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

정물화와 식민지 시절 작품 등

boriburuuu 2020. 11. 9. 12:01

아렌트 드 젤더의 <시므온의 찬양 노래>이다. 렘브란트도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었다.

 

유디트 레이스테르의 <거절당한 제안>이다. 화가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간 여성화가였고 그녀의 특기는 장르화였다. '제안'으로도 알려진 이 그림은 어두운 방 안에서 램프 불빛 아래 옷을 수선하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여준다. 여인은 발난로 속의 석탄이 타오르면서 내는 열로 따뜻해진 탁자 옆에 앉아 있고 그 옆에 털모자를 슨 남자가 젊은 여인에게 돈을 주면서 매춘을 꾀하고 있다.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네덜란드는 지금도 성에 있어서는 놀랄만큼 앞서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매춘부로 보이지 않으며 남자의 제스처에 미동도 않고 있다. 둘 사이의 심리적인 긴장감이 극적인 빛의 효과로 극대화되었다.

 

까렐 파브리티우스의 새 그림이다. 그는 초상화와 풍속화 및 문학적 주제를 다룬 그림으로 유명하며, 빛과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17세기 중반 델프트 미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렘브란트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났다고 하고 베르메르의 스승으로 추정된다.〈오색방울새 The Goldfinch〉(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17세기 네덜란드의 회화 전통에서는 매우 독특한 구도로 되어 있다

 

 

사베리의 <꽃병>인데 이즈음 꽃을 주로 그리게 되었나보다.

암브로시우스 보스차르트의 <창문 안에 있는 꽃병>은 입체감이 뛰어나 그림같지가 않을 정도다.

피터 클라에즈의 이 정물은 독일에서까지 하면 4번은 만난 것 같다.

 

프란즈 포스트의 <브라질의 이타마타카섬의 전망>이다. 1637년. 프란스 포스트는 요한 모리츠와 함께 브라질로 여행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이타마라카 섬의 전망을 가진 이 풍경은 우리가 포스트에 의해 알고 있는 최초의 그림이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그린 유럽 화가가 처음이었다. 물에 의해 서있는 것은 4명의 남성이다 : 2명의 포르투갈 인과 2명의 노예화된 아프리카 인. 그들의 존재는 단순한 브라질 풍경보다 그림을 더 많이 만든다. 포스트는 비록 우리가 검은 색과 흰색 사이의 양질이 피부 색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알버트 에크호트의 <두마리의 브라질 거북 연구>다. 1640년. 에크호트는 브라질의 사람과 동물들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비늘 모양의 머리, 기하학적 패턴의 등껍질,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붉은 발 거북이다. 수컷이 번식기에 하는 것처럼 두 마리는 찡그리며 서로를 향하고 있다. 화가는 실제보다 동물을 흥미롭게 그렸는데 이 거북이도 실제는 이빨을 갖고 있지 않는다.

아래층에서는 식민지 지배 지역과 관련된 특별전을 하고 있었으나 의미를 다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호베르트 블링크의 <유아용 의자와 여자 아이>인데 아이는 작지만 열굴은 성숙한 여인으로 그려 놓은 것이 다소 언발란스해 보인다.

프란즈 포스트의 <건설중인 집이 있는 브라질 풍경>이다. 1655-1660년.

 

 

렘브란트가 그린 <두 명의 무어인>이다. 1661년. 네덜란드에서는 17 세기에 아프리카 인이 보통 2 차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서 장면에서 인물의 노예가 된 개인으로 묘사되었다.  네덜란드에서는 17 세기에 아프리카 인이 보통 2 차 인물로 묘사되었다. 예를 들어 성서 장면에서 인물의 노예가 된 개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렘브란트는 그들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아마도 이들은 암스테르담에 살았던 자유인들이었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매우 얇은 페인트 층으로 남성을 그렸다. 하얀 목도리처럼 그들의 얼굴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했지만 다른 많은 부분은 스케치로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미완성 연구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서명했다.

 

 

설탕으로 만든 집 모양인데 역시 수탈과 관련된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