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국립미술관 프란즈 할스와 제라드 반 혼토르스트, 베르스프롱

boriburuuu 2020. 10. 24. 23:14

1639년 프란스 할스의 < 마리트 클래스드르 부흐트의 초상화>
프란스 할스는 하렘의 상류층 구성원들의 훌륭한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는 그의 저명한 후원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피에터 올리칸 시장의 부인인 마리지 부흐트는 자랑스럽게 똑바로 앉아 시청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전통적인 포즈로 묘사된다. 할스는 왼쪽에 62세의 나이에 주목했다. 그녀의 팔코트는 나중에 다른 손으로 추가되었다.

 

프란스 할스의 <뤼카스 데 클레르크(1593-1652)의 초상. 탄산칼륨 취급업자 >이다.

프란스 할스의 <여인의 초상>이다.

 

프란즈 할스의 <신혼부부의 초상>이다. '젊은 한쌍의 초상화'는 널리 유행한 주제로 모델은 할스와 부인이라고도 하고 다른 사람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다만 부부애에 대한 은유적 표현들이 많은데 포도나무, 담쟁이, 국화 등은 남자의 충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멀리 보이는 조각상은 화가의 아탈리아 취향이 보인다. 이 그림에서 돋보이는 것은 확가의 자유분방한 붓질과 과감히 생략하는 기법을 통해 표현된 그림 속 인물들이 행복한 표정이다. 할스는 갈색과 검은색만으로 경쾌한 표현을 했는데 정말 탁월한 솜씨다.

<미그르 회사’로 알려진 레이니어 리엘 대위의 지휘 아래 XI 구역의 밀리티아 회사> 프란스 할스, 피에터 코드, 1637
시민 경비 초상화에 대한 커미션은 도시 밖에서 온 화가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렘 출신의 프란스 할스는 이 그룹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곧 경비원들과 갈등을 겪었고 암스테르담 화가인 피에터 코드는 오른쪽의 7 가지 수치를 끝내기 위해 개입해야 했다. 작고, 매우 매끄럽고, 정교하게 실행된 작품으로 알려진 코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스의 느슨한 스타일을 최대한 모방했다.

프란스 할스의 <여인의 초상>이다.

제라드 반 혼토르스트의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이다. 1622년

제라드 반 혼토르스트의 <사티르와 님프>다.

<메리 피들러:즐거운 바이올린 연주자>다. 제라드 반 혼토르스트, 1623년
사치스러운 이탈리아식 옷을 입은 남자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그는 태피스트리 뒤에서 나타나 창밖으로 몸을 기울인다.주인공은 창턱으로 다가서기 위해 막 커튼을 젖혔다. 이 커튼은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보인다. 꼭 액자 속에서 건배를 하기 위해 뛰어 나올것처럼 생생하다. 유쾌한 얼굴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요하네스 코넬리즈 베르스프롱의 <푸른색 옷을 입고 있는 어린 소녀의 초상>이다. 1641년. 화가는 프란즈 할스의 제자로 숙련된 초상화가였다. 거의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소녀는 어른처럼 표현되어 있으며 사치스런 보석류, 부채, 금으로 수놓은 의상등은 유복함을 강조하고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으며 불안한 인상이다.

<에두아르 월리스의 초상화> 요하네스 코넬리스. 베르스프롱, 1652년
요하네스 베르스프롱크와 프란스 할스는 비슷한 시기에 하렘에서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들의 스타일 사이에 더 큰 차이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베르스프롱크는 부드럽고 정밀하게 그리고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였다. 할스의 스타일은 훨씬 더 스케치되고, 그의 세부 사항에 대한 렌더링은 훨씬 더 요약된다. 부유한 상인인 에두아르 월리스와 그의 아내는 분명히 베르스프롱크를 선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