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라오스

비엔티안(위앙짠)으로 가며

boriburuuu 2016. 3. 7. 01:17

 아침은 호텔식당에서 쌀국수를 주었는데 주방에서 미처 내오지 못했다. 음식은 아주 부실했고그 양도 적었다. 여북하면 대장이 호텔직원에게 음식을 더 가지고 오라고 말했겠는가. 그러나 일행은 천천히 기다리다 아침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꽁로동굴로 향(07:00)했다.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어제 밤에 많은 비가 왔고, 지금도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전에 꽁로동굴 입구까지 갔다가 강물이 많아 동굴에 들어가지 못해서 이번에는 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7Km의 동굴에 보트를 타고 갈 수 있기를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일행의 염원은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깨지고 말았다. 동굴 입구까지 가기 전에 저지대가 있는데, 그곳이 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앞에는 이곳 주민들이 트럭으로 길을 막아놓고 있었다. 어디가 도로이고 어디가 물길인지 가름조차 되지 않았다. 버스는 더 이상 갈 수 없었다(09:30). 만약 시동이 꺼지지 않아 간다고 해도, 버스 밑쪽에 실은 가방이 물에 흠뻑 젖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닌가.

 

<꽁로동굴 근처 풍경 1>

 

    <꽁로동굴 근처 풍경 2>

 

<꽁로동굴 근처 풍경 3>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물이 가득한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물이 얕아졌다가 다시 깊어지기 시작했다. 약 150m쯤 갔을 때 물은 점점 더 깊어지고 트럭과 경운기로 길을 아주 막아놓고 있었다. 더 이상 가면 위험하다는 신호인 것 같았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으며 꽁로동굴을 보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일행이 저지대에서 내려 도로 위 물로 걸어가는 모습 1>

 

 <일행이 저지대에서 내려 도로 위 물로 걸어가는 모습 2>

 

 <일행이 저지대에서 내려 도로 위 물로 걸어가는 모습 3>

 


<물이 깊어지자 주민이 차로 길을 막아놓은 모습 1>

 

<물이 깊어지자 주민이 차로 길을 막아놓은 모습 2>



 버스는 돌려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고, 일행 대부분은 걸어서 이곳 풍경을 감상하며 버스가 돌아올 때까지 걷기로 했다. 시멘트와 철근 교각 위에 상판을 나무로 깔은 다리가 있는가 하면, 막 심은 것 같은 논은 벌써 연두색을 띄고 있었다. 조그마한 남자아이는 작은 배로 모춤을 싣고 가기도 했다.

 

 <일행이 걸어서 돌아오며 본 상판에 나무를 깐 다리 1>

 

 <일행이 걸어서 돌아오며 본 상판에 나무를 깐 다리 2>

 

<꽁로동굴 가는 길 주변의 논은 연두색으로 물들고>

 

<조그마한 남자아이는 배에 모춤을 실어나르고>

 

 자연은 주택이라고 해서 특별히 봐주는 것이 없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아래 부분에도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씨판돈에서도 보았지만, 이곳 전통주택을 왜 기둥을 높게 세우고 기둥 중간부터 방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모두가 선조들이 자연에 적응해가는 경험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리라.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 아래에도 어김없이 물은 들어 차고>

 

 우리가 상당히 멀리 내려왔음에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아마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는 수렁에 빠져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운전기사인“로”는 웃옷을 벗어던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차 밑을 돌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지 가이드인“짠”과 일행은 버스에 실린 가방과 짐을 모두 내리고 시동을 걸었으나, 버스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 SOS를 받은 커다란 트랙터가 도로 옆 도랑을 겨우 빠져나와 버스 앞에 섰다. 트랙터와 버스에 쇠줄을 매고 서로 시동을 걸고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쇠줄만이 힘없이 끊어졌다. 다시 줄을 매고 차들이 시동을 걸자 버스가 서서히 끌려나왔다. 일행은 박수를 쳤다. 가방 등을 다시 버스에 싣고 비엔티안으로 행했다. 동굴 볼 시간을 모두 허비했으나, 그래도 버스가 무사히 나온 것이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이런 일이 있으면 당시에는 무척 애가 타지만, 지나고 나면 재미있었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 일행은 30분 정도 와서 점심을 먹었다(12:30). 대부분 버스에서 점심을 먹었으나, 일행 몇 명은 준비한 점심에 맥주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라오스의 주유소, 식당, 백화점 등은 화장실이 무료이나, 시장 등은 유료였다. 그러나 여기는 무료였으나 화장실이 50m쯤 떨어져 있고, 비가 와서 가는 길이 질퍽거렸다.

 

 오늘 길에 파인애플을 파는 길거리시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기에서 일행 대부분이 파인애플을 샀다. 가까이에 파인애플농장이 있어 그곳에서 좋은 것은 판매하고, 작은 것은 여기서 파는 것 같았다. 나도 1만K(1,300원 정도)를 주고 작았지만 5개를 샀다. 일행은 드디어 비엔티안의 두앙드언호텔(Douang Deuane Hotel)에 도착(19:00)했다.

 

 비엔티안(Ventiane, 위앙짱)은 메콩 강을 따라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1563년 쎗타티랏 왕(King Setthathirat, 1548~1571재위)이 루앙프라방에서 이곳으로 천도하면서 라오스의 수도가 되었다. 1828년 씨암(태국)의 침략을 받아 많은 문화재들이 약탈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새롭게 건설된 사원이 많아 고풍스러운 느낌은 없지만, 한적한 가로수 길과 메콩 강이 바쁘게 살아온 발걸음을 느리게 했다.

 

 일행 4명은 비엔티안의 야시장 구경을 나섰다. 대부분 먹을거리와 옷가게가 주류를 이루어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었다. 우리는 야시장 옆에 붙어 있는 우정의 다리(태국 농카이로 연결된 다리)로 가는 강변 산책로를 걸어갔다. 상당히 넓은 도로임에도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갔음에도 우리는“짜오 아누웡 왕동상”까지 왔다. 왼손에 칼을 잡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 모양의 동상은 위엄이 있어 보였다.

 

<비엔티안의 태국 농까이로 가는 우정의 다리에 있는 짜오 아누웡 왕동상>

 

 <짜오 아누웡 왕동상 앞에서 추억을 남기고 1>

 

 <짜오 아누웡 왕동상 앞에서 추억을 남기고 2>

 


 이제 배가 슬슬 고파왔다. 먹을거리를 찾아 돌아오는데, 길옆에 태극기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한-라오스 합작도로건설 기념비”였다. 우리는 야시장 아래에 있는 "짜오 아누윙공원" 길거리식당에서 만두와 로티(Lotte)를 먹었다. 만두는 우리 것과 비슷했으나, 로티는 밀가루에 계란이나 바나나를 넣어 구운 것으로 달콤한 것이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라오맥주를 사가지고 방에서 마른해산물 및 파인애플을 안주로 즐겁게 마셨다.

 

<짜오 아누윙공원 길거리식당에서 "로띠"를 만드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