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

렘브란트

boriburuuu 2020. 11. 9. 11:58

렘브란트의 방이다.

 

먼저 그 유명한 <니콜라스 퇼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신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면서 해부학이 각광받게 된다. 암스테르담에서 사실적인 초상화 제작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렘브란트는 당시 저명한 외과의인 니콜라스 튈프로부터 해부학 강의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인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그림 안의 상황에 깊이 연루될 수 있도록 역사화적 기법을 적용한 이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는 화가로서 강력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튈프 뿐 아니라, 사체 주변에서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 인물마다 다른 특성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고, 이들 모두 튈프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중 가장 위에 위치한 의사의 시선은 화면 밖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그림 밖의 관람자와 눈길을 교환하기 위함이다. 렘브란트는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그림 속 인물의 시선을 생성함으로써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그림 속 사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렘브란트의 <웃는 남자> 다.  1629 - 1630.  이것은 초상화가 아니고 캐릭터 연구 또는 "트로니"또는 웃는 사람이다.

 

렘브란트의 <베레모를 쓴 남자 트론>이다. 1635-1640년.  한 남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얼굴이 밝은 빛을 받아 환히 빛나고 금속 재질의 악세사리도 빛을 받고 있다. 이것은 초상화가 아니고 '트로니' 혹은 캐릭터 스케치다. 모델은 아마도 군인으로 보인다.

렘브란트의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다. 참 미소년이었네. 63세의 초상화와 비교하니 정말 실감이 난다.

 

렘브란트의 <미네르바>이다. 빛의 극명한 대비를 '렘브란트의 빛'이라고 하는데 렘브란트 작품의 특징은 빛이 직접 비치는 부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밝고 뚜렷하게 그리고, 빛이 직접 닿지 않는 부분은 흐릿한 그늘로 그리는 방식이다. 이는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나타내는 키아로스쿠로라는 미술기법인데 렘브란트의 작품 미네르바(Minerva)도 대표적인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여신 미네르바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얼굴과 몸 전면은 아주 밝고 배경은 매우 어둡게 표현하고 있으면서 빛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로마신화의 미네르바 여신을 그리는 것과 같이 종교화를 그리는 것은 그 당시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금지되어 있었으나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 가톨릭 국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종교화를 그리는 것이 허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의 종교화가 지금도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 그림의 배경에 투구와 창을 그려넣어 전쟁의 여신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책에 손을 얹고 있게 하여 지혜의 여신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안드로메다>다. 안드로메다의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실려 있다. 렘브란트는 <안드로메다>를 제작하기 위해서 티치아노, 헨드릭 홀치우스, 요아힘 위테발이 제작한 안드로메다 그림들을 연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안드로메다>는 이 전대의 그림들과 구별된다. 전대의 그림들에 안드로메다와 함께 페르세우스와 괴물이 묘사되어 있는 반면에,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안드로메다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전대의 그림들에서 안드로메다는 우아하게 묘사되었지만, 렘브란트의 안드로메다는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전대의 그림들과는 다르게 렘브란트는 안드로메다의 얼굴에 안드로메다가 경험했을 여러 감정들을 깊이 있게 암시해 놓았다. 한편, 렘브란트의 주인공 안드로메다의 누드는 전대의 묘사들에 비해 더 현실적이다. 결국 렘브란트가 <안드로메다>를 통해 이 주제에 가져다 준 업적은 여성의 누드와 주인공이 사건을 경험하며 얻게 되는 감정들을 결합시킨 것이다. 1630년 무렵 네덜란드의 미술 감상자는 렘브란트의 <안드로메다>를 보며 희망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 또한 연상했을 가능성이 있다. 렘브란트의 <안드로메다>는 이처럼 복합적인 그림으로서, 젊은 화가 렘브란트가 그림전통과 원전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보여준다.

 

렘브란트의 <수산나>이다.  1636년. 부유한 유태인의 아내인 수산나를 짝사랑하던 두 늙은 장로가 목욕을 하는 수산나에게 정을 통하지 않으면 누명을 씌우겠다고 협박했으나 수산나는 거절하고 간음의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현명한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두 장로를 분리 심문해 누명을 벗게 되었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두 노인의 모습은 어둠 속에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렘브란트는 수산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것처럼 밝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렘브란트의 <시므온의 찬양의 노래>이다. 1631년.  요셉과 마리아는 신생아 예수를 하나님께 처방하는 순간에 있다. 아이는 시므온에 의해  메시아로 인정되었다. 그는 아기 예수를 보자 메시야임을 알고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메온이 아이의 몸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피하는 신성한 빛. 브란트가 이 장면을 그렸을 때, 그는 라이덴에서  조용한 생활을 했다.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했는데, 그는 첫 번째 시간을 위해 더 큰 일을 하고 작품를 만들기 시작했다.  

 

렘브란트가 그린<늙은 남자의 초상>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1669년.   렘브란트처럼 자기 초상화처럼 17세기 예술가는 아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것 같은 표정이 서글프다.

 

렘브란트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이다.

렘브란트의 <늙은 남자의 초상>이다.

역시 렘브란트가 그린 <기도하는 여인의 초상>이다.

 

 렘브란트의 < 노인의 초상화>다.  1667년.  이 남자는 편안해 보인다 : 그의 재킷은 열리고, 그의 칼라는 느슨해지고, 그의 모자는 뒤로 기울어졌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초상화를 찍을 때 가장 잘 보이려하기 때문에 그의 포즈는 특이하다. 이 남자는 렘브란트를 잘 아는 사람 일 수 있으며 초상화는 공식적인 위임작이 아니었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초상화의 거장으로 그가 무엇을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했고 다른 곳에서는 붓으로 젖은 페인트를 긁었다. 이것이 그가 모자 가장자리 아래에 탄력있는 회색 머리카락을 제안한 방법이다.

 

렘브란트의 <사울왕과 다윗>이다. 1651-1654년.  이 그림은 수년동안 진위를 의심 받았었지만 수년동안 연구와 보존 처리를 거친 결과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유대의 왕 사울은 웅ㄹ증에 시달리고 있고 어린 다윗은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하프연주를 했다. 사울은 감동을 받아 커튼 자락을 들어 눈물을 닦고 있지만 곧 격노하여 다윗에게 창을 던질 것이다.

렘브란트의 <호머>다. 1663년.  렘브란트는 호머의 모리를 그릴 때 넓은 붓을 사용했다. 그리고는 팔레트 나이프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명암을 만들었다. 이 그림은 시칠리아의 귀족인 안토니오 루포가 의뢰했는데 원래는 눈 먼 호머가 구술하는 것을 받아 적는 서기관도 있었다고 하는데 화재로 없어졌는데 여전히 그림 오른편 아래에 펜과 종이를 들고 있는 손가락을 볼 수 있다.

렘브란트의 <여행자의 휴식>이라는데 성가족이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가다가 동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