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찰스 하워드 호지스와 조지 헨드릭 브리트너

boriburuuu 2020. 10. 25. 17:29

1810년 <빌더디크의 초상화> 찰스 하워드 호지스
시인이자 학자인 윌리엄 빌더디크는 헌신적인 군주제 옹호자였기 때문에 1795년 네덜란드의 프랑스 공화당 통치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추방되었지만 루이 나폴레옹 왕 밑에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빌더디크의 완성되지 않은 서사시인 루이 나폴레옹을 위해 쓰여진 제1세계의 파괴가 있다. 6개월 후, 왕은 퇴위했고, 빌더디크는 다시 한번 보호자를 박탈당했다.

<자화상> 찰스 하워드 호지스, c. 1825 - c. 1830

영국의 화가 찰스 하워드 호지스는 1792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그는 성공적인 초상화가가 되었고 이 갤러리에서 루이 나폴레옹의 국가 초상화와 같은 중요한 커미션을 받았다. 이 자화상에서 그는 이젤과 팔레트를 가진 화가가 아니라 잘 사는 시민으로 자신을 묘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호지스의 딸 엠마가 리크스뮤지엄에 제출했는데, 그의 초상화는 아래에  있다.

<엠마 제인 호지스의 초상화> 찰스 하워드 호지스, c. 1810
엠마 제인 호지스는 그녀의 아버지인 화가 찰스 하워드 호지스에게 헌신했는데, 그는 그녀에게 그림 수업을 해주고 그녀의 꿈같은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는 스무 살쯤 되어 최신 유행의 가운을 입고, 헝클어진 더블 칼라와 팔꿈치까지 오는 카모아 가죽 장갑을 끼고 있다.엠마 제인은 아버지의 자화상과 함께 유언장에서 이 초상화를 리크스뮤지엄에 유언장에 남겼다.

<1809년 네덜란드의 왕 루이 나폴레옹의 초상화>  찰스 하워드 호지스
1795년 프랑스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했다. 이 나라는 프랑스의 동맹국이 되었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고 그의 형제인 루이스 나폴레옹 왕을 네덜란드의 왕으로 만든 1806년까지 많은 독립을 누렸다.  루이스는 그의 새로운 왕국에 대해 동조를 표했고 네덜란드의 이익을 지지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의도가 아니었고지만 1810년에 그는 그의 형제를 퇴위 시키도록 강요했다.

조지 헨드릭 브리트너의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다. 화가는 13개의 기모노 여인 연작을 그려냈는데 기모노의 모양 등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이 그림은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다보니 절대 취할 수 없는 포즈의 표현을 하고 있다.

<옐로우 라이더스> 조지 헨드릭 브레트너, 1885년 - 1886년
엘리트 ‘노란 기병’(기마 포병대)이 돌풍을 일으키며 모래언덕을 질주한다. 브레이트너는 그들의 검붉은 깃털과 유니폼에 달린 금색 땋은 머리를 최대한 이용했다. 이러한 색의 반복은 운동의 역동성을 강화시킨다. 앞마당에 있는 말들에 의해 걷어찬 모래는 뒤에 있는 기병들의 경치를 흐리게 한다. 남은 것은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의 반복뿐이다.

1892년 조지 헨드릭 브리트너<암스테르담의 오스터파크 전망>이다.
1892년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그의 친구 위트센의 스튜디오에서, 브리트너는 암스테르담의 새로운 지역에 위치한 눈 덮인 오스터파크(당시 건설 중)를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키가 높은 19세기 후반의 집들이 지평선에 보인다. 항상 돈이 부족한 브리트너는는 계약하에 있던 딜러를 통해 판매하기보다는 스스로 그림을 교환했다고 한다.

<얼음 속의 배들> 조지 헨드릭 브리트너, 1901년
짙은 색 페인트의 두꺼운 층을 사용하여, 브리트너는 전통적인 나무 보트를 묘사했다. 그들은 튼튼하고 파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음 속에 갇혀 있다. 그들의 돛대 뒤에는 더 가볍고 거의 투명한 색상으로 칠해진 큰 강철 증기선이 있다. 그들은 탁 트인 물에서 항해한다. 따라서 구시대와 현대는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