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라오스

비엔티안의 "탓 루앙" 등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7. 01:17

엊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일찍 일어나(05:15), 비엔티안의 아침풍경과 분위기를 보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먼저 일행이 잔 호텔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자, 화교들이 만든 공원에 우뚝 선 정문이 보였다. 문에 복덕묘(福德廟)라고 쓰인 글을 봐서 묘지가 있는 것 같았다.

 

<일행의 숙소인 비엔티안의 드앙드먼호텔>

 

<화교들이 만든 공원 입구의 정문인 "복덕묘">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는데, 아침의 메콩 강 지류가 보이고, 강 옆의 사원도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일행 한 명을 만나 같이 강변산책로를 걸었다. 이 길은 어제 걸었던 길이어서 낫 설지 않았다. 짜오 아누웡 왕 동상에는 현지인이 꽃을 올리고 무언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어젯밤 어두워서 사진을 찍지 못했던 한-라오스 합작도로건설 기념비도 사진기에 담았다.

 

<메콩 강 지류의 아침 풍경>

 

<강변산책로에서 바라본 비엔티안의 사원이 있는 풍경>

 

<새벽에 본 짜오 아누웡 왕동상 앞에서 기도하는 현지인>

 


 

<한. 라오스 협력도로건설 기념비>

 

 호텔로 돌아와 뷔페식 아침을 먹고 버스로 숙소를 출발(08:25)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왓 씨싸켓(Wat Sisaket)”이었다. 이 사원은 1818년 짜오 아누윙 왕(King Chao Anouvong, 1805~1828재위)시절에 건설된 것으로 특이하게도 태국양식이었다. 씨암(태국)의 2차 침략으로 라오스가 패했을 때(1828)에도 태국양식으로 지은 왓 씨싸켓은 피해를 입지 않아 비엔티안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고 했다.

 

 대법전은 승려들의 출가의식이 행해지던 곳으로, 내부에는 붓다의 전생을 기록한 희미한 벽화가 있었다. 회랑에는 작은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고 있었다. 불상은 16~19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들로, 사원에 보관된 불상은 무려 6,840개라고 해서 마치 불상박물관을 생각게 했다.

 

<왓 씨싸켓 대법전 전경>

 

<왓 씨싸켓의 불상>

 

<왓 씨싸켓의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징과 비슷한 도구>

 

<왓 씨싸켓의 작은 건물 모습>

 


<왓 씨싸켓 대법전 회랑의 불상과 기도 드리는 현지인>

 

<왓 씨싸켓 회랑의 작은 감실에 모두에도 불상이 모셔져 있고>

 

 오늘은 이 사원의 특별한 날이었다. 불교국가인 이곳 시민들은 너나없이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꽃, 돈, 음식 등을 가지고 사원에 와서 공양했다. 사원까지 올 때는 신발을 신었으나 사원에 들어와 공양을 할 때는 모두 맨발이었다. 대법전 밖의 작은 건물과 야외에도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왓 씨싸켓 대법전 회랑에 모셔진 불상에게 공양을 드리는 현지인>

 

<왓 씨싸켓에 직접 와서 공양을 드리는 현지인들>

 

<전통 복장의 좋은 옷을 입고 공양을 드리는 현지인들의 맨발 모습>

 

<접수된 공양물을 정리하는 승려들>

 

<왓 씨싸켓 옆의 작은 법전과 모셔진 불상들>

 

<왓 씨싸켓 야외에 모셔진 불상들>

 

<왓 씨싸켓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는 일행 모습>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 왓 파깨우)”는 왓 씨싸켓 맞은편에 있었다.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쎗타티랏 왕이 1565년 건설한 왕실사원으로 에메랄드 불상으로 알려진“프라깨우(Phra Kaew)”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불상이 비엔티안에 있던 기간은 200년에 불과하고, 1779년 씨암의 1차 침략을 받아 불상이 약탈당했으며 현재 방콕 왕실사원에 모셔져 있다.

 

씨암과의 2차 전쟁에서 패해 지배를 받기 시작한 1828년 사원이 완전히 전소되어 폐허가 되었다. 그 후 1940년대에 복원했으나, 지금도 무엇인가를 보수 중에 있어 출입금지구역이었다. 대신 사원 앞에 천막을 치고 프라깨우 모조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수리 중인 왓 프라깨우 전경>

 

<수리 중인 사원 앞에 모신 프라깨우 모조품 불상>

 

 “대통령궁(일명 주석궁)”은 왓 프라깨우와 붙어 있으며, 1893년 프랑스가 라오스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시키면서 총독 관저로 건설했다. 루앙프라방 왕궁에 거주하던 씨싸왕윙 왕이 비엔티안을 방문할 때 잠시 거주했으며, 현재는 대통령궁이라고 불리지만 빈 건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며, 주석이 주관하는 각료회의나 외국에서 귀빈이 방문할 때 접견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문이 굳게 잠겨 있는 대통령궁 전경>

 

<대통령궁 앞에서 빠뚜싸이를 바라본 비엔티안 시내 풍경>

 

 이어서 일행은 버스를 타고 탓 루앙으로 갔다.“탓 루앙(That Luang)”은 라오스의 상징이자 가장 신성시 되는 건축물로“위대한 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566년 쎗타티랏 왕이 건설했으며, 3세기경 인도 승려가 가져온 붓다의 사리를 안치했다고 한다. 이것도 씨암의 2차 침략으로 파괴되었으나, 1900년에 복원공사를 하고, 1995년에 콘크리트 건축물에 금색을 칠했다고 한다.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탓 루앙은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한 첨탑모양의 탑이었다. 길이 69m 정도의 직사각형 기단위에 45m 높이의 탑을 세웠다. 30개의 작은 탑이 기단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은 깨달음의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탓 루앙 입구 문으로 들여다 본 모습>

 

<황금색의 커다란 탓 루앙 원경>

 

<황금색의 커다란 탓 루앙 근경>

 

<탓 루앙 회랑의 불상들>

 

<탓 루앙의 작은 건물에 모신 불상>

 

 북쪽에 있는 사원은 “왓 탓 루앙 느아(Wat That Luang Neua, 북쪽 탓 루앙 사원)였다. 여기도 신도들이 공양을 끝내고, 승려들이 그 뒤처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법전 여기저기에 공양 받은 물건들이 비닐봉투에 넣어져 있었다. 또한 탓 루앙 앞 광장에는 비엔티안으로 천도하고, 탓 루앙을 건설한 쎗타티랏 왕의 동상이 우뚝 서있었다.

 

  <왓 탓 루앙 느아 전경>

 

  

<공양이 거의 끝나가는 사원 안 모습>

 

<승려들의 공양물 정리가 거의 끝난 모습>

 

<유명한 사원이라 엄청난 공양물 보따리가 별도로 쌓여 있고>

 

<왓 탓 루앙 느아에 모셔진 법전의 불상>

 

<탑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의 탓 루앙을 건설한 쎗타티랏 왕 동상>