핑크빛이 그림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폴 고갱의 <부처>다. 1899년.  고갱의 예술 개념은 모든 세계 종교의 깊은 내적 통일성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하며 이 그림 또한 인류의 운명에 대한 예술가의 종교적, 철학적 생각을 구현하고 있다. 마오리 돌부처의 가슴 부분에는 죽음을 운명 지워주는 타이티 신 히나와 테파투가 그려져 있고 부처 앞에 원주민이 앉아 있고 어미개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으며 그림 뒤편에는 인간의 고통과 희생을 상징하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밤하늘에는 영원불멸의 달이 떠 있다. 그림 속 소재들은 서로 상통하는 맥락의 철학적 의미를 갖고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폴 고갱의 <바이라우마티>이다. 1892년.  이 그림은 폴리네시아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그림 속 여인 바이라우마티는 인간의 몸으로 마오리의 신 오로의 아내가 되어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 그녀는 인간이 죽더라도 정신적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당시 고갱은 건강이 악화되고 사랑하는 딸이 사고로 죽게 되자 바우라우마티의 영생의 삶이 심취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폴 고갱의 <타이티 길의 말이 있는 풍경, 1899, >이다.

폴 고갱의 <루페루페(타히티는 아름다운 땅)>다. 1899년.  원시적인 강렬한 색채로 그림의 중앙에 옅은 초록색 옷을 입은 기둥처럼 보이는 여인을 중심으로 온쪽은 꽃과 과일을 든 여인을 보여주며 풍요로운 에덴 동산을, 오른쪽에는 생로병사에 지친 인간이라든가,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체 등을 그려 넣는 것이 보통이다. 즉 오른쪽은 소멸을 왼쪽은 풍요로움, 생성을 나타낸다. 이시기 그려진 고갱의 작품 대부분은 이런 접칙으로 그려졌다. 중간의 과일을 따는 기둥처럼 생긴 사람은 유혹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를 상기시킨다.  

 

 

ㅍ폴 고갱의 <앵무새가 있는 정물>이다. 1902년.  우리 인간의 삶은 잠깐 동안의 여행과 마찬가지로 지구에 잠깐 들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 고갱은 타히티에서 마르캐사스 아르히폴라고까지 여행할 때 쓰던 물품들과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죽은 앵무새와 꺾여진 꽃을 함께 그렸다. 특히 이 그림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이끈 라리오노프, 곤차로바, 로자노바 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그림이다.

엘아하 오히파(일하지 않는), 1896, 폴 고갱>

폴 고갱의 <테 아리 바히네(타히티의 여왕)>이다. 1896년.  마네의 올랭피아처럼 누워 있는 누드 그림이다. 이 작품은 타히티 시기 제 2기의 그림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그림 속 타히티 소녀는 여왕처럼 위엄 있게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보이며 누워 있고  이 여인은 당시 고갱의 아내로 마네의 올림피아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보인다. 그녀 뒤의 지식의 나무 옆에는 선과 악이 대화를 나누고 있고 나무의 오른쪽에 이미 태어나서 성장하고 무르익어 생이 다하는 소멸을 그려 넣었으며 왼족에는 과일이 풍성하게 열려 있어 인간이 열매를 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